광어와 도다리 / 최민자
오 억 오천만 년 전, 세상은 일테면 장님들의 나라였다. 캄브리아 대폭발로 진화의 포문이 열리기 전까지, 느리고 평화로웠던 저 식물적 시대는 눈의 탄생이라는 지구적 사건으로 시나브로 종결되어 버린다. 세상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빛을 이용해 시각을 가동시키기 시작한 동물들은 생명의 문법을 송두리째 흔들어 버렸다. 조용했던 행성이 먹고 먹히는 먹이사슬로 포식과 피식의 격전지가 되어갔다. 먹히지 않기 위해 외피를 강화하거나 지느러미를 발달시키고, 사냥을 위해 힘센 앞발과 송곳니를 장착하는 등 군비경쟁이 시작되었다. 공격과 방어, 양수겸장의 초병으로서 눈의 역할이 지대해졌다. 한번 켜진 빛 스위치는 지금까지 한 번도 꺼지지 않았다.
그런 와중에 눈이 다섯 개나 달린 녀석도 생겨났다. 캄브리아 중기에 살던 오파비니아다. 둥그런 머리에 다섯 개의 눈을 앞이마에 둘, 뒤 양쪽에 둘, 나머지 한 개는 뒤쪽 중앙에 장착했다. 사각지대에 숨은 적군도 살피고 뒤에서 다가오는 첩자도 미리 알아채 공격할 수 있었으니 경쟁에서 얼마나 유리했을까. 남들이 인력거 타고 다니는 시대에 전조등과 사이드미러, 백미러까지 갖춘 첨단 람보르기니를 몰고 다니는 기분이었을 테니. 그런데도 이상하게 멸종해 버렸다. 세상은 그나마 공평해서 많이 가진 놈들이 유리한 것만은 아닌 모양이다.
그런가 하면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에는 눈이 하나뿐인 키클롭스(Cyclops)가 등장한다. 나무를 뽑아 이쑤시개로 사용하던 외눈박이 거인이지만 그 외눈마저 오디세우스의 창에 찔리고 만다. 『피터 팬』에 나오는 애꾸눈 선장 후크도 이야기 속에서만 용맹하다. 흔들리는 배 위에서 칼싸움을 하려면 외눈 하나만으로는 거리 조절이 안 되어 이길 확률이 높지 않았을 것이다. 눈 두 개, 콧구멍 두 개, 귀 두 개, 다리 두 개……. 돌쩌귀도 암수가 맞아야 하고 볼트와 너트, 열쇠와 자물쇠도 짝이 맞아야 제구실을 하니 두눈박이가 대세가 된 게 이상한 일은 아니다. 두눈박이라고 다 같은 두 눈은 아니겠지만.
목표를 향해 돌진해야 하는 맹수들은 눈 사이가 좁고 정면을 향한다. 맹금인 독수리도 부리부리한 두 눈이 가운데로 몰려 있다. 반면에 잡아먹히지 않기 위해 주변을 끊임없이 두리번거려야 하는 초식동물들은 겁먹은 눈빛에 눈 사이가 멀다. 기다란 얼굴의 측면에 붙어 적들을 경계하기 좋게 되어 있다. 그래야 생존에 유리해서일 것이다. 인간의 눈은? 호랑이 사자보다, 심지어 개 고양이보다도 눈과 눈 사이, 미간이 붙어 있다. 시력으로 따지면 맹수뿐 아니라 매나 독수리에게도 훨씬 못 미치지만 맹수보다 포악한 사냥꾼이란 뜻일까?
인간의 눈은 대상이 시야에서 20도 이상 벗어나면 고개를 돌려 움직이지 않는 한 물체를 명확히 볼 수 없게 되어 있다. 두 눈을 통해 들어오는 시각 정보를 하나로 융합하여 입체시를 완성하지만 보이는 대로가 아닌, 보고 싶은 것만 본다. 눈이 보는 게 아니라 뇌가 보는 셈인데 목이 협조하지 않으면 그조차 제대로 볼 수가 없다. 사람의 신체에서 목의 중요성은 머리통만큼이나 중요하다. 언젠가 나는 '남자는 머리 여자는 목'이라는 제목의 글을 쓴 적이 있는데 남존여비가 아니라 그 반대, 머리는 목이 돌리는 대로 돌아간다는 뜻이었다. 머리는 깨져도 살 수 있지만 목에 칼이 들어오면 그대로 끝이다.
오십 년 지기 경남이의 별명은 '직진경남이'다. 사냥감은 좇는 사냥개처럼 전후좌우 돌아보지 않고 냉철하게 판단을 하고 실행에 옮기는 그는 매사에 명쾌하고 추진력이 강하다. 앞뒤 옆을 돌아보느라 망설이고 주춤거리다 한세월을 다 보내 버린 나는 그런 친구가 몹시 부럽다. 사이드미러에 민감해 전진 속도가 느린 데다 백미러는 잘 보지도 않아서 느닷없이 추돌을 당해 낭패를 보기도 한다. 오파비니아처럼 뒤꼭지에도 눈 하나 장착해 두었더라면 하는 생각도 해 보지만 그래봤자 뒷담화하는 친구들 신경 쓰느라 심각한 결정장애자인 내가 더 터덕거렸을 것이다. 백미러는 사실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필요한 것인데 말이다.
좌고우면左顧右眄 하느라 많은 것을 놓치고 산 인생이지만 이즈음엔 슬그머니 생각이 달라진다. 저밖에 사랑할 줄 모르는 인간에게 그래도 눈이 두 개인 이유는 좌고우면하라는 뜻 아닐까. 좌측을 돌아보고 우측도 곁눈질하며 먼 것 가까운 것 조절도 해야 치우침을 막고 균형을 잡아갈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눈이 여럿이면 쓸데없는 정보가 많아 판단이 흐려져 정신이 맑기가 어려운 반면, 외눈박이는 독재자가 되거나 결국은 패하여 잡아먹히게 되니 두 눈으로 부지런히 좌고우면하며 살밖에.
진영 논리니 적폐 청산이니 시끌시끌한 이즈음, 이상하게 내 주변에 외눈박이들이 늘고 있다. 정확히는 광어처럼 좌측으로 치우쳐 있거나 도다리처럼 우측으로 몰려 있어 두눈박이이지만 한쪽만 보는 편향을 가진 부류들이다. 문제는 다들 몸통과 한통속으로 파묻힌 목 때문에 제가 외눈박이인 줄을 모르고 제 시력을 멀쩡하다고 믿고 산다는 것이다. 제 고개 삐딱한 거 모르고 내가 보는 세상, 내 눈에 보이는 세상이 정상이라고 의심 없이 믿고 사는 지금, 여기, 나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