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동 은행나무 / 오세윤
나무도 나이가 들면 주름이 깊다. 방학동 은행나무. 수령 팔백 사오십년, 키 24미터, 둘레 여섯 아름 반의 커다랗게 구새 먹은 거목. 사방으로 뻗은 가지들이 둥그스름 부드러워 모진 데가 없다. 아파트단지 동북쪽 경계에 인접한 나무는 키 낮은 목책으로 둘러쳐져 보호수로 관리되고 있다.
세 동이 ‘卩(절)'자형으로 앉은 작은 아파트단지, 뒤로 두 정보의 너른 밭이 안산으로 둘려지고 그 너머로 북한산의 세 거봉이 먼 듯 가깝다. 바람소리 새소리가 일상적인 곳. 석양녘의 하늘빛이 아득한 곳. 는개라도 오는 아침이면 진경산수(眞景山水) 화폭 속을 만보하듯 망회지경(忘懷之境)이 되고 마는 한갓진 산 밑 동네, 봄빛 흐드러진 시야가 온통 푸르러 창연하다.
목책에 접한 단지의 경계에는 반길 높이로 돌 축대를 쌓고 그 위에 키 낮은 쥐똥나무를 심어 울타리를 했다. 안쪽에 벤치 두개, 앉아 나무를 감상하기 딱 알맞은 높이. 날씨가 따뜻해지면서 벤치에 나앉는 아침이 부쩍 더 많아졌다. 나무는 길을 사이에 두고 그 너머 연산군 묘를 더덜뭇 비껴보고 있다.
희읍스름 주름 깊은 등걸 군데군데 수액 병을 매달고 힘겹게 겨울을 난 나무가 연 이틀 내린 봄비로 기색이 달라졌다. 거무스름 생기가 돌더니 기지개를 켜듯 푸릇푸릇 여린 잎을 피워낸다. 집 앞 서향바지로 선 대추나무처럼 고집스레 잎을 틔우지 않던 나무도 봄 햇살은 차마 내치지 못하는 정의(情誼)였던 듯. 하기야 생명 있는 것치고 부드러움을 거부할 자 감히 뉘 있으랴. 부드러움, 문득 고(故) 장기려(1911~1995) 교수를 떠올린다. 관후한 의료와 겸허한 봉사로 일생을 산 성자, 스승을 회억한다.
공교롭게도 나는 스승이 돌아가시던 해 이곳으로 이사해 처음 이 나무를 봤다. 첫 대면에서부터 나는 나무에 빠져들고, 나무의 모습에서 스승의 뜻을 찾아 되새기는 버릇을 갖게 됐다.
본과시절, 우리들은 모두 그분의 강의에 열광하고 언행에 고개 숙이고 선행과 봉사, 청렴에 감명됐다. 교수의, 의사의 표상이었다. 입원해 치료받던 춘원이 “당신은 성자가 아니면 바보”라던 말이 절실하게 가슴에 와 닿던 참 의사의 본새였다. 이곳에서의 개업의생활 내내 나는 그분의 뜻을 본받아 겸손하려, 부드럽고자 애썼다. 북에 두고 온 부인에 대한 지조를 지켜 남녘생활 내내 홀로 지내신 그분을 나는 참스승으로 존경했다.
나무는 이제 더 이상 열매를 맺지 않는다. 둥근 모양새로 보아 암나무가 분명하련만 내 이곳에 온 이래 단 한차례도 열매 맺는 가을이 없었다. 이미 노쇠하였으니 당연하다 여기면서도 어쩌면 연산군의 일생을, 왕실과 개인의 흥망성쇠를, 인간의 영달과 욕망의 헛됨을 곁에 서 바라보며, 자손을 남기겠다는 원초적 의지마저 ‘부질없다’ 버린 건 아닐까 견강부회(牽强附會)의 억측을 한다. 나이 들면 나무도 사람처럼 성별도 없어지고 욕심도 엷어지는가.
잎도 작다. 10년생 20년생의 어린 나무들보다 잎의 크기가 훨씬 더 자잘하다. 우람한 둥치 높직이 달려 올려보기 먼 때문만은 분명 아닌 듯, 아무래도 뿌리로 흡수하는 자양분이 전 같지 않으니 잎을 통한 수분의 손실도 보다 적어야 한다는 이치에 순응하는 뜻으로 풀이된다.
더 이상 열매를 맺지 못하는 나무, 더 이상 잎을 크게 피우지 못하는 나무, 더 이상 높게 자라지 못하는 스스로의 한계를 알고 그 한계 안에서 자족을 체득한 나무, 은행나무는 겸손이 무엇인지를 아주 잘 아는 현자처럼도 보인다. 허공을 차지하는 것도 자기를 나타내는 것도 보다 적게 하려는 듯 보이는 나무에게서 나는 겸양의 미덕을 읽는다.
산자와 죽은 자와의 사이에 팔백여년을 서서, 한과 허망을 질리도록 겪어 오면서, 매해마다 남김없이 벌거벗겨지면서 얻게 된 진정한 겸허를, 모든 세상적 욕망을 초월하면서도 원초적 생명의지만은 굳건히 지녀 결코 소홀히 하지 않는 나무에서 나는 삶의 엄숙한 의지를 배운다.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는 예수의 겸손이야 어찌 언감생심 흉내인들 내랴만 나무의, 스승의 드러내지 않는 겸손만은 조금쯤 닮았으면 하는 외람된 욕심을 낸다. 나무에게서 나는 겸손한 사유를 배운다.
자신이 잘났다고 뽐내던 날이 왜 없었으랴. 열매를 많이 맺었다고 으스대던 날이 한두 해일까. 그러나 그는 지금, 내려 비치는 햇살을 그 자체로 고마워하고, 시커멓게 구새 먹은 둥치에 꽂아주는 수액을 감사히 받고, 아직도 늙은 뿌리로 수분과 자양분을 섭취할 수 있음을 스스로 대견해한다. 성긴 나무 가지사이로 맴돌아 드는 바람을 즐겨 보듬고, 까치가 가지 끝에 둥지 트는 것을 너그럽게 허락한다. 모진 겨울바람이 등줄기를 할퀴고 내닫는 것을 나무라지 않는다. 나무에게서 나는 관대한 겸손을 배운다.
그는 단지 하늘에다만 고개를 숙인다. 기세등등한 앞산에도 허리를 굽히지 않는다.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러움 없이 팔백 여년을 살아 당당할 법도 하련만, 더 자라기를 마다하고 하늘에 순명해 머리도 높게 치세우지 않는다. 한(恨)도 허무도 승화시킨 겸허의 극치를 나는 은행나무에서 본다.
습습하게 바람 불어드는 벤치에 앉아 나는 이 아침, 겸허와 자애, 봉사하는 참 의사로 살고 간 스승의 뜻을 새롭게 되새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