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나누기

 

임병식 rbs1144@hanmail.net

 

 이웃에 거주하는 김채열 선생은 열심히 화단을 가꾸고 산다. 사는 곳이 1층 아파트라서 마당 화단을 자유로이 이용하는데 그가 꽃밭을 가꾸기 시작한 건 20년이 넘었다. 내가 초창기에 이사를 왔는데 그 때도 이미 그는 화단의 구색을 갖춰놓고  있었다. 양 옆 집은  잡초가 무성했지만 그가 관리하는 곳은 달랐다.

 이웃에 살며 그 광경을 한동안 지켜보다가 하루는  말을 건넸다.

 “ 열정이 대단하십니다. 아름답게 꾸며놓은 덕택에 오가면서 구경 잘 합니다.”

 “뭘요. 나 혼자 보자는 것도 아니고 함께 보시라는 건데요 뭐.”

 그런 배려심을 안후로 화단에 나와 일하는 모습을 대할  때면 인사를 나눈다.

 엊그제다. 그곳을  지나는데 그가 꽃모종을 심고 있었다. 각양각색의 핀지와 수선화였다.

  그 모습을 보니 여간 행복해 보이지 않아서  무심히 지날 수가 없어 한마디 던졌다.

 "천성적으로 꽃을 좋아하시나 봐요. 저는 수석을 좋아합니다만”

 “그러시군요. 수석도 좋은 취미지요.”

 바로 말을 받는다. 인사치레  대화를 나누다가 나는 문득 무엇을 떠올렸다. 그 생각이 지워지지 전에 집에 돌아와 즉시 창고를 뒤지기 시작했다. 옛날에 흰 조약돌을 주워왔던 것이 생각났던 것이다. 한동안 까마득히 잊고 지냈는데, 김선생이 정성껏 화단을 가꾸는 걸 보니 '나도 무언가 해야 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을  떠올랐던 것이다.

 그것은 예전대로  먼지가 낀 채  포대에 담겨져  있었다. 새삼 수석의 장점이 느껴졌다. 수석은 우선 썩거나 변질될 염려가 없다. 부수용도로 쓰는 모래나 조약돌도 마찬가지다. 전혀 부패할 우려가 없다.

 그런 면에서 수석은 다소 게으른 사람도 취미로 삼을 만하다. 이에 비하여 꽃가꾸기는 여간 잔 손길이 많이 가는 게 아니고  신경도 그만큼 써야한다. 처음부터 꽃씨를 뿌리고 거름 주고 풀매기도 해주어야 한다. 그것은 노상 김선생이 화단에 붙어 있다 시피 하는걸 보아도  알 수 있다.

 조약돌을 찾아낸 후 깨끗하게 씻어서 빈 수반을 놓았다. 이것에 무엇을 연출할까. 생각하다가 갈무리해 둔 돌중에서 묵직한 외연도 돌을 하나 꺼내왔다. 이것은 몸피에 주름이 잡혀있어 산수경이나 바위 형 입석으로도 볼만한 돌이다.

 먼저 가장자리에 조약돌을 채우고 수석을 세웠다. 그래놓으니 그야말로 온갖 풍상을 겪는 고도절해의 바위경이 연출된다. 거기다 흰 아래쪽은 흰 조약돌이  파도가 치면서 물보라는 일으키는 해면의 풍광을 보여준다.

 실감나는 아름다운 정경이다. 이것을 연출해 놓고 한식경 바라본다. 그야말로 유유자적하는  한유의 시간.  수석인이 아니고서 어찌 이런 정취를 느낄 수 있을까.

 사람은 제마다의 성격만큼이나 취미도 다르다.  닮은 공통적인 점도 있지만 조금씩 취향이 다르다. 애석생활도 대작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소품을 아끼는 사람이 있다. 꽃가꾸기도 마찬가지다. 화려한 꽃을 좋아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수수한 꽃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

 김선생은 분재보다는 화초를, 그것도 키가 큰 꽃나무보다는 아담한 것을 좋아하는 것 같다. 그래서 그가 가꾼  화단은 유달리 아기자기하다.  나는 수석 중에서  바위형을 좋아한다. 무엇보다도 돌 본연의 부질의 맛을 느낄 수 있어서다. 수석은 그것이 자연물이라는 데에 크나큰 매력이 있다. 거기다 어떤 형상을 닮아 있으면 금상첨화다.

 이때는 조물주의 신묘한 능력을 보는 듯해서 전율을 느끼게 된다. 이번에 수반에 깐 흰 조약돌은 어느 날 갑자기 한군데서 구한 것이 아니다. 수십 수 백 번 바닷가와 강줄기를 탐석하다가 작두콩 크기의 것이 보이면 주워온 것이다. 그것이 회수를 거듭되다보니 한 되 정도가 되었다.

 그러니 들인 공력과 비용으로 치면  꽤나 값비싼  것이다. 나는 소장한 수석을 내 개인의 사물로 여기지 않는다. 어디에 공유할 자리가 있으면 기꺼이 내놓을 생각을 가지고 있다. 아마도 화단을 가꾸는 김선생도 그런 마음이 아닐까 싶다. 심신을 돌보는 수양의 방법으로 마음을 가꾸는데 뜻을 두고 있지 않는가 한다.

 그런 면에서 나는 김선생을 고맙게 생각한다. 자기 하나의 수고로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기쁨과 위안을 주는 것인가.

 나도 그런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 나만 즐기고 좋아할 것이 아니라 남들과 같이 공유하며 대화하면서 살았으면 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잘 마음을 열지 않는다. 섬처럼 갇혀서 들어앉아 살면서도 소통에 인색하다. 그러니 여간 안타까운 일이 아니다.

예전 시인묵객들은 어디 그러했던가. 활발하게 교류하며 에피소드도 많이 남기지 않았던가. 그런 걸 생각하면  현대 사람들이  물질적 풍요는 누리고 살지는 몰라도 정신면에서는 오히려 옛사람보다 많이 뒤처진 생활을 하지 않는가 한다.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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