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지 돌탑을 들여다보는 여유가 생겼다. 산길을 오르내리는 사람들이 크고 작은 돌들을 주워 길옆 편한 곳에 쌓아 올려 탑을 이룬다. 돌을 쌓는 이유는 산길을 걷기 좋게 치우려는 것이거나 정성과 소망을 담아 쌓아 올리는 것이다. 누가 보아도 좋은 뜻이 담겨 있을 거라고 여겨진다. 돌을 치워 말끔한 길을 만들었다면 남을 배려하는 마음일 것이며, 돌탑을 쌓는 데 목적을 두었다면 나름 간절한 염원을 담았을 것이다. 석공의 정교한 손길로 다듬어진 탑보다 민초들의 공덕이 모인 듯하여 조촐하고 아담하며 보기에도 편안하다.
세 번을 다녀온 봉정암은 백담사에서부터 도보가 시작된다. 다리를 건너면 계곡의 물소리가 들리고, 웅장한 바위 아래 금방 캐낸 감자 같은 탐스런 몽돌들이 여기저기에 널브러져 있다. 물과 바람이 스쳐간 세월 속에 둥그러진 돌로 쌓인 크고 작은 돌탑들이 고요한 산정에 든 부처처럼 계곡물 흐르는 소리에도 한 점 흐트러짐이 없다.
물이 넘쳐 쌓아 올린 공덕이 무너져 버릴까봐 걱정을 하니, 또 쌓으면 된다는 도반의 넉넉한 대답은 편안하고 여유롭다. 멀고 험하게만 생각되던 봉정암 길이 훨씬 수월하게 느껴졌다. 대열에서 조금의 여유가 있으면 나도 작고 납작한 돌을 주워 부지런히 돌탑 위에 올려놓았다.
코로나19로 사람들의 발길을 묶어 놓으니 바쁘게 동동대던 나도 조금의 시간적 여유가 생긴다. 사람들과 어우러져 즐기던 모임도 뜸해지다 보니 요즘은 좋은 공기 마시며 운동하는 게 유일한 즐거움이 되어간다.
앞선 약수터로 가는 등산로 옆 공간에도 내 허리 정도 높이의 돌탑이 몇 개 있다. 전에는 바쁘게 오가느라 보이지 않던 것들이다. 마음의 여유를 갖고 걸으니 생각도 깊어지고, 머리로 가슴으로 행복했던 삶의 무의들이 부딪쳐 오기도 한다. 누군가 쌓아 올린 돌탑이 왜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을까? 나도 식구들의 건강을 바라는 마음으로 산책할 적마다 돌 하나를 집어 올려놓고 가곤 한다. 선 채로 두 손을 합장하다가 어느 날에는 돌탑 앞에 무릎을 꿇고 정성을 담아 삼배까지 올렸다. 염원이 이루어진 것 같은 느낌이랄까. 묘하게 올라가는 발걸음이 가볍게 느껴진다.
다음 날 또 작은 돌 하나를 미리 주워 손에 들고 마음속에 담아놓은 염원 한 가지를 중얼거리며 돌탑으로 향했다. ‘아, 이럴 수가.’ 어제 내가 얹어 놓은 돌과 그 아래 깔린 돌들이 함께 무너져 있는 게 아닌가. 그동안 사람들이 공들여 쌓은 염원을 내 부주의로 무너진 것인가 싶어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누가 불세라 주위를 살펴가며 조심조심 다시 쌓아 올린다.
돌탑을 어지간히 쌓아 놓고 아래서부터 위까지를 자세히 살펴본다. 큰 돌, 작은 돌, 납작하고 길쭉한 돌, 둥글고 모난 것들이 받치고 끼워져서 흔들림 없이 균형을 잡고 있다. 돌과 돌 틈으로 바람이 스치는 공간은 소통일 것이다.
사람이 살아가는 이치와 무엇이 다르랴. 어질고, 착하고, 둔하고, 까다롭고, 모나고, 까칠한 사람들이 어우러져 세상이란 하나의 공동체로 조화를 이루며 살고 있는 것이다. 저마다의 주어진 무게만큼 탑을 이루며 살듯 나 또한 탑 속의 돌이 되어 함께 살고 있음을 깨닫는다. 이제부터는 쌓인 탑 위에 돌을 올리기보다는 모자라고 빈 곳을 채우고 받치는 돌로 살아가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