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신이었을까? / 박완서
감기에 걸려 외출을 삼가고 있던 중 교외로 바람이나 쐬러 가자는 K교수의 유혹에 솔깃해진 건 아마도 감기가 어느 정도 물러갔다는 징조일 것이다. 나는 K교수가 손수 운전하는 차가 가는 대로 몸을 맡기고 목적지를 묻지 않았다. 열두 시를 바라보는 시간에 집을 떠났으니 바람을 쐬러 가자는 말 속에는 점심도 같이하자는 뜻도 포함돼 있음직했다. 집에서 한강을 끼고 양수리 쪽으로 가는 길은 경치가 아름다울 뿐 아니라 괜찮은 음식점 찾기도 어렵지 않았다.
K교수는 처음부터 목적한 데가 있는 듯 나한테 어디로 갈까 의논하지 않고 곧장 달렸다. 차가 능내에서 마재 마을로 꺾일 때 비로소 나는 가슴이 좀 울렁거렸다. 그 마을에는 정약용 생가랑 기념관 등 의미 있는 볼거리도 많고 경치도 좋아, 괜찮은 음식점도 몇 군데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나에게는 추억이 있는 장소였다. 그 동네는 남편하고 나하고 툭하면 바람을 쐬러 다니던 곳이었다. 여름만 되면 남편은 그 동네 단골 음식점에서 장어구이와 쏘가리 매운탕을 먹는 걸 즐겼다. 남편의 유일한 취미가 식도락이었다.
남편이 나를 앞서 저 세상으로 간 지 금년이 이십 년째가 된다. 일 년 남짓한 투병생활이 허사로 끝나고 임종의 날이 얼마 안 남았을 때도 남편은 마지막으로 그 동네 그 집에 가고 싶어 했다. 그는 혼자 걷기도 어려울 때였지만. 우리는 그게 마지막 소풍이란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식구들이 총동원해서 짐짓 명랑하게 그러나 속으로는 목이 메이는 심정으로 그 매운탕 집엘 갔다.
그 집은 뜰이 넓은 조선 기와집이고 주인아주머니는 쪽을 찐 구식 부인이었다. 남편은 그 부인이 손수 만들었다는 밑반찬을 고루 맛보면서 다 맛있다고 칭찬을 하고 남은 건 싸달라고까지 했다.
그리고 흐르는 강가에서 바람을 쬐면서 어린 손자가 뛰노는 모습과 젊은 아들과 사위가 강물에 물수제비를 뜨는 걸 구경했다. 그때는 보이는 모든 것이 왜 그리도 아름다웠는지. 젊은 내 새끼들의 옷깃과 검은 머리칼을 나부끼게 하는 바람조차도 어디 멀고 신비한 곳으로부터 그 애들이 특별히 아름답게 보이라고 불어온 특별한 바람처럼 느껴졌으니까. 아마도 나는 그때 곧 세상을 하직할 남편의 눈으로 그 모든 것을 보았을 것이다.
그 후 며칠 안 있다 남편은 이 세상을 떴다. 남편이 세상을 뜨고 나서 일 년도 채 안 됐을 때, 내가 혼자 된 슬픔을 잘 극복하지 못하고 힘들게 사는 걸 보다 못한 어떤 친구가 나를 위로한답시고 그 집에 데려간 적이 있다.
여전히 쪽찐 아주머니가 손수 반찬을 만들고 숯불에 장어를 굽고 있었다. 나는 그 아주머니가 남편의 안부를 물을까 봐 속으로 전전긍긍했지만 그런 일 없이 그냥 넘어갔다. 그래도 장어를 먹을 생각은 조금도 나지 않았다. 그 굽는 냄새도 싫었다. 친구의 호의를 무시할 수 없어 조금 먹는 시늉만 했는데도 토할 것 같은 걸 참느라 진땀을 흘렸고 결국은 체한 게 오래 갔다.
그리고 이십 년 동안 가지 않던 동네로 K교수가 접어들었고 정확하게 그 기와집으로 가는 게 아닌가. K교수에게 그 집에 얽힌 옛날 얘기를 한 적도 없으니 순전히 우연의 일치였다. 쪽찐 아주머니는 보이지 않았고, 마당의 후박나무와 은행나무는 몰라보게 큰 거목이 되어 있었다.
음식점과 찻집도 많아져서 예전 같지 않았지만 강바람만은 예전 그대로 상쾌했다. K교수는 내 의견을 묻지도 않고 그 집은 장어구이와 쏘가리탕이 일품이라고 그걸 시켰다. 나는 혹시 그걸 먹을 수 없으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그 두 가지가 차례로 나오자 나는 건강한 식욕을 느꼈고, 그 옛날 남편이 그랬던 것처럼 그걸 달게 먹었다. 그리고 남편을 떠나보낸 고통이 순하게 치유된 자신을 느꼈다. 시간이 나를 치유해 준 것이다.
이 나이까지 살아오면서 깨달은 소중한 체험이 있다면 그건 시간이 해결 못할 악운도 재앙도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시간이야말로 신神의 다른 이름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