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천 / 이은희

 

 

 

봄은 약속이나 한 양 어김없이 천변으로 돌아왔다. 그를 목메어 기다린 사람도 없건만, 한사코 돌아와 우리를 반긴다. 꽃들이 꽃망울을 거침없이 터트리고 있다는 건, 천변이 주가를 올릴 날도 머지 않았다는 증거다. 발 없는 말은 꽃 소식을 달동네 아무개에게도 알리고 말리라. 사람들은 머지않아 꽃구경을 핑계로 이름난 일탈(만남)을 감행하리라. 모두 제 발로 달려와 듣기 좋은 말로 천변을 마구 흔들어댈 것이다.

연일 매체에선 아래 지방에 매화꽃이 구름같이 피었다고 보도한다. 내 고장 무심천 언저리에도 벚꽃과 개나리가 흐드러졌다. 그들이 손짓하는 곳으로 가지 못하는 내 처지와 비슷한 사람들은 '천변에서 만나자'는 약속을 하느라 전화통이 불이 날 것이다. 나도 덩달아 휩쓸린다. 가족과 직장 동료, 연인일 것 같은 사람들, 그리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솜사탕 파는 아저씨도 보인다. 종일 봄꽃을 즐기는 사람들로 북적댄다. 하천 주변은 꽃이 피고 지는 내내 인산인해人山人海, 아니 인천인해人川人海일 것이다.

역시 천변은 밤낮없이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벚나무 아래서 만개한 꽃 타령만 할 뿐, 정작 자신의 곁을 내준 하천의 유구한 역사의 언급은 한마디도 없다. 오로지 자신의 일들을 토해낼 뿐이다. 만약 천이 귀를 열었다면 서운할 터이다. 아이들이 가재 잡고 물장구치던 하천의 예전 모습은 정녕 옛이야기로 사라진 것일까. 그래, 젊은이들이 어찌 하천에서 정겨웠던 놀이를 알 턱이 있으랴.

여름 방학이면, 시내 일원 학생들 손에는 낫 한 자루씩을 들고 천변으로 모였다. 여름내 무성히 자란 풀을 베는 행사가 이루어진다. 그 행사는 우리 손으로 태풍과 장마를 대비한 일이기도 했다. 만약 요즘 아이들에게 그 시절처럼 풀 베는 일을 하라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그리 보면, 그 시절 우리는 친구네 집 농활도 자처하며 하천 풀베기 봉사도 노닐며 하였던 것 같다. 자연스레 자연과 함께 한 시간이 많았던 우리다.

30도를 오락가락하는 염천에 허리쯤 자란 풀을 베는 일도 친구들과 함께해 어렵지 않았다. 학교마다 풀 베는 구역을 배정받았기에 풀베기하며 '누가 빨리 풀을 베나'내기를 했던 것도 같다. 밭에서 돌아온 농부의 옷에서 풍기는 땀내가 날 정도로 열중하였다. 일을 끝내고 학교 앞에서 즐겨 먹던 '냉면과 고로케'는 또 얼마나 꿀맛이었던가. 모기란 놈에게 자진 헌혈을 하면서도 웃음이 넘치던 그 시절, 우리의 마음은 자연을 닮아 순수 그 자체가 아니었나 싶다.

우리 고장의 젖줄은 무심천이다. 하천을 경계로 구를 나눈다. 대부분 구를 넘지 않으려는 안주 경향이 있다. 그러나 도심 중심에 난 하천이니 일을 보려면 넘나들 수밖에 없다. 돌아보면, 천은 우리 생활 깊숙이 밀접하게 존재한다. 장마 들어 물이 차는 날 빼고는 천에 걸친 징검다리를 건너거나, 자동차로 천변의 다리를 수없이 오갔다. 바쁘다는 핑계로 무심코 지났다고 말하나, 나의 눈과 발로 부딪혔으니 어찌 익숙한 풍경과 끈끈한 정이 들지 않겠는가. 천변의 하상도로를 통하여 하루의 시작과 마감을 짓는 사람이 많다. 이렇듯 하천은 시민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다. 생활에 소중한 공간이기에 고장의 젖줄이라고 부르는가 보다. 천에 흔들리는 물결을 바라본다. 저 물결처럼 내 가슴도 무시로 흔들거린다. 나도 모르는 사이 내 안에 순연한 감성을 부르고 있는 거다. 천에 흐르는 물결처럼, 흔들리는 갈대처럼 가만가만히 말을 건넨다. 그 묘한 감정은 지치고 팍팍한 내 삶의 새로운 기운을 불어넣어 주는 것 같다.

이런 묘한 감정을 계절이 주는 풍경 탓이라고 치부한다면 어설픈 생각이다. 이 길로 출퇴근 한지가 십수 년이 넘는다. 꽁꽁 얼었던 천이 녹아 연둣빛 새싹들이 손짓하는 봄도, 졸가리만 남아 바람에 휩쓸리는 억새의 군무를 즐기는 겨울도 그 나름의 멋은 있었다. 무엇보다 긴긴 세월 간절한 마음을 품은 이들이 이 길을 걸어왔기 때문일까. 천변에는 위안과 치유의 힘이 서려 있다. 뜨거운 욕망 덩어리를 가슴에 끌어안고 들볶다 이곳에서 마음의 빗장은 쉬이 풀려 빈 마음으로 돌아왔다. 무심천은 어느 절에 내 절에 내 가슴 깊은 곳까지 차지하고 나의 정서를 관장하고 있었던 것이다,

천변에 꽃비가 하염없이 내린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다. 그리 성하고 화려했던 봄날도 이렇듯 허무하게 스러져 간다. 우리네 한생도 이런 것이려니 생각하니, 마음공부 한 수 배운 셈이다. 이제 봄의 장막도 천변의 짧은 인기도 막을 내릴 때가 된 것이다. 그러나 내년 이맘때 다시 볼 수 있다는 희망이 있기에 덧없지만은 않다. 계절이 주는 하천의 그윽한 풍경과 이곳에서 엮었던 온정은 그리움의 잔영으로 남아 가슴의 현을 건드리고 스쳐갔다.

꽃비가 오달지게 내렸으니 바통을 이어받아 나뭇잎들은 검푸른 빛으로 출렁일 것이다. 그리고 천을 스쳐온 바람과 합세하여 시원한 그늘을 선사하리라. 예전에도 그래왔던 것처럼 사람들은 하천을 중심으로 그 언저리를 빨리 걷거나 자동차로 스치거나, 징검다리를 부지런히 건넌다. 나 또한 출근을 서둘고자 대교로 오른다. 천을 바라보니, 우리네 분주한 일상과 다르게 물은 무심히 흘러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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