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만치에 있는 사랑 / 김미정

 

 

 

시어머니가 계신 요양병원에 갔다. 2년 정도 지내던 병원에서 이곳으로 옮긴 지 3주째다. 새 병원의 휴계실은 넓지 않지만 병실이 환하고 침대도 어머니가 원하던 위치에 정해져 많이 안정된 모습이었다. 지난번 병원에서 있었던 순탄치 않았던 일들이 지금도 생생하다.

조용한 성격이라고 알고 있던 어머니가 요양병원에 입원한 후로 많이 달라졌다. 같은 병실의 할머니들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에도 금방 노여워하고 토라지니 아무하고도 친하게 지내지 못했다. 어머니를 돌봐주는 간호사와 요양보호사들에 대해서도 불만이 많아서 찾아뵈러 갈 때마다 시시콜콜 하소연이 끝도 없었다. 그럴 때마다 병원을 옮기자고 하면 그럼 당신이 항복하는 것이라고 절대 퇴원할 수 없다고 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답답한 시간이었다.

어머니는 자신이 다른 할머니와 다른 사람인 것을 알아주기를 바랐다. 교양 있고 유식한 자신을 뽐내고 싶어 했지만 들어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던 것이다. 뉴스나 시사프로에는 관심이 없고 오락프로를 좋아하는 할머니들을 수준이 맞지 않는다고 고개를 저었다. 어머니는 아침에 일어나면 신문을 읽고 아침뉴스를 시청하면서 여당이 어떻고 야당이 어떻고 이런 말을 하고 싶어 했다. 그러면 사람들이 모두 유식한 할머니라고 우러러볼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몇 년, 몇 월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다 알고 있다며 좋은 기억력을 과시해서 사람들이 깜짝 놀라며 감탄하는 것을 기대했지만 병실의 할머니들은 아무 관심이 없었다.

같은 병실의 할머니들이 어머니를 무시한다며 좋은 옷과 맛있는 간식을 잔뜩 사 오라고 했다. 돈이 없으면 가난하다고 업신여기니 용돈도 넉넉히 주고 가라고, 쓸 일이 많다고 했다. 갈 때마다 침대 옆에 앉혀두고 내가 대궐 같은 아파트에 사는 것처럼, 벤츠라도 타고 다니는 것처럼, 아들이 무슨 이 나라 살리는 일을 하는 것처럼 말을 풍선처럼 부풀려서 했다. 언제나 마지막은 송곳 같은 말로 그 풍선을 내가 터뜨리는 것으로 마무리가 되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끝이 나지 않을 것 같았다.

요양보호사들이 어머니를 미워해서 식판을 제일 마지막에 갖다 주고, 기저귀도 말해야 봐준다며 봉투를 줘야 할 것 같다고 했다. 목욕 시간에도 음료수를 한 병씩 주는 할머니들에게는 잘 닦아주고 어머니는 대충해주는 것 같다고 했다. 간호사들이 약을 멋대로 준다고, 다른 할머니들한테는 상냥한데 당신한테는 퉁명스럽다고 어머니의 불만은 끊이지 않았다. 병원 직원들한테 명절에는 선물을 죄다 돌려야 한다고 그래야 어머니를 더 정성스럽게 돌봐줄 거라고 할해서 큰아주버니한테 면박을 당하기도 했다.

수간호사와 장시간 전화 상담을 두 번하고, 어머니를 뵈러 가서도 병원 관계자와 몇 번의 상담을 했다. 병원 측에서는 어머니의 퇴원을 은근히 권유하였다. 아무래도 환자가 편한 곳을 찾아봐야 할 것 같다고 하며, 어머니가 오기 전에는 할머니들끼리 화평하고 사이가 좋았다는 말을 하였다. 두 말 없이 병원을 옮기고 싶었지만 어머니의 고집이 완강하고 침대를 치우겠다는 말에는 바닥에서 지낼 것이라며 물러서지 않았다. 결국 자진 퇴원을 포기하고 어머니가 다른 분들과 싸우지 않는다는 다짐을 받은 후에 계속 그 병원에 있기로 했던 것이다.

어머니 혼자 속을 끓여서 그런지 겨울 초입쯤 폐렴에 걸렸다. 초기라 항생제 투여로 잘 치료할 수 있을 거라는 병원 담당의사와 통화 후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그런데 다음 날 바로 병원으로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가서 보니 상태가 심각해 보였다. 바로인근의 종합병원으로 옮겨 검사해 보니 염증 수치가 높아 위험하다며 중환자실로 가게 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어었다. 큰아주버님은 아무래도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할 것 같다고, 의사 면담 후 동생들에게 말했다.

그런 어머니가 호전되어 삼 일만에 일반 병실로 옮기고 일주일 수 다시 요양병원으로 가도 될 정도로 회복되었다. 지난번 요양병원에서의 일을 모두 알고 있는 자식들은 아참에 병원을 다른 곳으로 알아보기로 했다. 앓고 나서 그런지 어머니는 고집을 부리지 않았고 며치 발품을 팔아 어머니가 계실 새 요양병원을 정하게 된 것이다.

여기도 간호사와 요양보호사가 있다. 병실의 할머니들까지 지난번의 병원과 환경은 거의 같다. 이제는 어머니가 마음을 바꾸면 좋겠다. 어머니의 높은 교양을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속상해하고 원망하지 않길 바란다. 다행히 새 병원에서는 지금까지 누구와도 갈등 없이 잘 지내고 있는 것 같다.

병실 소파에 조용히 앉아 계신 어머니. 아직 기력을 회복 못하신 탓인지 기운이 없어 보인다. 낮에는 괜찮다가도 해가지면 가족들이 그리워진다며 커튼이 벗겨진 창문을 응시한다. 자주 찾아뵈러 오겠다는 말밖에는 할 말이 없다. 그 말이 지켜지지 않았기에 더 외로우셨을 것이다. 어머니의 기다림이 안타까우면서도 또다시 다음 주를 기약하는, 어머니에 대한 내 사랑은 아직 좁혀지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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