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한 상 / 황점숙
둘은 조금 전 잠시 침묵 속을 헤맸다. 같은 곳을 바라보고 온 사람으로서 각자 착잡한 속마음을 삭히는 중이리라. 몇 해째 요양병원에 입원 중인 어머니를 뵙고 나오는 길이다. 자동차가 빨간 신호등 앞에 멈춘다. 좌회전을 하면 집으로 가게 되는데 자꾸만 우측으로 눈이 간다. 순간 잘 차려진 밥상이 떠오른다.
“형님 우회전합시다.”
운전대를 잡은 시누이가 오른쪽으로 핸들을 돌렸다. 십여 분 달려서 소문난 밥집에 왔는데 아직도 입안에 씁쓸한 맛이 감돌아 주변을 한 바퀴 돌기로 했다.
바람 따라 물결이 이는 넓은 저수지에 청둥오리가 떼 지어 떠다닌다. 몇 마리는 날개를 펴고 날아오르더니 물수제비를 뜨면서 재주를 부린다. 평화로운 풍경이 불편한 속마음을 잠시 잊게 한다. 저수지를 건너 불어오는 바람이 차갑지만 모처럼 만난 자연풍경이 좋은지 형님은 내게 포즈를 취하라며 카메라를 켠다. 저수지를 끼고 걷다 보니 인가 울타리에 벚꽃이 만개했다. 형님은 이 고운 꽃을 어머니께 보여드릴 수 없게 되었다며 다시 울먹인다. 자연은 회사함으로 시원한 바람으로 우리 맘을 위로해 준다. 작은 즐거움이 행복인 것을….
어머님은 성격이 꼼꼼하고 까다로운 분이었다. 팔십 중반을 넘으면서 청력이 급격히 둔해지더니 차츰 거동이 불편해져서 가정에서 생활이 어렵게 되어 최후의 방편으로 요양병원을 선택했다. 남매들은 모여서 병원 수발을 누가 해야 할지 의논을 했다. 외동딸을 많이 의지하던 어머님의 의사를 존중해서 딸이 책임을 지기로 하고 시어머님이 살던 집을 정리하여 시누이에게 주었다. 경비 걱정은 덜었다 하더라도 병원 수발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형님은 매주 정해진 요일에 간식을 챙겨 어머니를 찾아뵈며 외로움을 달래드린다. 우리는 가끔 외출을 원하시는 어머니를 모시고 나와 집에서 염색도 하고 목욕도 시켜드리며 이틀 정도 쉬어가시게 해드렸다. 형님의 정성으로 며느리인 나뿐만 아니라 자식들은 일상생활에 지장 없이 살고 있다.
구순을 넘긴 어머님은 걸음걸이가 둔해지더니 어느 날 고관절 부상을 입고 말았다. 이제는 병상에 누워만 있으니 날로 쇠약해지는 것을 느낀다.
오늘은 병원 방문 길에 동행을 했다. 병실로 들어서는 우리를 알아보고 손을 내미셨다. 형님이 오른손을 잡고 난 어머님의 왼손을 잡았다. 갑자기 어머님이 소리를 내어 우시는 바람에 내가 너무 오랜만에 들렀구나 싶은 죄책감에 말 한마디 만들지 못하고 바라보기만 했다. 순식간에 눈물이 주름을 타고 흘러 화장지를 뽑아 조심스레 닦아드렸다.
“엄마 왜 그래?”
낯선 모습인지 시누이가 물었다. 어머니는 귀가 멀어져 못 알아듣고 나를 보면서 말문을 여셨다.
“딸네 집 옆에 사요?”
내 귀를 의심했다. 분명 나를 못 알아본 어머님의 질문이었다. 그냥 고개를 끄덕이면서 얼버무리며 대답을 했다. 이번 일이 처음은 아니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 주무시던 어머님 상황을 고려해볼 때 잠시 뒤는 나를 알아보리라 짐작했다. 그런데 오늘은 30분이 흘렀는데도 계속 타인에게 하듯 질문을 하셨다. 가슴이 답답하고 이내 말문이 막혀버렸다. 하지만 오른쪽에 선 당신의 딸을 보고는 분명 옳은 말씀만 하시는 게 아닌가. 그래서 더 슬프다. 치매의 증세가 그렇다고 한다. 최근 기억부터 사라진다지 않던가. 형님이 어머님의 요양병원 수발을 맡아주신 것이 참 다행이다. 모녀의 정은 확실히 고부간의 정과는 견줄 바가 아니구나 싶다.
우리는 말문을 닫고 무거운 발걸음으로 병원을 나섰다. 답답한 심정이 집으로 가는 발걸음을 막았다. 형님을 위한 맛있는 점심 한 끼를 내가 대접하고 싶다. 그래서 자꾸만 우측으로 맘이 쏠린 것이다. 내게는 마냥 고마운 분이다. 형님이 아니었으면 난 지금 어떤 생활을 하고 있을까!
소문난 맛집에서 차려준 푸짐한 한 상에 한층 밝아진 형님의 미소가 답답했던 내 가슴에 상쾌한 바람을 일으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