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재파탈 / 김정화
유행에 둔감한 당신. 배꼽까지 끌어올린 통바지와 발가락 양말은 단골 아이템이다. 마트나 영화관에 갈 때도 만능 유니폼인 등산복 점퍼로 불룩한 배를 감추고 정장으로 깔맞춤하는 날에는 큐빅 박힌 원색 넥타이로 포인트를 준다. 어딘가 한 박자 늦으며 젊은이들의 대화를 해독하지 못해 답답할 때도 있으나 가끔 엉뚱한 멘트로 좌중을 폭소케 하는 재주를 지녔다. 고깃집 물수건으로 스스럼없이 목덜미를 닦는 당신을 사람들은 중년 아저씨라고 부른다.
그러한 당신이 변하고 있다. ‘아재’라는 말로 자신을 낮추었다. 오빠도 아저씨도 할배도 아닌 아재. 단어가 가지는 힘은 위대하다. 아저씨가 아재로 호명되는 순간, 굳은 얼굴이 펴지고 목소리는 다감해진다. 허세와 권위를 내던지니 세대 간 대화가 가능해졌다.
“할아버지가 좋아하는 돈은?” “할머니”
“이미자 더하기 이미자는?” “사미자”
“고래 두 마리가 같이 소리 지르면?” “고래고래”
“모든 사람이 일어나게 하는 숫자는?” “다섯”
“원숭이를 불에 구우면?” “구운몽”
“박사와 학사가 밥을 잘 먹으면?” “박학다식”
철 지난 유머 코드에 실소를 금할 길이 없다. 답은 무조건 썰렁하다. 그런데 썰렁할수록 반응은 더욱 폭발적이다. 둔한 사람은 아무리 생각해도 왜 웃기는지 알지 못하다가 집에 가서 잠잘 때 깨닫고 빵 터진다고 한다. 그것이 아재개그의 핵심이다.
아재개그 보급에 고군분투하는 당신의 역할이 눈물겹다. ‘주목!’이라는 명령으로 시작하지만 기억회로가 마찰이라도 일으키면 안주머니의 수첩까지 뒤적이며 이어나간다. 웃음 포인트에 찬바람을 날리거나 “헐~” 하는 탄식어가 터져 나와도 좌중이 웃을 때까지 뻔뻔하게 반복한다. 심지어 웃어야 하는 이유까지 훈시하여 기어코 박장대소를 받아내고야 만다. 대단한 집념이다. 기특한 아재개그다.
소통하려는 당신은 멋지다. 찢청까지 소화하는 패셔니스타는 아닐지언정 골반바지 입기를 시도하고 백팩을 걸치며 비비드한 컬러 티셔츠로 멋을 낸다. 해장국 입맛을 양보하고 디저트카페에 브런치 메뉴를 선택하여 급할 땐 컵밥도 마다치 않는다. 핫한 아이돌그룹도 기억하고 SNS 계정도 만들었다. 신사의 매너를 갖춘 듬직함과 유머코드를 뿜는 반전 매력이 잘 어우러졌다. 여기에 후배들과 뜻이 통한다면 드디어 당신도 치명적인 매력남으로서 아재파탈 대열에 합류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아무나 아재가 될 수 없다. 일부는 꼰대로 자족한다. 젊은 꼰대에서 늙꼰으로 또 그랜드꼰대로 오지랖을 넓혀나간다. 그들은 애초에 유행 따위는 관심 없다. 툭툭 반말을 던지고, 간섭하고 지적질한다. 부하들의 휴일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예사롭게 사생활을 캐묻고, 상대의 말을 일언지하에 묵살하고도 상처 난 마음을 들여다보려 하지 않는다. 악성 꼰대는 “답은 정해져 있으니 너는 대답만하면 돼.”라는 ‘답정너’를 강요한다. 그러고도 정작 본인은 꼰대이즘인 사실을 모르거나 부정한다. 꼰대질은 꼰대들에게나 하라는 유행어도 있지 않은가.
당신이 꼰대가 되지 않으려면 “너는 틀렸어.”하고 무조건 단정 짓지 마라. 고답적인 이야기는 노잼이다. 당신이 아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원치 않는 조언으로 타인을 가르치려고 하지 말라. 그때는 맞았지만 지금은 틀릴 수 있다. 때로는 시시콜콜한 말도 경청할 줄 알아야 하는 법. 당신과 이야기하고 싶은 상대의 속뜻도 품어야 하리. 편드는 것이 익숙하지 않다면 적절한 추임새쯤 넣어 주시라. 우리는 말이 통하는 사람을 원한다. 그것이 ‘어쩌다 어른’이 아닌 ‘진짜 어른’이 되는 길이다.
급변하는 시대다. 단어가 바뀌고 뜻이 달라진다. 사물도 사람도 변하고 생각은 뒤섞여 기발한 아이디어가 탄생한다. 런치와 디너를 겸한 ‘딘치’ 메뉴가 생겼고, 도시락에 치킨을 담은 ‘치도락’이 출시되었으며, 코트와 카디건을 합친 ‘코디건’도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남성에 대한 선호도도 달라졌다. 과거 여성들이 터프한 마초 스타일에 호감을 가졌다면 지금은 부드러운 매너남인 그루밍족에게 눈길을 돌린다. 꽃청춘의 남자가 세월 따라 아저씨로 변하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품격 있는 아재가 되려면 스스로 불통의 철벽을 허물어야 한다. 어찌 보면 젊음과 늙음은 하나가 아닌가. 그 중심에 아재가 자리한다.
그러니 그대여, 노땅의 이미지는 이제 그만.
답답한 꼰대보다 러블리한 아재를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