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은 빛나건만 / 신경숙
이모네 집은 버스가 하루에 한 번 다니는 우리 집에서도 더 들어가야 하는 골짝에 있었다. 이모네엔 나보다 열 살 위인 연님이 언니가 있다. 이모는 내가 가면 한없이 선량하게 웃으시며 보리쌀 위에 쌀을 얹어서 밥을 안치셨다. 무슨 일인가 늘 바쁜 이모는 거기까지만 했다. 불을 때고 뜸을 들이고 상을 보아 밥을 푸는 건 연님이 언니였다. 밥상에 앉아서 보면 내 밥만 쌀밥이었고 일곱이나 되었던 이종오빠들은 물론 이모 이모부 연님이 언니까지 새까만 보리밥이었다. 이상한 일이다. 내 몫의 그 쌀밥이 눈 위에 찍혀 있던 발자국과 같이 생각나는 것은.
연님이 언니는 여중을 졸업한 후 줄곧 집에서 이모를 돕고 지냈다. 이모네는 기와지붕의 안채와 초가지붕의 아래채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언니는 거처는 아래채였다. 잔꽃무늬 벽지와 노란 장판의 연님이 언니 방은 늘 정돈이 되어 있어서 아늑했고, 작은 미닫이창을 열면 울타리도 없이 저만큼 오르막길이 내다보여 좋았다.
어느 해 겨울이었다. 연님이 언니가 열여덟이나 열아홉이었을 때의 것이다. 연님이 언니 방 그 미닫이창을 열면 풍경이 돼주었던 그 오르막길을 지나면 몇 채의 집이 있었는데 그중의 한 집에 살던 한 남자가 연님이 언니를 사랑했던가보다. 처음에 연님이 언니는 참 별일이라는 듯이 고갤 돌리거나 그저 조금 재미있어 했을 뿐이었다. 나는 이모네에 가면 연님이 언니와 있는 시간이 많았으므로 가끔 연님이 언니 주변을 서성이는 그 남자의 기척을 느끼곤 했다.
그 밤은 초저녁부터 눈이 지독히도 내렸다. 안채에서 역시 나만 쌀밥을 먹고 이종오빠들과 놀다가 한밤중에 연님이 언니 등에 업혀 건너올 땐 소북이 쌓인 눈빛에 밤이 하얬다. 이부자리를 깔고 잠이 들려는 때, 누군가가 미닫이창을 두드렸고, 문을 열어본 연님이 언니는 곧 문을 닫아버렸다. 그 누군가가 한 번 더 문을 두드리는 것 같았으나 연님이 언니는 일어나지 않았다.
새벽이었다. 이모가 아침밥 짓는 것을 도우려 나가던 연님이 언니가 뭔가 생각이 난 듯이 미닫이창을 드르륵 열었다. 그리고 오래도록 서 있었다. 뭘 보고 있나 싶어서 나도 연님이 언니 곁에 가보았다. 연님이 언니가 내다보고 있었던 건 미닫이창 밑의 그 남자였다. 밤새 창 아래서 서성였던 모양으로 꽝꽝 얼어있던 그 남자는 나까지 깨금발을 하며 내다보자 멋쩍게 웃으며 돌아섰다. 다른 데는 눈이 소복소복 쌓여 있는데 그 남자가 서 있던 창문 아래만 서성임으로 눈이 뭉쳐서 윤이 날 정도였다. 연님이 언니는 그 남자가 쌓인 눈 위에 발자국을 남기며 오르막길을 넘어간 뒤에도 멍하니 서 있었다. 쌓인 눈 위에 비칠비칠 찍힌 그 남자의 발자국을 보면서.
겨울이 한 번 더 가고 연님이 언니는 그 남자의 아낙이 되었다. 연님이 언니의 결혼식은 내가 본 마지막 구식 결혼식이다. 밤에 이를 갈며 자는 버릇이 생긴 내게 어머니는 초례청의 원앙을 박아놓은 나무그릇 속에서 쌀을 한 줌 집어 주셨다. 그걸 꼭 꼭 씹어 먹으면 이를 갈지 않는다면서. 나는 이를 갈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라 청록으로 치장하고 족두리를 쓴 연님이 언니가 어쩐지 슬퍼 보여서 어머니가 집어 준 쌀을 꼭꼭 삼키며 조금 울었다.
지난 가을에 이제 서른아홉이 된 연님이 언니를 친척 결혼식장에서 보았다. 거의 십오 년 만이었다. 당연히 내 밥그릇에 쌀밥을 퍼 담아주었다. 안채에서 나를 업고 아래채로 건너오던, 눈 속의 길 잃은 짐승 같던 그 남자를 멍하니 바라보던, 그때의 연님이 언니가 아니었다. 그 골짝을 떠나 안양에서 오래 살았다는 연님이 언니는 살갗이 튼 얼굴로 너, 왔구나, 피로하게 잠깐 웃어줬을 뿐, 곧 면발이 섞인 갈비탕이 나올 식당으로 몸을 숨겼다.
……푸치니는, 푸치니는 토스카의 연인 카바라도시에게 애절한 노래를 부르게 한다. ……아아, 별은 빛나건만 그 빛남은 그대로 돌아오지 않네. 잊힘이 나를 위로하지만 또 나를 아프게 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