흠흠 / 이은희
촛불이 파르르 떨린다. 이어 너울거린다. 피부에 느껴지는 바람도 눈앞에 움직이는 이도 없다. 어떤 기류가 불꽃을 흔드는가. 분명히 눈에 보이지 않는 그 무엇인가가 있다. 정적이 감도는 공간에 무언가 저 혼자 살아 움직인다는 생각에 이르자 두 눈을 딱 감는다.
명상 중에는 후각이 대장이다. 두 눈을 감았으니 보이는 게 없고, 정적이 감도니 두 귀 또한 들을 게 없다. 촛불이 어느 정도 타오르니 아로마 향이 공간을 가득 메운다. 이제 복식호흡이다. "흠" 숨을 길게 마셔 배를 동그랗게 불리고, "흠" 천천히 배가 복벽에 붙는 느낌이 들 정도로 숨을 길게 내쉰다. 몸 안에 향이 드나들자 긴장이 풀어진다. 참으로 편안하다. 향기 하나로 복잡한 일상을 지낸 나의 심신을 간단히 어루만지니 코는 대단한 능력자다.
얼굴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코. 그의 역할은 여럿이나, 지금 내가 말하고 싶은 건 감각 부분이다. 후각은 기체 상태의 자극물이 코의 말초 신경을 자극하여 생기는 감각이라는 걸 모르는 이 없으리라. 명상 중인 나의 육체는 기부 ㄴ좋은 향기에 젖어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힘이 나의 감각을 깨운다. 시각, 미각, 촉각, 청각, 후각 중에 냄새 감각인 후각만이 살아 있는 것 같다. 지금 이 순간 코가 감각 전부인 양 유세를 부린다 해도 그 누가 무어라 하겠는가.
나는 신체 감각 중 후각이 뛰어나다. 아니 월등하리라. 일단 안경을 벗고 책을 보라면 어려우니 시각은 애초 승부 대열에 끼지 못한다. 청각 또한 젊은 날 이어폰을 끼고 학문에 열중하다 보니 왼쪽 귀가 낮은 소리에 약하다. 그러니 아쉽게도 청각도 탈락이다. 미각도 내세울 게 없다. 음식이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먹고 즐기니 이 또한 남다른 매력이 없는 게 맞다. 촉감은 조금 유별나기는 하다. 통증을 못 참고 엄살을 부리니 오감 중 촉각을 순위로 정하라면, 아마도 이 순위에 들리라.
그러니 후각이 일 순위인 셈이다. 후각은 잊고 있던 과거의 시간을 불러 내 앞에 앉힌다. 과거의 느낌을 고스란히 기억하는 능력이 있는 것 같다. 냄새 맡은 것 자체가 싫던 유년시절의 모습을 선명하게 그려 놓는다. 옛집 마당은 돼지 축사고 그러니 좋은 냄새가 날 리가 없다. 축사 안 배설물 청소를 하고 나면, 분뇨 냄새가 온몸에 밴다. 몸을 씻어도 퀴퀴한 냄새는 코끝에서 오래 맴돌아 기분이 우울해진다.
집안에 축사가 있는 한 냄새를 말끔히 털어낼 수가 없다. 비위가 거슬리고 구릿한 냄새는 분신처럼 따라다닌다. 그놈의 향기도 내 집에선 그나마 참을 만하다. 불쾌한 냄새가 친구들에게 알려질까보 몸과 옷가지를 매번 '흠흠'거리며 확인한다. 기와집과 축사가 헐리고 아파트가 세워질 때까지 그 냄새는 나를 따라다녔다. 중학교에 입학하며 마침내 그 행위도 끝이 난 것이다.
후각은 과거를 아름답게 포장하는 능력까지 있는가 보다. 시간이 흐르니 과거의 기억을 어린 시절의 향수로 변화시켜 놓는다. 냄새 감각, 소리도 형태도 없는 것이 참으로 끈질기지 않은가. 옛 시절의 기억을 퍼올려 아직도 코끝에 냄새가 돌지만, 그 시절처럼 냄새가 지겹지도 싫지도 않다.
아마도 그 냄새와 더불어 그리운 것들이 밀려와 그런 것일까. 학교 가는 좁은 골목길에서 느꼈던 구수한 된장국 냄새와 마른 땅에 갑자기 소나기가 내려 풀풀 날리던 흙내, 아버지와 산길을 걷다가 느낀 쌉싸래한 낙엽 냄새…. 깊은 감성을 일으키는 향기가 후각을 스쳐 오랜 추억을 불러낸다. 이내 내 가슴을 봄비처럼 촉촉이 적신다. 아니 나의 메마른 정서를 순화한다.
요즘 향기마케팅이 대세이다. 사람들은 좋은 향기를 떠올리며 향을 좇아 장소를 선택하는 경향이 있다. 나 또한 요가에서 명상을 즐기는 것인지, 향기를 즐기는 것이지를 똑 부러지게 분간할 수가 없다. 단 하나, 가부좌를 틀고 앉은 나에게 냄새 감각은 살아 움직여 나의 지친 일상을 어루만진다. 그 덕분에 자연스레 새로운 날의 기운을 얻는다. 그리 보면 후각은 살아갈 힘을 주는 대단한 조력자가 아닌가.
하루를 마감하는 시간이다. 오늘도 향기로 침묵의 감각을 깨운다. 아니 지친 육체를 냄새감각에 맡긴다. "흠" 향기로운 공기를 코로 길게 들이마시고, "흠" 내 몸 안에 불온한 공기를 코로 길게 내쉰다. 눈을 가만히 뜨니 촛불이 심지의 바닥까지 태우고 있다. 점차 향기도 촛불처럼 사위어 가리라.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과의 상생과 소멸, 인간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우주 만물은 정녕 뫼비우스 띠처럼 돌고 도는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