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N문학 2023.9.10월 호 vol.175

대변인이 되다/이현숙

 

 

가까이 지내는 사람들이 내게 질문해 온다. ‘오징어 게임두 번째 시리즈는 언제 나오는지, 그 안에 나오는 게임은 해 보았는 지를. 궁금증을 풀어줄 겸 서울에서 조카가 보내준 뽑기용 국자와 여러 모양을 틀을 이용해 설탕을 녹여 뽑기 놀이도 같이 하고 딱지 접는 법도 알려주었다. 얼떨결에 나는 한국 문화 콘텐츠 대변인이 되었다. ‘Korea'가 앞에 붙으면 언제든 어깨가 으쓱해지니 뼛속 깊은 사랑은 막을 수가 없다.

언제부터인지 한국의 드라마가 한인에게만 귀속된 것이 아닌 글로발화 되었다. 내 이웃들도 기생충이나 오징어 게임 같은 드라마를 얘기할 때는 한인 못지않게 아는 체를 해댄다. 자막을 다 읽지는 못해도 전후 맥락의 흐름만으로도 충분히 즐길 수 있다는 것이었다. 나도 미국식 감정 표현을 배울 수가 있어서 일부로라도 자막에 눈길을 주고는 한다. 어떤 때는 뭐지? ?’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귀로 들리는 한국말과 눈으로 보는 영어 문장이 생뚱맞아서다. 그럴 때는 몇 번 돌려 보며 나라면 어떻게 할까?’ 궁리를 해본다.

자막은 번역이다. 번역은 낯선 언어를 낯익은 언어로 옮기는 것이다. 그래서 직역과 의역이라는 양 갈래의 난제 앞에서 방황하게 된다. 직역보다 더 중요한 것이, 문장이나 표현을 각기 다른 문화의 정서적 일치점에 접근하는 일일 것이다. 가끔 이민 1.5 세대인 시인이 자신의 시를 한국어로 번역하는데 적확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는다며 나에게 묻는다. 상황이나 느낌을 이야기하다가 둘이 동시에 맞아!” 탄성을 지르며 좋아하기도 하고 며칠 걸려 고민하기도 했다. 충분히 이해하지 않으면 시의 흐름을 놓칠 수 있기에 토씨 하나도 조심해야 하는 번역의 어려움을 절실히 느낀다.

 

오역의 대표적인 사례는 나다니엘 호손의 소설 <The Scarlet Letter>. 1953년에 <주홍글씨>로 제목으로 번역되었던 것이 요즈음 특정 글씨체가 아닌 문자 자체를 의미한다는 뜻으로 <주홍 글자> 번역본이 새로 나오게 되었다. 오랜 시간 이미 <주홍 글씨>로 인식이 되어 나부터도 쉽게 바뀌지 않는다. 다른 예로 <채식주의자>의 영어판이 나왔을 때 원작을 제대로 번역하지 못했다는 논란이 일었다. 원작자 한강이 나서서 영어 표현이 좋았고 작품을 전달하는 데 결정적 걸림돌이 된 것은 아니라고 말해 일단락됐다는 기사를 읽었다.

 

한 인터뷰에서 번역문화원 원장을 역임한 김성곤 교수는 지금까지의 번역이 언어에서 언어로의 번역이었다면 이제는 문화에서 문화로의 번역’, 즉 문화 번역입니다. 언어를 그대로 번역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이 문장이나 표현이 현지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질 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라고 했다. 문학은 번역의 힘을 빌리면 언어의 장벽을 넘을 수 있다고 한다. 번역자의 문학적 직관을 통하여 최대치의 접근은 가능한 일이라는 말이다.

 

이제 점점 세계가 좁아지고, 한국 문화를 즐기는 외국인이 많아졌다. 이때에 맞추어 문학의 세계화에 발 빠르게 움직여야 한다. K-culture가 세계의 이목을 끌고 있는 시점에 한국문학만이 뒷짐을 지고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한국 문학이 노벨 문학상의 변방에 서 있는 이유가 번역문학의 문제점일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하니 안타깝다. 우리의 주옥같은 고전이 번역되어 외국인들에게 알려지면 얼마나 좋을까. 윤동주 시인의 감성을 자극하는 아름다운 시를 외국인이 이해할 수 있다면. 한국인의 삶을 꾸밈없이 담아낸 조경희 수필가의 작품을 통해 한국인의 정서가 알려진다면. 박경리 작가가 그려낸 한민족의 끈기와 얼을 느끼게 한다면. 생각만으로도 덩실덩실 어깨춤이 나온다.

요즘 K-pop과 먹방 그리고 한식이 대세다. 한국 드라마와 영화가 돌풍을 일으킨다. 덕분에 나는 뒷전에서 어설프게 한 박자 느린 미소로 타인종과 어울렸는데 이제 한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대화의 중심에 서게 되었다. 때론 음식 레시피, 혹은 드라마 줄거리에 대해 답해주느라 진땀을 흘리기도 한다.

내가 만든 음식은 맛에 상관없이 한식이 되고, 옆집 로울데스는 그녀의 손녀를 재우며 내가 부르는 자장가를 K-pop인냥 따라한다. 작가라며 평상시 나를 우대해 주는 히스패닉계 친구가 최근 내가 쓴 작품의 내용을 물어본다. 한글을 모르니 일단, 신문에 실린 사진으로 나를 확인시키고 대충 주제를 설명해 준다. 두 나라의 언어와 문화 사이에서 다리 역할을 내가 한다고 생각하니 어깨가 무겁다.

 

그동안 세 권의 작품집을 내며 영작을 각각 5편 정도 담았는데 네 번째 책에는 더 많이 넣어야겠다는 욕심이 생긴다. 오늘 신문에 오징어 게임 2’의 출연진이 발표되었다. 꼼꼼히 읽었다. 주변 친구들이 나에게 물을 때, 설명하기 위해서 머릿속으로 영어 단어들을 나열하며 붙였다가 떼기를 반복한다. 자칭 대변인은 벌써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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