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 내려온다./이현숙

 

범 내려온다. 범이 내려온다. 장림 깊은 골로 대한 짐승이 내려온다.’

판소리 다섯 마당 중 수궁가의 한 대목이다. 용왕님의 명을 받은 자라가 토끼 간을 구하러 육지에 오르느라 힘이 빠졌다. 자라가 토끼를 발견하고 () 선생을 부른다는 게 발음이 헛나와 ()선생이라 불렀다. 그러자 산속에서 호랑이 자신을 부르는 줄 알고 기세등등하게 내려오는 장면을 묘사한 내용이다. 이날치라는 젊은이를 중심으로 뭉친 밴드가 대중음악으로 재해석해서 불렀다. 노래에 맞춰 패랭이, 색동 한복, 원색 정장에다 조선 시대 장군의 투구를 걸치고 덕수궁과 자하문터널 등으로 옮겨 다니며 으르렁 뛰어다니는 범을 표현하는 춤을 추었다. 해학과 풍자적 비유로 외국인들까지 따라 하는 열풍을 일으켜 온라인에서 3억의 조회 수를 기록하며 한국 홍보에 사용되며 세계를 흔들었다. 여러 번 봤는데 범 내려온다를 무심코 흥얼거릴 정도로 중독성이 있다.

2022년은 흑호(黑虎. 검은 호랑이)의 해다. 범 내려오라고 불러댔더니 365일을 우리 앞에 물고 왔다. 산군(山君)이라 불리는 호랑이는 동물과 천하를 호령하는 영물로 권위, 명예를 상징하며 모험과 투쟁을 의미한다. 단군신화를 시작으로 설화와 속담 그리고 전래동화 안에 호랑이가 심심치 않게 등장했다. 산신령이 호랑이를 타고 다닌다는 생각은 경외의 의미로, ‘호랑이와 곶감'해님 달님'의 이야기에서는 어리숙한 행동으로 친근하게 다가왔다. ‘호랑이 담배 피우는 시절은 어느 때부터인지 모르지만, ‘아주 오랜 옛날을 대표하는 표현이 되었다. 1988년 서울 올림픽에서는 호돌이가 행운을 가져다주는 동물로 뽑혀 한국의 대표하는 마스코트가 됐었다.

얼마 전 경기도 용인 에버랜드 한국호랑이 사육장에서 연년생으로 태어난 호랑이 7남매의 성장에 대한 뉴스를 봤다. 사육사는 작년에 태어난 오둥이 남매를 어떻게 구별하느냐는 질문에 사람마다 지문이 다르듯 호랑이도 고유의 줄무늬를 갖고 있기에 알 수 있다고 했다. 공통으로 가지고 있는 ()’자 외에는 각각 다르다고 한다. 황갈색 바탕의 낙엽 색깔과 나무 그림자와 비슷해 자신의 존재를 숨겨 먹잇감에 들키지 않고 몰래몰래 다가가기 위한 보호색이지만 그 안에 자신만의 특징을 지닌다는 말이다.

호랑이의 줄무늬는 밖에 있고, 인간의 줄무늬는 안에 있다.’라는 글이 떠올랐다. 동물은 생존에 따른 태어날 때 주어지는 것이다. 반면에 인간의 내면에서 일으키는 파장이 만들어내는 무늬는 외모에서 느껴지는 선입견과 편견에서 벗어나 판단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삶의 연륜과 환경에 따라 혹은 시시각각 상황에 변화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니까.

작가는 마음 안에 있는 줄무늬로 글을 쓴다는 생각이다. 같은 소재와 주재가 주어진다고 해도 백지 위에 풀어낸 것을 읽으면 각자의 개성이 나타난다. 특히 협회에서 발행하는 퓨전수필에 행시란이 있다. 같은 시제에 각자의 이야기를 담고 예상치 못한 내용으로 풀어내기 때문이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을까. 이 단어를 어디서 찾아냈지.’ 누구도 흉내를 낼 수 없는 자신만의 무늬를 만들어낸 고민의 결정체라는 생각을 한다.

나의 가치와 개성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여 삶 속에 녹여냈을 때 오히려 공감을 불러오는 작품이 태어날 것이다. ‘다름으로 다른 사람들이 미처 해 보지 못한 부분을 고민하고, 진정한 자아를 발견하는 과정을 끊임없이 거쳐야 하는 것이 작가의 숙명이 아닐까. 나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자신을 똑바로 바라볼 수 있을 때 온전히 내 삶의 주인공이 된다. 그래야 글도 온전히 독자에게 인식될 것이다. 호랑이의 줄무늬처럼

2022년은 용맹하고 거침없는 호랑이의 해다. 호랑이의 기운을 받아 생기와 활력으로 넘치는 마음 자세로 그동안의 움츠림을 털어냈으면 좋겠다. 산을 뛰어 내려오는 범처럼 산천이 뒤덮고 땅이 툭 꺼지난 듯당당하게 자신만의 진정한 가치를 찾는 해가 되기를 바란다. 개성 있는 작품으로 본인의 무늬를 그려나갔으면 한다.

 

범 내려온다. 범이 내려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