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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 음악에 빠진 프렌치 쿼터의 윌리엄 포크너 서점 (Faukner House Books)

- 윌리엄 포크너(1)

 

붉은 벽돌들로 지어진 낡은 건물이 엉성한 발코니를 걸치고 양쪽으로 늘어섰다. 좁은 골목은 사람들이 거리낄 것 없다는 듯 술병을 들고 걸어 다닌다. 골목 끝자락은 소변의 찌든 냄새와 하수구 악취로 코가 심한 고문을 당했다. 뉴올리언스의 프렌치 쿼터는 프랑스의 루이지애나 총독이 1718년 발들 디딘 이후 프랑스 식민지의 중심지로 발달했다가 스페인령이 됐다. 다시 프랑스령이 되었고, 1812년 드디어 미국에 편입되었다. 그래서일까. 잔뜩 웅크리고 어디로 가야 할지 방향을 잃은 방랑자 같다. 이름은 프렌치 쿼터지만, 대부분 스페인의 건축양식으로 파스텔톤의 고풍스러운 건물과 우아한 발코니를 장식한 앙증맞은 화분이 여행객의 눈길을 끈다.

세인트루이스 대성당을 지나 해적 골목(Pirate’s Alley)이라는 길을 쭉 걸어 들어가다 보면 <포크너의 집 (Faulkner House)>라는 명패가 보인다. 노란색 파스텔로 칠해진 벽과 옅은 민트 빛 문이 예쁜 건물이다. 주의 깊게 보지 않으면 지나칠 정도로 작은 사인이 붙은 곳에 헤밍웨이와 함께 로스트 제너레이션을 대표하는 윌리엄 포크너가 살았다. 그는 미시시피 대학의 우체국에서 일하다 음주 문제로 해고되어 집에서 빈둥거렸다.

당시 남부의 문인들은 미국의 파리라는 뉴올리언스로 모이는 게 유행이었는데 그도 이곳으로 왔다. 보석 디자이너 및 건축가인 윌리엄 스프래틀링(William Spratling)으로부터 건물의 1층을 빌렸다. 대부분의 작가에게 시는 첫사랑이듯이 그도 첫 번째 책은 시집이었다. 시를 통해 인간 조건의 열정적인 순간을 포착하려 노력하며 문학장르 중 시를 왕자로 표현하며 많은 작품을 발표했다. 이 도시에서 문단의 거두인 셔우드 앤더슨을 만났건 운명이었다. 앤더슨은 헤밍웨이의 가능성을 보고 그에게 파리로 가라고 추천했는데 포크너에게는 시보다는 이야기를 엮는데 재능이 있으니 산문을 쓰라고 격려했다. 시에 미련이 남았지만 문학수업을 듣고 <더블 딜러>에 글을 실으며 문단활동을 했다.

산문을 쓰기 시작해 1년 만에 나온 첫 번째 소설 병사의 부수(Soldier's Pay)는 앤더슨의 영향 아래 출판됐다. 치명상을 입은 조종사가 고향인 조지아로 돌아왔지만, 민간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마치 낯선 나라에 온 이방인 같이 산다는 내용이다. 포크너도 그랬을 것이다. 시를 쓰다가 산문으로 방향을 바꾼 그는 낯설고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삶의 목적을 잃어버린 듯 느껴지는 것은 작가 본인이 실패한 시인이라는 찌꺼기가 남아 있어서일까. 이후의 작품 안에서도 이 프렌치 쿼터에서 머물면 느꼈던 그의 허무와 절망이 젖어 들어 있다. 산다는 건 죽어 있을 준비를 한다고 그가 말했는데 프렌치 쿼터의 음침하고 우울하고 끈적이는 공기가 담긴 때문이 아닐까.

잃어버린 세대로 불리는 미국 작가들은 당시 세계 1차 대전 전후의 비극적인 상실감을 작품에 풀어냈다. 헤밍웨이와 피츠제럴드 그리고 페소스가 그렇다. 포크너도 영국공군에 입대했던 경험을 살려 글을 썼지만, 독자들에게 외면을 당했다. 다음 작품은 뉴올리언스를 배경으로 한 모기떼. 그는 이 도시를 나이가 들었지만, 아직도 아름다운 창녀라고 표현했다. 포크너는 소설을 쓰면서 비로소 글을 쓴다는 것이 재미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며 세 번째 장편소설인 흙 속의 깃발을 셔도우 앤더슨에게 헌정했다. 자신을 소설의 세계로 이끌어준 것에대한 고마운 마음의 표현이다.

서점 안은 오래된 책의 퀴퀴한 냄새와 새 책의 잉크 냄새가 묘하게 어울리며 휘감고 다닌다. 한 사람이 간신히 지나다니는 좁은 통로만을 남긴 채 천장까지 닿게 빽빽이 꽂힌 책들을 8개의 촛불 모양의 샹들리에가 밝힌다. 책꽂이는 바닥에서 천장까지 16피트로 내 키의 세배가 넘는 높이까지 빼곡히 쌓인 책을 올려다보니 목이 뻣뻣해졌다. 서점에는 테네시 윌리엄스를 비롯한 남부 작가들의 문학 작품과 희귀본을 소장하고 있단다. 조지오웰의 <동물농장>과 동화책 <엄마 거위>까지 다양하다. 테네시 윌리엄의 도시답게 그에 관련된 책들이 눈에 띄인다.

책들을 따라 난 통로로 들어서면 작은 방에 역시 책들이 가득 꽂힌 책꽂이와 스탠드 옆에 의자 하나가 놓여 있다. 포크너의 의자다. 그가 앉아서 책을 읽고 작품도 썼단다. 어릴 적부터 그는 독서광이다. 책을 많이 읽어 또래 아이들보다 성숙해 학교 공부를 멀리하게 만든 계기가 됐지만, 책은 그의 삶의 중심이었다. 의자에 앉아 주위를 둘러보았다. 테네시 윌리엄스와 헤밍웨이 그리고 포크너의 사진이 오가는 사람을 반긴다.

오른쪽에는 개인 공간(PRIVATE)라는 팻말을 달고 출입금지를 알리는 지그재그 이동식 여닫이가 있다. 이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는데 서점 주인이 사는 공간이기도 하고 미국의 명사들이 묵어간다고 한다. 신진 작가를 발굴하고 문학 창작 대회와 문학 축제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치며 작가가 살던 곳을 서점으로 만들어 보존하는 미국 문화에 감탄했다. 인증 샷을 찍으려는 듯 사람들이 주위를 맴돌며 계속 눈치를 준다. 혼자 차지하고 앉아 있기엔 염치없는 짓이겠지.

아쉬운 마음을 접고 서점을 나왔다. 어디서부터인지, 언제부터인지 서점 앞 골목에 색소폰의 소리가 흐느적거리며 춤을 춘다. 후덥지근한 공기가 훅하며 얼굴을 스친다. 예술가들이 작품을 길거리에 펼쳐 놓고 팔고 있다. 타일에 그림을 그려 파는 젊은 여인은 그 앞에 작은 담요를 깔고 누워서 낮잠을 즐긴다. 귀걸이와 반지 등 손으로 만든 액세서리를 작은 좌판에 펼친 노파는 술에 취한 듯 보였다. 풍경화가 담긴 크고 작은 액자를 늘어놓고 그 앞에 간이의자보다 서너 배나 큰 엉덩이를 걸치고 앉은 히피 차림의 남자는 기타를 연주한다. 골목길 좌우로 어딜 들어가도 음악과 술이 있다. 건너편 건물의 벽에 그려진 커다란 색소폰과 클라리넷 그림은 이곳이 바로 예술과 재즈의 도시라고 말한다. 타로카드 점술사가 미래를 알고 싶지 않느냐며 지나가는 사람을 유혹했다. 예술은 미치광이의 꿈이 혼돈의 몸뚱어리에서 잉태한 것이라며 현실에서 구하지 못하는 욕망을 대리만족하는 방식이라는데 이 도시는 넘치게 그 기운이 흐른다.

쨍쨍하던 날씨에 갑자기 폭우가 내렸다. 바로 옆 상점의 발코니 밑으로 들어가 비를 피했다. 골목의 끝에서 브라스 밴드(관악기 중심의 밴드)가 연주하며 행진을 했다. 여덟 명의 악사는 연주를 하고 몇몇이 우산을 받쳐 주는데 어릴 적 많이 들었던 성자들의 행진(When the Saints Go Marching in)’이다. 귀에 익숙한 노래가 들리자 나도 모르게 손뼉을 치고 리듬에 몸이 저절로 반응했다. 구원받은 사람들이 천국에 들어갈 때 자신도 그들 중 하나이기를 바란다는 내용인데 비를 맞으면서도 흥겹게 연주하는 그들을 보며 정말 천국의 행복이 저런 표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밴드가 골목을 빠져나갔지만, 나는 아직 그들의 음악에 젖어 흥얼거렸다.

언제 그랬냐는 듯 비는 그치고 해가 나왔다. 여러 개의 목걸이를 목에 주렁주렁 걸고 다니는 남녀나 목걸이를 손에 들고 2층 바에서 목걸이의 새 주인을 찾기 위해 거리를 내려다보는 사람들 모두 즐거운 유희에 흥겨운 모습이다. 뉴올리언스의 전통은 구슬로 꾸민 목걸이를 상대방에게 받아내기 위해 여성은 자신의 가슴을 드러내고, 남자는 바지를 내려 엉덩이를 보여주는, 흔치 않은 장면을 여기서는 볼 수 있다.

재즈 음악에 젖어 육체가 원하는 욕망에 흐느적거리고, 뒷골목을 채운 예술을 향한 열망이 달음질치는 곳이다. 삶에 대한 희망과 주인이 여러 번 바뀌며 갈팡질팡 갈 길을 잊었는지도 모른다. 이 도시는 어떤 모습이 진짜일까. 비가 오다가 시치미 뚝 떼고 금방 멈추듯 천국과 지옥이 함께 하는 프렌치 쿼터에서 포크너는 어떤 영감을 얻었을까.

이 도시의 모토는 즐거운 시간을 보내라(Let the good times roll)이다. 끊임없이 갈등하고 고민했던 내성적인 윌리엄 포크너에게 그저 흘러흘러 가며 살라고, 재즈 음악에 몸을 맡기고 한 잔 술에 마음을 담그라고 했는지도 모른다.

 

월리엄 포크너는 뉴올리언스 스케치를 썼다고 하는데 그 내용이 궁금하다. 그의 서점에 잭슨 스퀘어 광장과 세인트 루이스 성당을 표지에 담은 그 책을 무심히 보고 지나친 것이 후회됐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꼭 사서 읽어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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