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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든 호수에 답이 있다.

-헨리 소로의 월든 호수

 

호수가 거기 있다. 울창한 숲이 나의 눈을 확 잡아끌었지만, 마음이 바빠 뛰다시피 걸었다. 드디어 나지막한 구릉에 둘러싸인 아늑한 곳, 그 아래쪽으로 호수가 보였다.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호수는 널찍한 모래사장을 중심으로 아늑하게 나무 병풍을 두른 모습이다. ‘자연이 펼치는 향연을 보기 위한 원형극장의 무대라던 대지의 녹색 눈동자라는 소로의 말, 딱 그대로다. 이곳은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을 탄생시킨 곳이다.

보스턴으로부터 북서쪽, 뉴잉글랜드의 작은 마을인 콩코드의 월든 호수가 나를 반겼다. 아니 자연의 품에 내가 풍덩 몸을 던졌다. 들고나는 물줄기도 없이 고여 있는데 소로의 혼이 지켜주는 지 호수는 맑다. 차마 손을 담가볼 수가 없어 쭈그리고 앉아 모래를 손으로 토닥였다. 소로가 <윌든의 물과 모래를/손에 한 줌 쥐면/ 호수의 깊은 뜻이/ 내 머릿속에 가득 차오른다.>라고 했기에 어설프게 따라 해 봤다. 손가락으로 내 이름을 모래 위에 그리며 바다처럼 파도가 없으니 쉽게 지워지지 않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순간 먼지가 되어 사라질 것을 위해 우리는 인생을 낭비하고 있다는 소로의 말이 떠올라 얼른 이름을 모래로 덮었다. 헛된 욕심이다.

 

모래사장을 지나 북쪽 기슭의 작은 길로 들어섰다. 명상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걸어봐야 한다는 곳이다. 지구에서 멀리 떨어진 곳까지 갈 수 있는 길이라고 소로는 말했다. 법정 스님도 류시화 씨도 다녀갔다. 호수의 서북쪽 모퉁이에 있는 소로의 오두막 터를 찾아보기 위해서다. 울창한 숲 사이로 걸으니 새소리가 상쾌하게 따라왔다. 나무 위에서 다람쥐가 앞발을 모으고 오물오물 무언가를 먹고 있다. 소로는 자신이 오두막 주변에 400여 그루의 소나무를 심었다고 기록하고 있으나 그 나무들은 수해로 사라졌단다. 소나무, 참나무, 단풍나무, 히코리 등은 이후 새롭게 조림된 것이라는 데도 숲을 이룰 정도로 우람하다. 이 길을 걸으며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헤밍웨이의 소설인 두 개의 심장을 가진 큰 강에서 자연의 순수함에 동화되는 주인공 닉을 불러 함께 걷고 싶다.

좁은 오솔길을 지나 오른쪽 언덕으로 올라서니 소로의 오두막 터다. 그는 사상가 랄프 에머슨의 소유지인 이곳에서 22개월 2일을 살았다. 소로가 지은 오두막이 길이 15피트, 넓이 10피트, 높이 8피트라고 했다. 그가 땅을 파고 톱질해서 혼자 해냈다. 건축비는 28달러가 조금 넘은 금액이었다. 자급자족을 위한 삶의 첫 시작이었다. 아니 측량에 관심이 많고 정원 가꾸기를 즐겼던 그에게는 쉬웠는지도 모른다.

이미 공원 입구에 재현해 놓은 소로의 통나무집을 보았다. 창가에 작은 테이블이, 벽에는 벽난로가 있다. 그 옆에는 땔감용 나무를 담는 상자와 세 개의 의자가 여기저기 자리를 잡았다. 하나는 고독(One for solitude, 자신)을 위하여, 두 번째 의자는 우정(Two for friendship) 위하여, 그리고 세 번째 의자는 교제(Three for society)를 위해서다. 그의 집을 찾는 방문객이 많았다. 때론 20명이나 모여 토론을 했다는데 그 작은 방에, 다 들어갈 수 있었는지 상상이 안 됐다.

돌기둥을 세워 집터였음을 표시하고, 집터 안 벽난로 밑돌 자리를 찾아 명판을 세웠는데 자 그대, 나의 향이여, 이제 이 벽난로에서 위로 솟아라(Go thou my incense upward from this hearth)’라는 구절이 새겨져 있다. 집터의 뒤쪽에는 4개의 작은 돌기둥으로 땔감을 넣어둔 헛간을 표시해놓았다. 관리상의 문제가 있기는 하겠지만, 오두막집은 주차장 근처가 아니라 여기 이 자리에 있어야 어울린다. 그는 찰랑거리는 물 위에서 털갈이를 준비하는 오리를 유리창 너머로 바라보기를 즐겼다. 집 앞에 완두콩과 옥수수를 심었다. 호수에서 목욕하는 것을 최상의 일 중 하나로 꼽았기에 그의 숨결을 느끼려면 호수 바로 옆에 그의 집이 있어야 하는데 아쉽다.

오른편 길목에 돌무덤이 있다. 이곳을 찾은 순례자들이 소로를 존경한다는 표시로 놓고 간 돌이다. 소로가 사망한 지 10년이 지난 후 시인 브론슨 올콧이 이곳을 찾아왔다가 소로의 집터를 잊지 않기 위해서 몇 개의 돌로 표시해둔 것이 시작이다. 호숫가에 작은 돌이 많아 돌로 둘러싸인 호수(Walled-in Pond)라는 데서 그 명칭이 유래되었다는 설이 있을 정도다.

하버드대학을 졸업한 소로가 물질문명을 거부하며 살던 곳. 그는 자연과 교감하며 단순하고 소박하게 살며 간소화, 간소화, 간소하게 살라!”라고 강조했다. 관여하는 일을 백가지가 아니라 두세 개로 줄여 열 손가락으로 세는 사람은 정직하다며 집과 재산 그리고 일의 노예가 돼가는 사람들에게 자급자족하며 최소화한 생활로 살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가장 부유할 때 삶은 가장 빈곤하게 보인다는 것이 그의 철칙이다. 에머슨은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은 내부와 외부의 감각들이 서로 순응되어 있는 사람이라고 했는데 소로가 바로 그렇다.

나도 근처에서 작은 돌 하나를 주웠다. 돌을 양손으로 꼭 잡았다. 사람들을 소로를 존경하는 의미로 놓고 갔다고 하는데 나는 내 욕심을 내려놓으려 한다. 욕망은 완전히 채워질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채우려 몸부림치는 나를 돌 안에 담는다. 남들의 인정과 사랑, 금전적인 여유, 내 마음에 자리 잡고 꿈틀거리는 것을 꾹꾹 눌러 돌 안에 채웠다.

그 돌을 돌무덤 한쪽에 살포시 내려놓았다. 집으로 돌아가면 그 빈자리에 다시 욕심이 들어앉을지언정 지금, 이 순간만큼은 비우고 싶다. 덕지덕지 붙은 속물근성과 허영을, 기계에 길든 나태함도 던져버린다. 헨리 소로의 느낌을 공유한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자연으로 돌아가라. 자연으로 돌아가자. 모든 것을 훌훌 털고 그처럼 자연의 일부로 살 수는 없지만 한 줌의 바람과 한 줄기의 햇살을 즐기자.

돌무더기 옆 나무판에 월든의 구절이 새겨져 있다.

내가 숲속으로 들어간 이유는 삶을 살기 위해서였다. 삶의 본질적인 사실만을 직면하고 그로부터 교훈을 얻을 수 있을지 알아보고, 내가 숨을 거둘 때 깨어 있는 삶을 살지 않았다고 후회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호수는 하늘의 물로 대기에 떠다니는 영혼을 비추고 하늘로부터 끊임없이 새로운 생명과 움직임을 받아들인다. 소로는 자연의 장엄한 경관을 보기 위해 자주 호수 한가운데로 배를 띄우고 플루트를 불었다고 한다. 월든 호수에 사는 것보다 신과 천국에 더 가까이 갈 수 없다고 했다. 호수는 우리를 잠시나마 명상에 빠지고, 헛된 욕심을 버리게 만든다. 신성한 곳에서 몸과 마음을 비우고 살던 그는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를, 그 답의 한 가닥 실마리를 이곳에서 우리에게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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