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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피 조 바(Sloppy Joe's Bar)의 주인장

- 어네스트 헤밍웨이(3)

 

 

후덥지근한 공기가 휘휘 감기며 땀에 젖은 티셔츠가 등에 달라붙는다. 시원한 맥주 한잔이 땅기는 플로리다의 키웨스트다. 피아노의 연주가 들리는 곳으로 자석에 끌리듯 향했다. ‘슬로피 조의 바(Sloppy Joe's Bar)는 긴 하얀 건물로 한 골목을 차지했다, 탁 트인 공간은 시끌벅적한 소리로 가득 찼고, 천장에는 만국기가 줄 맞춰 걸려 있다. 앞쪽에는 무대 위에 노란머리의 백인 남성이 피아노를 연주하며 열정적으로 노래를 불렀다. 무대 뒤의 벽에 걸린 큰 천에는 슬로피 조라는 상호 밑으로 헤밍웨이의 사진이 있다.

우리가 찾던 곳이다. 빈 테이블에 앉아 얼음이 담긴 물 한 컵으로 더위를 털어내고 주위를 둘러본다. ‘슬로피 조의 바는 헤밍웨이의 분신이고 할 정도로 그가 좋아했던 곳이다. 헤밍웨이는 30대 시절을 키웨스트에서 살며 집보다는 이곳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벽 중앙에 거대한 청새치 박제와 낚싯대가 걸려 있고 빙빙 돌아가며 헤밍웨이의 사진으로 도배했다. 그의 대표 작품은 거의 영화화 되었는데 어릴적 주말의 명화에서 봤던 눈에 익은 영화의 포스터가 걸려 있다. 헤밍웨이를 싣고 추락했던 비행기의 프로펠러가 천정에 달렸고, 그가 잡았다는 황새치와 곰의 박제도 빠질 수 없는지 한 자리 차지했다. 헤밍웨이는 어려서부터 아버지의 영향으로 사냥을 즐겼는데 그의 엽총이 유리장 속에 갇혀있다. 믿고 따르던 아버지는 리벌버 총으로 자살했고, 자신도 엽총으로 삶을 마감했다. 죽는 것이 어려운 것이냐고, 사람은 자살을 하느냐고 묻던 인디언 캠프의 어린 닉과 올바르게 죽는 것이 적당히 잘 사는 것보다 훨씬 중요하다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의 조던 중에서 그는 누구를 택한 것인가.

그는 키웨스트에 사는 동안 길이가 12m인 보트를 샀다. 아내인 폴린의 애칭을 따서 필러(Pillar)라는 부르며 본격적으로 대물 새치를 잡는 재미에 낚여 버렸다.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술집 주인 조(Joe Russell)와 배를 타고 물고기를 낚는 그림은 그 둘의 우정을 보여준다. 두 남자는 금주법이 시행되던 때에 밀주를 몰래 들여와 팔기도 했다니 죽이 잘 맞았나 보다. 그의 작품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주인공 해리모건은 조가 실제 모델이라고 한다.

쿠바의 카스트로에게 헤밍웨이가 우승컵을 주는 사진이 자랑스럽게 걸려 있다. 그가 쿠바에서 청새치 낚시대회를 열었는데 카스트로가 참여했다. 뜻밖에 낚시해본 경험이 없던 카스트로가 우승을 하면서 그와 친분을 쌓았다고 한다. 카스트로는 후에 헤밍웨이의 작품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에서 한 사람이라도 제대로만 싸운다면 잘 무장된 군대를 물리칠 수 있다라는 구절에서 힘을 얻었다고 말했다.

헤밍웨이 닮은 꼴 우승자들의 사진도 긴 액자에 담겼다. 그의 생일이 되면 축제가 열리고 비슷한 사람을 뽑는데 등수 안에 뽑힌 사람은 살이 찌고, 수염은 갈 곳을 잃은 채 뻗쳐나간 뿌리처럼 흐트러진 모습이다. 이곳에서 짙은 농담에 잔을 나누며 술집을 누비던 젊은 헤밍웨이를 떠올리는 건 나뿐인가.

 

뒤쪽에 길게 자리를 잡은 바(Bar)를 보니 빈 의자가 없이 사람들로 꽉 찼다. 영화 헤밍웨이와 겔혼(Hemingway & Gellhorn)이 떠오른다. 어니스트 헤밍웨이와 그의 셋째 부인이 될 마사 겔혼이 만난 장소가 바로 이 슬로피 조다. 겔혼은 아버지가 죽은 후 가족들과 위로할 겸 키웨스트로 여행을 왔다. 술집에 들어서는 늘씬한 파란 눈의 금발 여인(니콜 키드먼)과 자신의 키만큼 큰 청새치를 천장에 매달고 기념사진을 찍는 얼룩진 셔츠차림의 남자(클라이브 오웬)는 첫눈에 반했다. 저 바의 테이블 어디쯤일까. 헤밍웨이가 술잔을 건네며 유혹하니 그녀는 술값을 내고 당당하게 돌아서서 나갔다. 첫 만남이자 미련 없는 이별을 의미하는 몇 년 뒤의 그녀의 모습을 보여준 장면이다. 그가 만난 수많은 여자 중 유일하게 먼저 이혼을 요구했던 당찬 여자다.

그녀를 스페인 내전의 기록영화를 함께 만들자며 자신의 집으로 초대했고 문을 열어준 그의 아내 폴린의 흔들리는 눈동자에 두 여인의 운명이 보였다. 스페인 군가인 이 카멜라(Ay Carmela)를 함께 부르며 종군기자와 작가라는 동질감이 그들을 하나로 묶는다. 겔혼이 후렴구인 룸바 라 룸바(rumba la rumba la rumba ban)를 외치며 두 주먹을 쥘 때 같은 이상을 꿈꾸며 강한 성격을 가진 두 사람은 만나지 말았어야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 큰 보이스카웃 녀석은 키웨스트는 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며 역마살이 발동해 아내인 폴린의 반대에도 전쟁 중인 스페인에 갔다. 그곳에서 운명적으로 여기자 겔혼을 다시 만났다. 총알이 퍼붓는 아수라장에서도 열심히 글을 쓰는 헤밍웨이의 열정과 정의감에 반해 사랑에 빠지고 결혼까지 이어진다. 영화는 둘의 아웅다웅 사랑의 이야기를 그녀의 관점에서 풀어냈다. 그녀는 그를 문어(文語)를 해방시킨 천재라고 말했다.

 

양주병들이 자기만의 모습을 뽐내며 선반 위에 앉아 손님을 유혹한다. 그 끝에 헤밍웨이의 자리가 있다. 가난한 어부들에게조차 예의 바르고 친절했던 그는 이 술집의 주인장 노릇을 하면서 파파로 불리는 걸 좋아했다. 노인과 바다의 배경은 쿠바지만 작품에 대한 소재를 이곳에서 얻었는지도 모른다. 달변가에 흥이 많은 그의 주위에는 항상 사람들이 몰렸는데 파리의 리츠 호텔, 쿠바의 라 보데기타 델 메디오와 엘 플로리디타에는 아직도 헤밍웨이의 자리를 보존해 사람을 끈다. 상술일 수도 있지만, 그래도 한 시대를 풍미했던 위대한 작가가 머물렀던 곳은 그 자체만으로도 한번쯤 찾아가 보고 싶게 만든다. 임헌영 교수가 이끄는 인문학 기행에 한국산문팀과 함께 나도 이곳에 와서 그의 발자취를 더듬고 있다.

 

윌리엄 포크너와 테네시 윌리엄도 술이라면 뒤지지 않는다. 그들은 술을 마시며 책을 읽고 글을 썼지만, 헤밍웨이는 다르다. 전날 슬로피 조에서 만취 상태로 집에 가도 새벽이면 침실에서 나와 커다란 문을 열고 옆 건물로 연결된 구름다리를 건너 서재로 갔다. 작품을 쓸 때는 술을 마시지 않았다. 매일 정해진 분량의 글을 쓰고 산책을 하는 등 규칙적인 삶을 살았던 열정적인 작가다. 글 쓸 때는 눈먼 돼지가 된다고 했다. 사냥 가는 길이나 고깃배 안에서도 늘 글을 썼고 책을 읽었다. 대서양에서 대어를 낚고, 아프리카의 대평원에서 맹수를 잡았으며, 스페인에서 투우를 즐겼고, 전장을 찾아다니며 의로운 일에 목숨을 내걸었다. 그는 비겁하지 않은 용사다. 용기와 의로움이 개척한 인간을 소설로 그려내 감동적으로 형상화한 위대한 작가다.

 

슬로피조 바는 온통 헤밍웨이다. 그의 단골이라는 유명세를 타고 키웨스트에 오는 관광객이 다녀가는 명소가 됐다. 두리번거리며 구경을 하는데 웨이터가 메뉴판을 내민다. 역시나 메뉴판 전면에 헤밍웨이가 무심한 듯 나를 바라본다. 이 안에 나의 갈증을 시원하게 해소해 줄 무언가가 있을까. 이 안에 내 허기를 채워줄 것이 있을까. 그가 즐겨 마셨던 모히또를 시켜야겠다. 마법에 걸린다는 뜻의 럼에 설탕과 민트를 넣은 칵테일이다. 아니면 손녀딸의 이름을 자신이 좋아하는 와인인 샤토 마고라로 지었는데 그 와인을 한잔 마실까. 술김에 나도 이곳에서 옆 테이블의 낯선 이와 대화를 나누며, 또 그들의 이야기를 듣다가 글의 소재를 찾을지도 모른다. 마법에 걸려 볼까. 그럼 모히또다.

 

나다 이뿌에스 나다. 아무것도 아니야, 아무것도. 종은 누구도 아닌 바로 자신을 위해 울리는 거라잖아.’

 

 

앞에 놓인 모히또 잔에 물망울이 또로록 흘러내리며 그만의 길을 만든다. 그 뒤를 따가 길게 늘어진 물그림자를 손가락으로 건드리니 온몸에 시원함이 짜릿하게 전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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