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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원의 교회의 허만 멜빌 자리에 앉아서

 

바다 위를 누비던 뱃사람들의 고향에 왔다. 딸이 시집가면 작은 고래를 선물로 줬다는 말이 있을 만큼, 고래로 부를 축적했던 미국 메사츄세츠 주의 뉴 베드퍼드시(New Bedford). 한때 등록된 포경선만 329, 실제로는 500척이 운항하였으며 만 명 이상이 포경업이 종사하면서 세상을 밝히는 고래기름을 제공했던 곳이다.

포경선을 타기 위해 선원들이 어슬렁거리던 거리는 이제 관광객들의 차지다. 아담한 이층 건물에 선원의 교회(Whaleman’s Chapel)라는 명패가 붙었다. 왼쪽 기둥에는 고래를 잡으려고 출항하는 선원들은 이곳에서 일요일 예배를 보고 간다.’라고 쓰여 있다. 무사히 돌아온다는 보장이 없는 선원들은 떠나기 전에 이 예배당에서 기도를 드리며 심적 안정을 얻었을 것이다.

허만 멜빌의 소설 모비 딕에 이 교회가 자세히 묘사되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안으로 들어섰다. 교회 벽을 빙 돌아가며 바다에서 죽거나 실종된 사람들의 비문이 걸려 있다. 그냥 글로 이름만 남겼다. 혹시 소설에 나오는 선원들의 이름도 있을까. 멜빌은 실제로 포경선을 타기 위해 이곳에서 예배를 드렸는데 맨 뒤, 왼쪽 구석 자리에 허만 멜빌이 앉았던 자리라는 표시가 있다. 그가 앉았던 나무 의자는 차갑고 딱딱했다.

앞의 설교단은 뱃머리 모양이다. 멜빌이 모비 딕에서 묘사한대로 바꾸었단다. 뱃머리가벽을 밀고 들어온 흔적이나 낡은 걸레 조각이 난간에 걸려 있는 모습. 손때에 얼룩지고 의자의 팔걸이가 덜렁거리며 세월의 흔적이 남았을 거라고 상상했었다. 깔끔한 모습이 낯설게 느껴졌지만, 이곳에서 주일에 예배를 드린다는 걸 알고는 이해가 됐다.

허만 멜빌은 이 자리에서 어떤 내용의 기도를 했을까. 그는 18세부터 돈벌이를 위해 배를 탔다. 1839년에 상선 세인트로렌스 호를 타고 영국의 리버풀로 항해하며 선원으로 최초의 경험을 쌓았다. 그 후 남 태평양행 포경선에 몸을 싣었다. 이 배가 남태평양의 누쿠히바 섬에 머무를 때 열악한 환경에 견디지 못하고 도망쳤는데 식인종인 타이피라 부족을 만나 한 달을 그들과 지냈다. 겨우 그곳에서 탈출해 낸터킷의 포경선에 승선해서 보스턴으로 귀환할 수 있었다. 생사의 고비를 넘나들며 지킨 생명이다.

고래 사냥은 끈기와 집념의 치열한 싸움으로 목숨을 거는 일이다. 뜨거운 태양 아래 망망대해에서 외로움과 싸우며 고래가 나타나기를 2~3년 기다린다. 갈매기가 미친 듯이 날고 50마리의 코끼리가 잠자리에서 일어나 뒹구는 것 같은 굉음과 높이 솟은 물보라가 보이면 고래가 주위에 있다는 신호라고 했다. 모선에서 내려 작은 보트를 타고 6명의 선원이 한 조가 되어 작살을 던져 거대한 고래를 잡는 위험한 작업이다. 잡으면 일확천금을 얻는 것이고, 놓치면 패배자의 빈손으로 귀향하는 부와 빈이 확연히 갈라지는 삶이다.

 

당시 전설처럼 떠돌던 에섹스 호의 비극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멜빌은 자극을 받았다. 1820년 포경선 에섹스 호는 태평양 적도 갈라파고스 서쪽 해상에서 몸길이 24m에 무게 80t은 나가는 대형 고래와 만났다. 사투 끝에 정면으로 돌진해 온 향고래의 역공격을 받아 배는 산산이 부서졌다. 20명의 선원은 세 척의 보트에 나눠 타고 태평양을 떠돌다가 200여 일의 항해 끝에 5명의 생존자가 뼈와 가죽만 남은 채 육지로 돌아왔다. 이 배의 일등 항해사였던 오웬 체이스는 후에 다시 바다로 나가 동료를 죽인 향고래를 찾아서 복수했다. 멜빌은 이 내용을 토대로 자신의 경험을 되살려 모카 딕이라는 살인 고래의 이름을 모비 딕으로 바꾸어 작품을 썼다. 그 유명한 백과사전식 소설이 태어난 계기가 되었다,

 

이 교회 안의 어딘가에 앉았을지 모르는 소설 속의 등장인물이 떠올렸다. ‘나는 이스마엘이다(Call me Ishmael!).’ 소설은 이렇게 시작한다. 이스마엘은 성경에 나오는 아브라함의 사생아에서 가져왔다. 작가가 왜 그를 이 작품의 화자로 길잡이 역할을 입힌 것인지 나는 가름할 수가 없다. 그는 오로지 살아남은 선원으로 자신의 역할인 비극을 전하는데 충실했다.

선장 에이허브(Ahab)는 거대한 고래에게 다리를 잃고 향유고래의 턱뼈로 만든 의족을 했다. 모비 딕을 제일 먼저 발견한 사람에게 상으로 준다며 스페인 금화를 내 거는 편집광적 복수와 분노에 불타는 사람이다. 일등 항해사는 스타벅(Starbuck)이다. 큰 키에 열정적인 성격이면서도 신중한 전형적인 고래잡이 선원이다. 그는 모비딕을 잡기 위해 선원들을 선동하는 에이허브 선장에 맞서 특정 고래를 죽이려 배를 타지 않았고, 더욱이 누군가의 복수에 이용당할 수는 없다고 항의했다. 이등 항해사 스텁(Stubb)은 위험에 맞닥뜨려도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낙천가다. , 플래스크(Flask)는 삼등 항해사로 작은 키에 늠름한 아메리카 토착민 젊은이로 전투적이어서 목숨을 걸고 모비 딕 사냥에 나선다. 퀴퀘그(Queequeg)는 폴리네시아 부족 추장의 아들로 온몸에 문신투성이인 포경선 작살잡이다. 이스마엘을 구하다가 상처를 입고 그 후유증으로 파상풍을 앓다가 죽는다.

 

세계 각지에서 모여든 유랑자까지 끼어 총 30명이 탄 피쿼드 호는 항해 도중 몇 마리의 고래를 잡아 경유를 저장했다. 거기에 만족하지 않고 지나치는 배마다 백경의 소식을 물으면서 대서양부터 인도양, 일본까지 간다. 어느 날 그렇게 찾아 헤매던 백경이 나타났다. 3일간의 사투를 계속한 끝에 선장은 작살을 명중시켰으나 결국 고래에게 끌려 바다 밑으로 빠져들어 가고 피쿼드 호도 침몰한다. 바다와 인간, 모비 딕과 에이허브의 대결, 야만과 문명의 충돌은 어느 것이 진실하고 진리인가는 말하려는 작가의 의도를 읽어내기에는 소설이 어려워 쉽게 읽히지 않았다.

 

에드거 알렌 포우의 작품 아서 고든 핌 이야기에서도 선원들을 조난사고, 굶주림, 야만인 무리에 둘러싸여 죽거나 사로잡히는 모습으로 표혔했다. 먼 바다로 나가 황량한 잿빛 바다 위에서 고통과 슬픔에 젖는 그들의 삶을 그렸다. 그렇기에 하루하루가 전부였는지도 모른다. 허만 멜빌도 그런 삶을 소설에 절절히 그리고 상세히 녹여냈다.

이 소설은 인간의 한계를 말하려 한 것인가. 바다의 왕인 고래를 정복하려 했던 오만한 인간이여. 요나처럼 자신의 의무를 회피하고 도망치며 편히 안주하려고 하는 인간이여. 과거에 묶여 현실을 파악하지 못하고 집착하는 어리석은 인간이여. 고래는 자연의 섭리대로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자신을 해치려고 하는 사람들로부터 도망치고 살기 위해 맞서 싸우는 존재다. 바다에 도전하는 자는 영혼을 잃게 될 것이라는 소설 속의 매플 신부의 경고가 이 안에 울리는 듯하다.

 

허만 멜빌은 친구인 나다니엘 호손의 천재성을 찬양하기 위해 이 소설을 헌정했다. 그러나 대중에게 이해받지 못하고 자신을 소설가가 아닌 여행작가로 치부하자 절필을 선언했다. 뉴욕으로 가서 세관 검사원으로 일해 고정급을 받으며 생활이 안정되자 아쉽게도 작가의 길을 바닷속 깊이 가라 앉혔다.

멜빌은 모비 딕이다. 포경선이라는 제한된 공간에서 자연의 위대함과 인간의 본질을 그려내며 신성한 존재로 나를 이곳까지 잡아끈다. 자연에 도전한 인간의 어리석음을 말하고자 했는지도 모른다. 노아의 홍수가 다시 온다 해도 고래는 영원히 살아남아 파도 위로 고개를 높이 쳐들고 하늘을 향해 오만한 거품을 뿜어 올릴 것이라더니 허만 멜빌은 백경처럼 바다의 설산雪山으로 미국 문학 역사에 물보라를 뿜어낸다.

 

 

피쿼드호는 침몰했다. 아니, 나는 지금 그 배에 타고 있다. 몇 번을 옆으로 밀어두었다 이곳에 오기 전에 모비 딕의 마지막 페이지를 마치고 온 나도 고래와 싸워 이긴 승자가 아닐까. 어려운 책을 읽었으니 대견하다며 자신을 칭찬했다. ‘선원의 교회안은 바닷바람을 타고 들어온 비릿한 냄새로 가득했다. 그의 명패에 내린 먼지를 손으로 털어내며 여기까지 온 내 마음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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