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광보다 짙은 패배의 그림자

 

  역사에 담긴 영광과 또 반비례로 깊어진 어두운 그림자의 높이와 넓이를 자로 잴 수 있을까.

넓은 초록빛 잔디위에 우뚝 올라앉은 어마어마하게 큰 돌산 앞에서 입이 딱 벌어졌다. 하늘에서 돌덩어리가 실수로 뚝 떨어졌다면 저런 모양일까. 미국 조지아 주 애틀랜타 도심에서 동쪽으로 약 30km 떨어진 평원 위에 위치한 화강암 산으로 바위 높이 200m, 둘레 8km, 정상 높이는 해발 514m로 단일 화강암으로는 세계 최고의 규모다.

 

  그 가운데에 말을 탄 세 사람이 타원형을 그리며 9층 빌딩 높이와 축구장 넓이로 새겨져 있다. 남북전쟁의 남부군 세 중심인물이다. 노예제도의 존폐 여부 등을 둘러싸 남부와 북부로 분열된 미국은 4년간 치열한 전투를 벌였고, 미국 역사상 가장 많은 전상자들이 발생한 전쟁이다. 남부 연합의 대통령이었던 제퍼슨 데이비스와 남부군을 이끌었던 로버트 리, 리 장군의 심복으로 북군을 괴롭혔던 스톤월 잭슨 장군이다.

 

  가장 앞의 제퍼슨 데이비스 남부연합 대통령이다. 대통령 임기 중 데이비스는 전쟁계획을 수립할 책임을 떠맡았지만, 더 크고 강력하며 잘 조직된 연방을 저지할 전략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의 외교적 노력에도 불구하고 남부연합은 어떤 외국의 승인도 얻지 못했고 전쟁비용을 감당하기 위하여 지폐를 계속 찍어냈다. 역사가들은 연방의 대통령인 아브라함 링컨에 비해서 데이비스가 전쟁지도자로서 효율적이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다음의 리 장군은 미국 남북전쟁 기간 동안 남군을 이끌었던 명장으로 그의 능력과 인품만으로 버텼다고 봐도 될 정도로 인정을 받은 뛰어나고 온유한 인품의 소유자였다. 잭슨장군은 용장 중 한 명이며 그가 치른 눈부신 전투로 인해 잭슨이 돌담처럼 버티고 있으니 여기서 죽도록 싸우면 이길 것이라는 용기를 주었기에 돌담벼락 잭슨(Stonewall Jackson)이라고 불렸다. 1923년에 시작하여 1970년에 완성이 되었을 때 축하파티를 하기 위하여 리장군의 어깨위에 상을 차렸는데 20명이 앉아서 식사를 했다고 하니 대단하다.

 

  넓게 펼쳐진 잔디에 앉아 거대한 기마상을 바라봤다. 남북전쟁은 나에게는 학생 때 세계사 시간에서 배운 정도다. 이민자이기에 그 의미가 피부에 느껴지지 않는다. 가끔 뉴스에 남부연합의 유산과 인종 차별을 상징하는 곳으로 백인우월주의자의 성지처럼 여겨지는 논란의 대상이 되는 곳이다. 철거를 요구하는 운동이 잊을 만하며 벌어진다. 주위를 들러보니 소풍 나온 가족들이 보였다. 풍선을 들고 뛰어 다니는 아이들, 간의 의자에 앉아 우산을 펼치고 쉬는 노부부, 기념사진을 찍느라 바쁜 관광객들은 각자의 모습으로 행복해 보였다. 저들은 과연 스톤마운틴과 인종차별을 연관지어 생각할까. 나처럼 단순하게 예술로 받아들인다면 역사성이 부족한 사람으로 인식될지도 모른다.

 

  잔디의 물기로 바지가 축축해져 일어나 230초면 정상에 데려다 준다는 케이블 카를 탔다.흔들흔들 거리며 올라가는 유리창 너머로 말위에 앉은 세 인물의 얼굴을 가까이 볼 수 있었다. 패배라는 그림자로 얼룩진 그들의 표정은 어둡고 무거워 나도 모르게 외면을 했다.

누구나 전사는 각오하고 있었다. 그러나 패배는 예상하지 않았다.”

마가렛 미첼은 남북전쟁을 배경으로 쓴 소설속의 주인공을 통해 말했다. 한 사람의 남부인은 스무 명의 양키를 대할 수 있다고 자신만만했던 그들이다. 남부인의 슬픈 역사를 가슴에 새긴 스톤마운틴의 심장은 피로 물들었을까. 남군과 북군의 청색과 회색의 너덜너덜한 군복을 섞어 입은 채 몸을 가누지 못하고 지칠대로 지쳐 나타난 애슐리는 남북전쟁 당시 서로에게 상처를 입힌 미국의 모습이 아니었을까.

산 위라고 느껴지지 않는 확 트인 평지에 다시 놀랐다. 사방으로 빙 돌며 둘러보는데 시야를 가리는 것이 없다. 멀리 보이는 애틀랜타의 마천루들이 키 자랑하는 모습이 한 눈에 들어왔다. 펼쳐진 녹색 물결사이로 집의 지붕이 높고 낮게 어깨를 나란히 하며 동네를 이루고 길게 뻗은 길에는 장남감처럼 보이는 차들이 지나다녔다. 저만치 아래로 보이는 보호 펜스에는 미끄러질까봐 감히 가까이 가지도 못하고 중간쯤에 서서 깊게 심호흡을 했다.

 

  돌로 된 바닥에 군데군데 작은 웅덩이에 물이 고여서 푸른 하늘을 조각조각 담고 있다. 그 옆에 소나무가 돌 사이에 자라나 엉거주춤 외롭게 서서 푸르른 아랫동네를 그리워하는듯 보였다. 돌만 있는 곳에 어떻게 생명체가 자랐을까? 어디서 씨가 날아와 자리를 잡고 뿌리를 내렸을까? 바위 틈에 뿌리를 내렸다 해도 물이 없는데 어떻게 내 키만큼 자랄 수 있었을까, 대견하고 신기했다. 한뼘 정도의 그늘을 만든 것에 보담이라도 해야겠기에 그 밑에 앉았다.

 

   돌산의 정수리쯤일까. 고도를 측정한 벤치마크인 동그란 동판이 햇빛을 받아 반짝이며 마치 신호를 보내는 것 같다.

테라의 저편에는 전쟁이 있고 세계도 있다. 그러나 이 땅에는 전쟁도 세계도 오직 추억 속에 있을 뿐이다.”

 

   역사는 변경할 수도 바꿀 수도 없다. 그 자체로 받아들여야 한다. 시대의 흐름이나 이익에 따라 변한다면 그건 역사가 아니다. 지금은 관광지로,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테마공원으로 자리를 잡았다. 세 기마상은 그들의 세상에 두고 당시의 열정은 인정하자. 달라진 세상을 그들도 볼 것이다. 바위 속에서.

시원한 바람이 분다. 나무가 만들어준 그늘이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