홋줄 / 차기화 - 2024 둥대문학상 우수상
배가 항구로 들어온다. 더듬이 같은 안테나를 세우고, 노란 부표 옆구리 꿰차고 붉은 깃발을 흔든다. 삼덕호, 만성호, 신흥호, 검은 이름표 후미에 찍고선 졸랑졸랑 물결을 탄다. 밤새 굶주린 갈매기 떼가 뱃고동 소리에 먼저 내달린다. 찢어진 그물이 발에 채는 부둣가는 녹슨 닻이 제 몸을 붉히고, 엉겨 붙은 물고기 잔해가 곳곳에서 비린내를 풀어댄다.
제 궤적을 지우며 달려온 배다. 부둣가 폐타이어에 옆구리를 기대고 와랑와랑 숨을 지른다. 열을 뿜던 엔진 소리가 잦아들면 선원이 홋줄을 던져 배를 쇠말뚝에 단단히 묶는다. 가자미, 도다리, 광어가 갯내를 풍기며 선창가에 쌓이면 활어를 사려는 장꾼들이 여기저기서 모여든다. 만선을 이끈 선장 얼굴이 한껏 붉다. 사고팔고 빠른 셈을 끝내면 그제야 뱃사람들도 지친 몸을 이끌고 아랫목을 찾아간다.
배는 홋줄을 걸어야 부두에 안전하게 정박한다. 그렇지 않으면 물결에 떠밀려 흔들리다가 표류하고 만다. 선박에 따라 홋줄의 굵기와 개수도 다르다. 파도가 일어날 때는 배가 바람을 타도록 줄을 느슨하게 걸고 바다가 잔잔할 때는 바투 당겨 묶는다. 태풍이 불거나 파도가 심상치 않을 땐 배들끼리 사방으로 묶어 물결의 저항력을 키운다. 다급할 땐 육지로 피항시키기도 한다. 밤새 결전을 치른 배들은 홋줄을 버팀목 삼아 누추한 몸을 널어 말린다.
어머니의 양수를 떠돌 때 나는 불완전한 존재였다. 넓은 바다로 나가기 위해 열 달 동안 탯줄에 묶여 몸을 움츠렸다. 바깥세상의 바람이 얼마나 센지, 파도는 얼마나 사나운지 몰랐다. 어머니와 연결된 채 세상의 소리를 들었다. 차츰 생김새가 도드라지고 몸집이 자랐다. 움츠렸던 생명이 기지개를 켜는 봄날, 나는 세상에 나와 탯줄을 끊었다.
어머니의 항구에는 예닐곱 자식들이 들락거렸다. 부모님의 삶은 가난이 숙명이었다. 그 항구에 끼룩거리는 갈매기도 속을 채우지 못해 부리를 자주 접었다. 산비탈 논밭을 부치며 지게를 지고 신발이 닳도록 일해도 곳간을 넉넉히 채울 수 없었다. 초가지붕 위로 살구 꽃잎 날리던 어느 날, 오래 아팠던 맏딸이 어머니의 항구를 영원히 떠났다. 뚝 끊어진 홋줄 하나 해풍에 삭아갔다.
정자항은 말편자처럼 둥글게 육지로 들앉았다. 바다에 면한 방파제는 우악스레 달려드는 파도를 온몸으로 막아낸다. 물의 흐름도 순해 눅진한 배들이 쉬기에 안성맞춤이다. 내 어머니도 치마폭처럼 둥근 항구에다 어린 배들을 품었다. 나는 그 안에서 밀물과 썰물을 알고 조류를 탔다. 거룻배로 대문 밖을 떠돌다가도 저물녘이면 아랫배 한가운데 작은 우물을 지향점 삼아 어머니에게로 뱃머리를 돌렸다.
어느 해 파도가 포효하며 집안에 들이닥쳤다. 어머니의 경운기 사고와 홋줄을 끊고 소식을 감춰버린 오빠의 부재가 한꺼번에 물마루로 달려들었다. 어머니는 모래성처럼 와르르 무너져내렸다. 멍든 육신과 자식에 대한 근심으로 주름만 깊어갔다. 웃음이 끊긴 집안에는 달빛도 발길을 끊어 자주 그늘이 졌다. 어머니의 항구는 곳곳이 패고 부서졌지만, 자식을 향한 불빛만은 꼭 움켜쥐고 있었다.
오빠는 사춘기가 별났다. 자식의 배가 느닷없는 풍랑에 뒤집히는데, 일상이 곤고한 부모님은 그걸 못 헤아렸다. 너울과 파도가 수시로 오빠를 때렸다. 잠시 육지로 피항이 절박했으나 집안엔 거둬야 할 배가 줄줄이 딸려 있었다. 성격이 불같고 고집이 세더니 겁도 없이 낯선 바다로 가버렸다. 열정만 믿은 무모한 치기였다. 몇 년이 지난 어느 늦은 밤, 그 아들이 난파된 채 돌아와 어머니 앞에 무릎을 꿇었다. 나는 낯선 베이지색 코트 자락을 보고 눈물이 났다.
저 바다는 태초의 생명을 잉태해 뭍으로 밀어 올렸다. 신비로 가득하지만, 거칠고도 난폭하다. 그리스신화 속 오디세우스가 트로이전쟁 후 귀향으로 십 년을 허비한 건 바닷길에서의 고난과 유혹 때문이었다. 때론 웅숭깊은 속내를 심연 속에 앉히고, 뭇 것들 통통하게 키우고 살찌워 내어준다. 어미 같은 손길로 배 밑동을 간지럽히다가도, 사나운 바람을 앞세워 득달같이 달려든다. 순한 얼굴과 맹수의 발톱을 동시에 숨기고선 천연덕스레 윤슬을 뿌린다.
내 뿌리도 거슬러가면 저곳 어딘가에 있겠다. 어머니의 양수에서 열 달을 떠다닌 건, 내 근원이 물이라는 조물주의 일깨움일지 모른다. 그러고 보면 사람도 바다를 닮았다. 감정은 파도처럼 시시로 뒤집히고 흔들린다. 느닷없는 생의 횡포에 엎어질 때면 시원에서 길어 올린 짠물 몇 방울 눈물로 왈칵 떨군다. 물이랑 같은 주름을 새기며 격류에 흔들리다 종착지에 닿는 것이다.
배는 항구를 떠나야 진정한 배이다. 새벽녘 홋줄을 훌훌 풀고 파도를 탄다. 그물을 건져 올리고, 무언가를 실어 나르며 낯선 대륙을 향해 거침없이 항해한다.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것도 홋줄을 제때 과감히 풀었기 때문이었다. 때론 사나운 파도와 폭풍우가 집어삼킬 듯 날름거린다. 별빛만 아롱지는 칠흑의 물길을 더듬거리며 노를 젓는다. 항구에서 멀어질수록 고립감과 두려움도 크겠지만, 물길을 헤쳐온 경험은 지문처럼 선체에 남는다.
어머니와 나의 탯줄은 오래전에 끊어졌다. 대신 더 질긴 인연의 줄로 연결되어 있다. 그것은 보이지도 잡히지도 않아 소멸도 절멸도 없다. 부모 형제도 친구 사이에도 인연의 줄로 엮여있다. 그것이 아무리 질겨도 서로를 헤아리는 마음이 없다면 낡은 홋줄보다 못하다. 끈끈한 정과 뜨거운 피로 맺어진 관계는 어떤 파고에도 쉽게 끊기지 않을 것 같다.
어머니의 항구는 이태 전, 등댓불을 내렸다. 오빠는 한때의 불효를 잊지 않고 믿음직한 맏이로, 만선을 이룬 키잡이로 당신 곁을 오래 지켰다. 가끔 어머니를 찾았지만, 더는 내가 안온하게 쉴 수 있는 항구는 아니었다. 녹슨 닻과 삭아 내린 그물들, 손때 끈끈한 연장이 마당 귀퉁이서 한 생을 마감하고 있었다. 저 고기처럼 펄떡이던 시절이 어머니에게도 있었을 텐데. 나는 몇 가닥 남은 기억을 그러모아 성긴 그물에 엮어 둔다.
내 항구에도 두 척의 거룻배가 드나든다. 아침이면 홋줄을 풀고 세상의 바다로 나아가는 아들들을 위해 부둣가를 살핀다. 저물녘이면 등대가 되어 먼 바닷길을 밝힌다. 수평선 언저리에서 석양을 등지고 열심히 노 젓는 소리 아슴아슴 들려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