멧노랑나비 / 김미경 - 2024년 경기 수필 공모전 대상
11월은 멧노랑나비가 겨울잠에 드는 달이다. 나비는 날개가 생명이고 벼리다. 나비를 표현할 때 날개를 빼면 무얼 말할 수 있을까. 따스함이 감도는 노란색 때문일까. 날개는 나비가 한겨울 추위로부터 해를 입지 않도록 보호막이 돼주는 듯하다. 겨우내 제 몸에 품은 봄이 행여나 얼까 봐 날개를 포개고 미동이 없다. 가진 거라곤 날개 한 쌍뿐이지만 그 속에 품은 꿈만은 무한하다. 봄꿈을 간직한 나비는 끝이 아닌 시작을 알리는 부활의 전령사다.
코끝이 시린 찬바람이 불면 메뚜기, 잠자리, 사마귀와 같은 곤충들은 쉽게 얼어 죽는다. 그렇지만 멧노랑나비는 북풍한설에도 죽지 않고 성충인 채로 겨울을 지난다. 멧노랑나비는 여름잠을 자고 겨울잠도 자는 곤충이다.
사릉천 변에 봄이 찾아오면, 민들레 개나리 토끼풀꽃에 앉았다가 가볍게 날아다니는 멧노랑나비들이 눈에 띄기 시작한다. 보드라운 색을 가진 생명을 바라볼 때면 내 마음도 날개가 달린 듯 설렌다. 장마철에 이르면 노랑나비를 볼 수 없다. 나비들은 장맛비를 피하려고 여름잠에 들기 때문이다. 처서를 지날 무렵 여름잠에서 깨어난 나비는 날개를 쫙 펴고는 초겨울까지 날아다닌다.
11월은 겨울이 우쩍 밀려드는 달이건만, 이상 기온 현상으로 봄날 같은 날씨가 이어진다. 비릿한 바람이 불어오는 산책길을 걷다가 보았다. 개천 변에서 어우렁더우렁 노니는 서너 마리의 멧노랑나비들을. 그것들은 서릿발에도 꼿꼿한 외래종 분홍 토끼풀 꽃밭 위를 날아다니고 있었다. 산책로에 줄지어 서 있는 벚나무의 앙상한 가지와 빛바랜 명아주 이파리, 갈색으로 변한 나팔꽃 줄기, 억새들도 멧노랑나비들의 유희를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기분이 좋아진 나도 팔을 휘적거렸다.
11월 중순을 지나 하순에 들어설 무렵. 코끝이 시린 북풍이 불어오던 날이었다. 태양이 정오를 지날 즈음, 개천 변 나비들의 기척이 심상치 않아 보였다. 허공을 날던 멧노랑나비들이 돌개바람에 휘말렸을까. 갑자기 날개가 흔들리더니 중심을 잃고 수직으로 곤두박질치는 게 아닌가. 무겁게 내리찍는 칼바람에 나비는 부력을 잃고 비틀거렸다. 바람에 밀려 풀밭에 쓰러졌지만, 이내 무너진 날개를 가다듬었다. 나비는 조금도 서두르지 않았다. 날개를 파르르 떨며 충격을 떨쳐내는 것 같았다.
날개를 추스른 멧노랑나비는 애오라지 자신의 힘으로 일어섰다. 기거할 곳을 찾아가는 것일까. 토끼풀밭을 지나서 시들어버린 금계국 꽃밭 언덕을 넘어 산책로 울을 잇댄 철쭉 무리 곁에 도착했다. 그리고는 철쭉 잎에 여린 몸을 바투 붙이고 날개를 접었다. 멧노랑나비는 철쭉 사이에 핀 한 떨기 노랑꽃으로 보였다. 시들지도 않고, 얼지도 않는 강인한 꽃으로 겨울을 지날 테다. 철쭉 잎을 붙안고 겨울잠에 든 노랑나비를 보는데 여동생 얼굴이 얼비쳤다.
숨쉬는 게 눈 감는 것보다 더 힘들다고 말한 여동생을 나는 지켜주지 못했다. 동생의 어려움을, 아픔을 끝까지 보듬어주지 못한 언니였다. 스스로 삶을 등진 동생을 생각하면 내가 죄인이 된 것 같다.
아버지 밑에서 자랄 때는 누구보다 명랑하고 애교 많은 막내였다. 몸매도 호리호리해서 어떤 옷을 입어도 옷맵시가 나던 멋쟁이 동생. 길가에 피어 있는 풀꽃에 눈길을 주던 여리고 착한 심성을 가진 동생이었다. 무엇이 동생을 힘들게 했을까. 결혼 생활 내내 몸이 아프다는 핑계로 제부는 일하지 않았다. 무능한 제부를 대신해서 경제활동을 한 사람은 동생이었다. 두 아들을 돌보고 남편을 건사하느라 자신을 챙기지 못한 거라 짐작해본다. 처음엔 우울증으로 나타난 병이 시간이 지나면서 증상이 심해졌다. 결국, 양극성정동장애라는 진단 결과가 나왔다. 어릴 때 그토록 총기 넘치던 동생이 독한 약 기운으로 말이 어눌해지고 눈빛도 흐릿해졌다. 병을 앓는 10년 동안 몇 번의 폐쇄 병동과 개방 병동 입퇴원이 반복되었다. 나는 제부와 헤어진 동생을 돌봐야 하는 보호자로서 입퇴원 절차, 면회와 외출, 외박 신청 모두를 도맡았다.
아버지가 돌아가시던 그해, 천주교 단체에서 운영하는 시설이 좋은 개방 병동 입퇴원을 마지막으로 동생은 아파트에서 살았다. 나는 한 달에 서너 번 동생을 들여다보며 밥은 잘 먹는지, 약은 잘 챙기는지, 병이 재발할까 봐 안색을 살피곤 했다. 냉장고가 비어 있으면 동생이 좋아하는 음식들로 채워놓았다. 게다가 전신 염증성 자가면역 질환인 루프스 병까지 걸린 동생을 데리고 전문병원을 찾아다녔다. 동생의 병을 낫게 하려고 애쓴 보람도 없이 루프스 증상은 차도를 보이지 않았다.
보도블록마다 노랗게 물든 은행잎이 융단처럼 깔린 그해 11월. 동생은 아파트에서 노랑나비가 되어 아버지 곁으로 날아가고 말았다. 동생의 상처를, 아픔을, 어려움을 온전히 함께하지 못해서 미안했다. 비록 끝까지 지켜주지 못했지만, 동생을 챙겨주고 보살펴준 나를 원망하진 않았으면 좋겠다. 동생을 보내고 발길을 되돌릴 때였다. 추모 공원이 자리한 야트막한 동산 자락에서 산국이 환하게 웃고 있었다. 감국 꽃밭을 날아다니던 노랑나비 한 마리가 눈에 들어왔다.
“아, 우리 동생이 노랑나비가 되었구나. 그래그래. 사랑하는 내 동생아, 끝까지 너의 아픔을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하다. 더는 아프지 말고 마음껏 날아다니렴.”
11월 5일에 만난 노랑나비는 동생을 향한 애잔한 내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것 같았다. 지난 10월의 어느 날이었다. 발갛게 물든 잎을 달고 있는 벚나무가 줄지어 서있는 산책길에서 만난 이웃의 말이 떠올랐다. “아름다운 풍경을 보면 눈물이 나요.” 남편을 먼 곳으로 떠나보낸 계절이라서 그렇다고 말하던 이웃의 애잔한 마음을 헤아릴 수 있었다.
된바람이 불어오는 세밑이다. 개천 변 산책길 자락 철쭉 울에는 추위 속에서도 굴하지 않는 멧노랑나비의 봄꿈이 영글어가고 있겠다. 끝이 아닌 새날을 알리는, 부활을 꿈꾸는 노랑나비가 건재하는 날까지 나도 함께 봄을 기다려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