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과 요리

 

                                                   최 이 안

 

 

 

수필 쓰기는 여인이 가족을 위해 저녁상을 차리는 것과 같다. 영양에 부족함은 없는지, 메뉴에 변화는 주었는지를 가늠하며 낮 동안의 고단함을 녹여줄 정성을 담아 차려진 식탁에서 나는 수필을 느낀다.

 

요리와 수필은 공통점이 많다.

우선, 무엇을 만들까 항상 고민해야 한다. 음식은 자주 해먹을수록 해먹을 것이 많지만, 안 만들면 메뉴가 떠오르지 않는다. 글도 쓰면 쓸수록 쓸 것이 많지만, 쓰지 않으면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는다.

 

만들고 싶은 것이 생기면 재료를 구해야 한다. 음식의 재료는 고유의 풍미를 살리기 위해 싱싱한 것을 골라야 하고, 수필의 소재는 감동이나 영감이 퇴색되기 전에 문자로 포착해야 한다. 당장 이용할 수 없는 것은 발효시키거나 저장해 두어야 한다.

 

무엇을 만들지 생각나지 않을 때는 시장에 나가 재료를 살피는 것도 도움이 된다. 그날따라 물 좋은 생선이나 신선한 채소가 눈에 띄면 손이 저절로 다가간다. 어느 날 색다른 의미로 다가오는 소재는 수필을 쓰고 싶게 하고, 글은 쉽게 풀려 나온다.

 

장보기는 여러 군데를 다녀보아야 품질과 가격을 비교하고 정보를 얻을 수 있다. 폭넓은 여행과 경험은 안목과 지식을 기르는데 도움이 되어 글의 세계를 풍요롭게 한다.

 

같은 재료로 만든 음식도 만드는 사람에 따라 맛이 다르듯, 같은 소재를 이용해도 쓰는 사람에 따라 멋이 다르다. 여태껏 다루어지지 않은 소재는 거의 없다. 그래도 글을 쓸 수 있는 이유는 사람마다 소재를 다루는 각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한 음식에 지나치게 여러 가지 재료를 사용하기보다는 중점 재료의 특성을 살린 맛이 깔끔하듯, 수필의 주제도 분산시키지 말아야 한다. 수필을 쓰다보면 원래 의도한 주제와 다른 쪽으로 이야기가 흘러가는 수가 있다. 이럴 때는 과감히 가지를 쳐내야 한다.

 

양념이나 향신료는 적당량만 넣어야 맛의 균형이 이루어지듯, 지나친 수식은 수필의 흐름에 방해가 된다. 수식어는 너무 많으면 거추장스럽고, 아주 없으면 무미건조하다. 적재적소에서 새콤달콤하거나 톡 쏘는 수식으로 맛을 돋구어주어야 한다.

 

요리를 어떻게 하느냐고 묻는다면 답하기가 곤란하지만 잡채를 만드는 방법은 알려줄 수 있다. 수필을 어떻게 쓰느냐는 질문의 답은 막연할 수밖에 없고, 작품은 내용에 따라 나름의 구성에 의해 이루어진다.

 

음식이 다 되어갈 무렵에는 간을 보아야 한다. 여러 번 간을 보며 미묘한 차이를 분석하여 원하는 맛으로 조정해야 한다. 수필도 퇴고를 거쳐 삭제와 추가를 해야 의도하는 바가 명료해진다. 퇴고를 수차례 해도 다음에 읽어보면 고칠 곳이 또 보인다. 마음은 시시각각 움직이기 때문에 퇴고는 끝이 없다. 퇴고를 마치려면 음식을 먹어치우듯 원고를 눈앞에서 치우는 수밖에 없다.

 

맛이 완성되었다고 생각되면 아름다운 그릇 위에 먹기 좋게 배열한 뒤 고명을 얹기도 한다. 수필도 시각적으로 단정하고, 읽기에 편하게 조절해야 한다. 글이 너무 빽빽하게 들어차 있으면 보기에도 답답하고, 읽기에도 부담스럽다.

 

음식을 식탁에 차려놓으면 맛보는 사람의 반응이 궁금해진다. 묻기도 전에 식구들이 감탄을 하면 피로가 풀리지만, 불만족한 표정을 보면 맥이 빠진다. 수필을 발표한 후에 듣는 칭찬이나 비난은 받아들이는 자세에 따라 독이나 약이 된다. 읽는 사람마다 평가가 다를 수 있다는 점도 유념해야 한다.

 

시간이 촉박할 때는 인스턴트식품의 도움을 받듯이, 글을 정리할 때 컴퓨터를 이용하면 편리하다. 인스턴트식품과 컴퓨터의 장점을 무시할 수 없는 시대지만, 매일 인스턴트식품만 먹을 수 없는 것처럼 컴퓨터에 전적으로 의지하게 되지는 않는다.

 

자신이 좋아하는 음식에는 각별한 기억이 담겨있다. 그 음식을 나누던 분위기와 함께 했던 이들의 얼굴, 만들어준 손길과 맛에 대한 만족감이 먹을 때마다 한데 어우러져 기쁨을 더해준다. 수필의 밑바탕에도 추억이 자리 잡고 있다. 어린 시절부터 차곡차곡 퇴적된 추억은 자극을 받으면 지층에서 밀려나와 글 속에 자리 잡는다.

 

요리법은 국제화시대가 되면서 각국의 요리가 영향을 끼쳐 나날이 다르게 다양화되어가고 있다. 수필작법도 다른 장르와의 경계가 모호해질 정도로 서로의 장점을 취하면서 상승작용을 일으키고 있다. 퓨전 음식처럼 퓨전 수필이라는 단어도 낯설지 않게 되었다.

 

요리사의 꿈은 자신만의 요리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수필가의 희망도 독특한 작품을 쓰는 것이다. 수많은 연습과 시행착오를 거친 능숙한 솜씨 위에 얹혀진 개성은 작품의 매력이 된다. 아무리 새로운 음식이라 해도 그 맛이 여러 사람에게 받아들여져야 하듯, 독창적 작품도 독자의 공감을 얻어야 한다는 한계를 갖는다.

 

수필과 요리의 가장 큰 공통점은 누구나 해볼 수는 있지만, 예술의 경지에 도달하기는 어렵다는 점일 것이다. 음식 솜씨가 나아지려면 먹을 사람에 대한 사랑이 있어야 한다. 수필도 인간애 없이는 좋은 작품이 되지 못한다.

 

시가 전채요리고, 소설은 뷔페요리라면 수필은 장을 이용한 음식이다. 장맛은 음식 맛을 좌우한다. 그럴싸한 일품요리를 만드는 것보다 장 담그기가 어렵듯, 문학적 기술을 발휘하기보다는 인격을 닦기가 어렵다.

 

수필을 쓰면서 부끄러워지는 때가 많은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그러나 삶이라는 길을 걷다가 넘어지기도 하면서 스스로를 돌아보는 과정을 엮어내는 것도 수필의 한 일면이라고 자위를 한다. 언젠가는 깊고 구수한 맛을 내는 된장찌개를 끓일 날이 오기를 희망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