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수건/김영화

 

몇 해 전, 크리스마스를 앞둔 어느 날 크리스마스 선물 포장지를 사러 근처 타겟(target)에 갔다. 출입문 앞에 십대쯤으로 보이는 엄마가 악을 쓰며 우는 어린 아이를 안고 서 있었다. 아이의 검은 얼굴은 눈물, 콧물이 범벅되어 반질반질하고 말할 수 없이 지저분했다. 아이는 쇳소리 부딪치는 기침을 하고 눈은 충혈되어 있었다. 안쓰러움에 어린 엄마에게 따뜻한 안으로 들어가라고 말해주었다. 그제서야 그녀가 청각장애인임을 알게 되었다. 나는 그녀를 찬바람을 피해줄 안으로 이끌었다. 뒤따라오던 남편은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더니 식수대의 물에 적셔 아이의 얼굴을 꼼꼼하게 닦아주었다. 그 손수건은 며칠 전, 지인에게서 선물을 받아 오늘 처음 들고 나온 새 것이었다. 아직 자신도 써보지 못한 그 새 손수건으로 낯 모르는 아이의 지저분한 얼굴을 닦아주더니, 네모나게 잘 접어 다시 자기 재킷 주머니에 넣는 것이었다.

나는 내심 그 새 손수건이 아까웠다. 그리고 아깝지만, 지저분해졌으니 그 손수건을 버렸으면 하고 바랬다. 더구나 아이의 기침으로 인해 병균이라도 옮아 아프기라도 하면 어쩌나 하는 불안한 마음도 들었다.

남편은 나의 찌푸린 얼굴은 못 본 척하고, 아기에게 장난스런 윙크를 보내고 있었다. 그러자 그 엄마도, 아이도 소리 내어 웃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더러워진 손수건을 그대로 주머니에 넣으면 어떻게 하느냐고 화를 냈다. 그러자 남편이 말했다.

내가 그 손수건을 더럽게 바라보고 버리면 그 어린 엄마가 얼마나 마음이 아프겠어?

나 역시 그 모녀에게 연민을 느끼고 인정을 베풀었다고 생각했지만, 나의 인정은 빈약하기 짝이 없는 것이었음에 부끄러웠다.

 

종이가 흔하지 않았던 내 어린 시절에는 손수건이 필수 소지품이었다. 하지만 요즘은 손수건을 가지고 다니는 사람이 거의 없다. 평소 땀을 많이 흘리고, 나이를 먹으면서 콧물이 많아진 남편은 손수건을 꼭 가지고 다닌다. 이런 사정을 아는 지인들은 곧잘 손수건 선물을 준다. 덕분에 남편은 각양 각색의 손수건이 참 많다. 손수건이야말로 남편의 패션 아이템이라 할 만하다. 그 손수건이 참으로 다양하게 쓰이기까지 한다. 남편은 등산을 자주 다니는데 모자 안에 넣어서 머리에 쓰면 이마에 흐르는 땀과 햇볕을 막아준다. 찬바람이 불어오면 목에 둘러 보온 용도로도 쓴다. 어쩌다 발목이라도 삐게 되면 붕대가 되기도 한다. 언젠가 산행 중 산 중턱에서 바람에 날아온 돌로 일행이 팔을 다쳤다. 그때 남편의 손수건은 출혈이 심한 팔을 묵는 압박붕대의 역할을 했다. 덕분에 헬리콥터가 와서 병원으로 이동할 때까지 응급처치의 유용한 수단이 되었다.

 

내게도 손수건은 할머니와 어머니의 사랑을 떠올리게 해준다. 내가 어렸을 때 우리 할머니는 눈에 염증이 있어서 항상 안약 연고와 하얀 가제 손수건을 가지고 다니셨다. 당시만 해도 귀한 가제 손수건이었던지라 할머니에게 2개 밖에 되지 않는 그 손수건은 소중할 수밖에 없었다.

한번은 내가 넘어져서 코피를 흘리자 할머니는 주저 없이 그 귀한 손수건으로 내 코피를 막으셨다. 어린 마음에도 할머니의 그 소중한 손수건에 코피를 묻히게 되어 얼마나 미안했는지 모른다. 그런 만큼 할머니가 얼마나 나를 사랑하는 지를 느끼며 행복하기도 했다.

초등학교 입학식 날 어머니가 만들어준 손수건도 잊을 수 없다. 입학식 전날 밤, 어머니는 내 가슴에 달아줄 손수건에 분홍실로 코스모스 꽃을 수놓으셨다. 코스모스가 완성되어가는 순간을 지켜보며 신기하기도 하고, 가슴에 달 생각에 설레이던 기억이 70이 넘은 지금까지도 따뜻하게 떠오른다.

 

날이 차다. 그래서일까. 남편의 손수건도, 나의 할머니와 어머니의 손수건도 그립다. 그 작은 면 조각이지만, 그 작은 손수건으로 행하는 온정과 사랑은 크기를 잴 수 없다.

내일, 예쁜 손수건을 사다가 남편 주머니에 몰래 넣어 놓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