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시대의 수필 쓰기 / 여세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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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셜 커뮤니티를 통한 자기표현 욕구의 충족

21세기가 시작되면서 한국문학사에는 매우 놀라운 현상이 나타났다. 수필 창작 인구의 확산이 그것이다. 수필은 지식인 계층이 여기餘技로 쓰던 글이었는데, 중‧노년층이 대거 수필 쓰기에 나섬으로써 대중적인 장르로 거듭나게 되었다. 수필 창작의 대중화가 이루어진 데는 두 가지 요인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자신의 일상적 삶에 대한 관심과 자기표현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디지털 매체의 발달이 수필 쓰기의 확산을 이끌었다.

인간은 누구나 자기표현 욕구를 가지고 있다. 이런 기본적인 욕구는 ‘우리’라는 집단의 개념보다 ‘나’라는 개인의 개념을 소중히 여기는 시대에 폭발한다. 한국 사회에는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개인의 일상적인 삶을 주목하고 표현하려는 경향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개인이 사회의 객체가 아닌 주체로, 정치적 관망이 아닌 참여로, 문화의 소비자가 아닌 생산자로 나서고 싶어 하는 욕구가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개인의 집합체인 일반대중에 의해 모든 가치가 결정되고 평가되며, 대중이 사회 변화의 주체로 등장하는 시대가 되었다. 일반대중이 지식과 정보의 소비자로 머물지 않고 생산자로 나서는 변화가 나타났다.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가 제3의 물결에서 예측한 프로슈머(prosumer)로 나타난 것이다.

이러한 시대적 흐름에 맞춰, 일반대중은 특별한 지식 체계나 이데올로기도 내세우지 않고 어떠한 형식에도 얽매이지 않으면서 자신의 주관적 관심사를 자유분방하게 표현하고자 한다. 새로운 콘텐츠를 제작하여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낸다. 개인의 일상적 관심사를 기록하여 혼자서 간직하는 데 만족하지 않고 다른 사람과 공유하려고 한다. 이와 같은 자기표현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새로운 매체가 나타난 것도 우연한 일치는 아닌 듯하다. 인터넷의 상용화가 그것이다.

일반대중이 자신의 관심사를 표현해 내어도 타인과 공유할 수 있는 매체를 얻기 어려웠다. 신문이나 잡지 등의 매체는 용량 부족으로 일반대중에게까지 지면을 허용할 수 없었다. 개인이 책을 만들어 유통하는 것도 경제적인 부담으로 쉽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인터넷 온라인 서비스가 소통 매체로 등장하면서 자기표현 욕구를 무한정 충족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인터넷은 지식이나 정보의 생산과 소비를 시공간의 제한 없이 연결한다. 인터넷 구조는 단방향의 송출이 아니라 양방향의 소통을 가능하게 했다. 일반대중은 인터넷 공간에서 취미나 관심사에 따라 다양한 무리를 만들어 활동한다. 개인이나 단체의 블로거나 카페, 트위트나 페이스북 등의 소셜 커뮤니티를 통해 누구든지 자신의 일상이나 생각을 표현할 수 있고 독자와 직접 소통할 수 있다. 오늘은 누구와 함께 어느 식당에서 어떤 음식을 먹었는지를 사진과 함께 SNS에 올리는 등의 행위는 이런 자기표현 욕구를 발산하는 형식이다. 현대인들은 자신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공개하여 여러 사람과 공유한다. 익명이 아니라 실명으로 자신의 삶을 노출함으로써 자기표현의 욕구를 충족시키고 있다.

자신의 ‘살아온 이야기’를 하는 것도 자기표현을 직접적으로 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영역이다. 이 영역을 수필이 감당한 것으로 보인다. 수필은 ‘나’의 이야기를 직접적으로 전달하는 형식이기에 자신의 삶을 노출하여 공유하려는 이 시대의 흐름에 매우 적합하기 때문이다. 수필 쓰기를 통해 자신의 삶을 드러내어 공유하고자 한다. 그러는 가운데 삶의 보편적인 의미를 찾아내어 여러 사람에게 감동을 줄 수 있다면 금상첨화라고 여긴다. 수필은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한 바를 비교적 자유롭게 전달하는 형식이므로, 대중에게 글쓰기의 부담감을 덜어 준다. 일반대중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장르가 수필이다.

소셜 커뮤니티에서의 자기표현 활동은 ‘살아가는 이야기’나 ‘살아온 이야기’를 이웃과 공유하여 인정받고 싶은 욕구를 충족시키는 구실도 한다. 수필은 나름대로의 미학적 형식과 개성을 갖추었기에, 대중들에게는 지적 장식품의 구실을 하는 경우도 없지 않다. 소설 커뮤니티에서의 수필 쓰기는 자신을 표현하고 인정받고 과시하는 욕구를 한꺼번에 충족시켜 줄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인터넷 환경의 발달이 수필의 시대를 열게 되었고, 앞으로도 수필의 르네상스 시대를 한동안 꽃피우리라 생각된다.

2. 스마트 디바이스에 적합한 짧은 형식

인터넷 온라인 서비스 환경은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유비쿼터스가 실현되어 있는 세상이다. 휴대용 스마트 디바이스를 통해 언제 어디서나 자신의 글을 쉽게 생산‧유통‧소비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다. 자유로운 의사소통과 정보 공유, 그리고 인맥 확대 등을 통해 사회적 관계를 생성하고 강화시켜주는 온라인 서비스가 문학 작품의 유통 매체로서의 구실을 톡톡히 해 내고 있다. 이러한 환경에 적응해 나갈 수 있는 수필은 어떤 형식일까?

소설 커뮤니티에서 유통되는 글을 읽을 때에는 각종 스마트 디바이스를 활용한다. 종이책을 읽을 때에는 오랜 시간 책 읽기에 몰입하기도 하고, 오늘 읽다가 내일 다시 읽을 수도 있으며, 읽다가 어려우면 읽었던 부분으로 되돌아가 거듭해서 읽기도 한다. 그러나 휴대용 스마트 디바이스를 통해 읽을 때에는 종이책을 읽을 때와 같은 노력을 하려고 들지 않는다. 이동하면서 짧은 시간 안에 읽고 싶어 한다. 그것도 자신의 손바닥 안에서 말이다. 이런 경우, 더욱 짧은 시간에 읽을 수 있는 글을 요구한다.

스마트 디바이스, 특히 스마트폰을 통한 글 읽기의 소비 성향이 이러하므로, 수필 형식이 소설 커뮤니티에서의 글쓰기에 가장 적합하다. 5매 수필이니, 손바닥 수필이니 하는 이름으로 짧은 수필 쓰기를 시도한 것도 짧은 것을 원하는 시대에 시도된 수필 형식이다. 인터넷 환경에서 대체로 수필이 적합한 장르라는 생각은 일반적으로 공감되고 있다.

그런데 작품의 길이로 말하자면, 수필보다 시가 더 짧다. 그러면 시가 소셜 커뮤니티에서의 글쓰기로 더 적합하다고 할 수 있지 않은가? 그렇지 않다. 시는 길이가 짧지만, 시의 특질인 애매성ambiguity으로 인해 행간의 의미를 곱씹으면서 읽어야 이해가 되므로 특히 모바일 시대의 글쓰기로서는 수필만 못하다. 쉬운 문장으로 쓴 수필은 짧을 뿐 아니라 그 의미도 직설적으로 표현하기 때문에 단시간에 읽어낼 수 있는 장점을 지닌다. 따라서 수필의 본질인 직설적인 표현 방식은 모바일 시대의 문학으로서 시를 능가하는 장점을 지닌다.

수필은 작가 자신의 일상적 삶을 이야기하는 장르이다. 그러므로 자신의 삶을 여러 사람에게 공개하여 소통하고 싶어 하는 현대의 호모 모빌리언스Homo Mobilans에게 호감을 줄 수 있는 장르이다. 작가와 독자의 직접적인 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수필은 모바일 시대에 매력적인 글쓰기로 다가온다.

3. 하이퍼 텍스트적 수필 쓰기의 유행

인터넷 환경에서는 다양한 정보들이 서로 링크되어 하나의 그물망 구조를 이룬다. 멀리 떨어진, 그리고 무관한 듯이 보이는 정보나 지식, 사건이나 사물이 연결되어 서로 맞닿는다. 이런 현상들이 글쓰기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수필 쓰기에서도 마찬가지다.

인터넷의 발달에 따라 인쇄술에 기반을 둔 ‘종이텍스트’에서 디지털 매체와 인터넷에 기반을 둔 하이퍼텍스트 시대로 이행하고 있다. 종이텍스트 시대의 수필 쓰기는 연속성을 지닌 경험을 하나의 맥락 속에 선조적으로 배열하는 방식이었다. 그런데 하이퍼텍스트 시대로 넘어오면서 글쓰기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매우 동떨어진 경험들을 함께 연결하여 통합하는 방식의 수필 쓰기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선조성이 없는 여러 경험을 병렬적으로 연결시키는 방식의 글쓰기를 말한다. 연속성을 지닌 하나의 경험을 인과적이거나 시간적으로 엮어 내는 것이 아니라, 여러 정보들이 서로서로 링크되어 그물망 같은 구조를 이루듯이 이질적인 둘 이상의 경험을 장면적이고 공간적으로 배열하는 구성을 취한다. 일정한 순서에 구속된 글쓰기 대신 연상적이고 병렬적인 글쓰기를 지향한다. 이질적인 요소들이 어떤 유사성이나 근접성에 의해 서로 연결되지만, 특정한 문맥으로 정합되거나 통일되지는 않는다.

안병태의 <스피커>(《수필문학》, 2007년 8월호)는 이러한 경향을 잘 대변해 주는 작품으로 매우 낯선 수필이다.

내가 뭐 별말이야 했어? 교통사고 당한 친구 문병 가 그 부인더러,
“그나마 거시기가 멀쩡해 천만다행입니다~^^”
너스레를 떤 죄밖에 없어. 그랬더니 부인이 진지한 표정으로 맞받아,
“사고 전에도 그다지 멀쩡하지는 않았지요.”
입을 비죽거리며 천연덕스럽게 맞장구를 치겠지. 그 친구, 누운 채 날 노려보며 닭목 비트는 시늉을 하더군. 가끔 시동이 꺼진다기에 무슨 말인가 했더니…. 그 친구 퇴원한 뒤 내가 안 보이거든 목이 비틀려 입원한 줄 알면 돼.

내가 뭐 별말이야 했어? 문단 선배가 책을 낸다기에,
“인쇄비나마 건지면 좀좋아…….”
하고 염장을 지른 죄밖에 없어. 자기 돈으로 책을 찍어 시인은 시인끼리 돌려보고, 수필가는 수필가끼리 돌려보는 현실이 한심해 무심코 한 말이지만 아차 싶네. 나중에 내가 책을 낸다고 하면 그 선배,
“오냐, 인쇄비나마 건져라!”
하겠지? 내가 한 말, 주워 담고 싶지만 이젠 틀렸어.

내가 뭐 별말이야 했어? 재작년 가을, 벌초하고 내려오며 아버지가,
“내년 가을에도 이 길을 걸어서 올라올 수 있을랑가….”
혼잣말을 하시기에,
“별걱정을 다 하시네요. 벌초 정도는 저희들이 있잖아요. 이젠 맡기세요.”
하고 촐랑거린 죄밖에 없어. 이듬해 봄날 그 오솔길을 꽃상여 타고 올라가실 줄 이미 예감하셨나 봐. 훗날 내가 그렇게 혼잣말하면 아들 녀석도 나처럼 촐랑거리겠지? 엄청 섭섭할 거야. 후회스럽지만 영영 주워 담긴 틀려 버렸어.
…(중략)…
내가 뭐 별말이야 했어? 저녁 식탁에서 아들놈 보고,
“너 나중에 결혼할 때 제발 음식 솜씨 좋은 여자에게 장가 좀 가라. 세상에 왔더라고 늘그막에나마 반찬 같은 반찬 좀 얻어먹어 보자.”
하고 부탁한 죄밖에 없어. 그랬더니 그나마 두어 개 있던 반찬 그릇이 도로 냉장고로 들어가 버리더군. 와장창 소리를 내지르면서.
                                                                                              -안병태, <스피커>에서

‘별말 하지 않았다’는 반어적 언술구조를 반복해서 배치한 각 단락은 하나의 의미론적 전체로 수렴되지 않는다. 작품의 시작부터 마지막에 이르기까지 시간적 순서나 인과적 논리를 기저로 하는 선조성을 갖추는 것은 이 작품의 구성 전략이 아니다. 하나의 제목에 여러 개의 경험을 엮었으나 별 의미는 없다. 의미의 집중화가 불가능한 여러 가지 경험을 병렬적으로 나열해 놓고자 했을 뿐이다. 각각의 이야기가 독립된 의미를 담고 있으니, 어느 토막을 먼저 읽거나 나중에 읽어도 상관없다. 경험들 가운데 한두 개를 빼 버려도 되고 더 보태어도 되는 개방적인 구성이다. 그런데 이들은 반어적 언술이라는 점에서 서로 링크되어 있다. 별다른 의미 없이 입방정을 늘어놓았을 뿐이라며 능청을 떨지만, 각 상황마다 문제의식을 정확히 파악하여 정곡을 찌르는 풍자가 숨어 있다. 이러한 언술 구조가 각 단락, 각 경험을 연결한다. 별말 하지 않는다면서 할 말을 다하고 있는 셈이다. 반어법의 효과를 해학적으로 발휘해 놓았다.

4. 소셜 커뮤니티에서의 수필 쓰기

수필은 비교적 짧으면서 쉽게 전달되고, 상큼한 감동을 주는 형식이다. 읽혀지려면 무엇보다도 감동을 주는 수필이어야 한다. 그런데 작품 내적 요건이 아니라, 작품 외적 조건에서 읽혀지는 수필을 위해서 우리는 어떠한 노력을 해야 할까?

먼저 유통의 문제부터 고려해 볼 수 있다. 수필 창작 인구가 개인의 일상적인 삶을 표현하려는 욕구에 의해 폭발적으로 늘어났고, 인터넷 온라인 서비스 환경의 진화가 이에 부응하여 수필의 르네상스 시대를 열었다. 그런 만큼, 수필은 이러한 환경을 지속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수필을 창작하여 독자들에게 널리 읽히기 위해서는 소설 커뮤니티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 어떤 집단의 블로그나 카페에서 수필 쓰기를 하는 것이 유리하다. 그런데 개인의 블로그나 카페에서는 작품을 보관하고 관리하는 데는 유리하나, 유통시키는 데는 불리하다. 독자가 찾아오기를 기다리는 전문 쇼핑몰과 흡사하기 때문이다. 여러 소셜 커뮤니티에 가입하여 수필 보부상으로 나서는 것이 보다 공격적인 문학 활동이다. 독자들에게 작품을 날라주는 페이스북 같은 SNS를 활용하는 것이 독자를 넓히는 데는 가장 유리하다.

다양한 매체와 결합시켜 하나의 디지털 콘텐츠를 만들어 주는 것도 시도해 볼 만하다. 시는 이미 음악이나 영상 이미지와 결합시키거나 낭송까지 곁들여서 하나의 새로운 콘텐츠를 만드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그런데도 수필은 아직 이러한 퓨전 텍스트를 생산해 내지 않고 있다. 여닫는 음악이나 배경음악, 그리고 단락과 단락 사이의 이음 음악 등을 잔잔히 깔고 영상 이미지를 곁들여서 낭독과 함께 수필 작품을 만들어서 유통시켜 보면 어떨까. 디지털 콘텐츠를 제작하는 기술을 익혀야 이러한 시도가 가능하고 콘텐츠 제작을 위한 시간도 할애해야 하는 번거로움도 없지 않다. 그래서 개인이 이런 수필 콘텐츠 제작을 쉽게 엄두 낼 수 없을지 모른다. 그렇다고 전혀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전문가에게 의뢰할 수도 있고, 기술을 익히는 것도 그리 어렵지는 않다. 자신의 대표작이라도 이런 작업을 시도해 보면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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