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법 연구] 헛소리 요점 정리 / 서태수
수필은 종합문학이다.
시, 시조, 소설, 희곡, 평론의 고유한 미학이 수필 작법에 총동원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인은 언어 디자이너, 수필가는 언어의 융합 디자이너다.
‘언어 연금술’의 현대적 개념은 언어 디자인이므로 <수필가는 언어의 융합 디자이너>다.
문학과 비문학의 변별적 자질은 언어의 미적 구현 여부로 구분된다.
수필의 정체성은 언어예술의 기법으로 지성적 감동을 창출하는 양식이다.
수필가는 ‘무엇을 쓸 것인가’보다는 ‘어떻게 쓸 것인가’를 고심하는 사람이다.
무형식은 수필가에게 축복임과 동시에 재앙이다.
무형식의 재앙은 <붓 가는 대로 쓴 글>이다.
무형식의 축복은 <작가가 창출해낸 형식미>이다.
<무형식의 형식>은 수필이 지닌 미학적 깊이를 숨겨 놓은 탁견이다.
무형식의 미학적 구현은 오롯이 작가의 몫이다.
수필의 무형식은 가장 진화된 문학 미학이다.
수필도 음식이다. 고명을 얹자.
고명이란 ‘부분적으로, 이따금씩, 재주껏’ 가미하는 눈요기 요소이다.
고명 종류 : 비유적 이미지, 묘사, 수사 기교, 서정적 서술, 해학, 문장 장단의 호흡, 율격미, 어조, 부호 등 수없이 다채롭다.
잡스도 말했다. <창조는 결합이다!>
작가는 다른 장르의 창작 기법 중에서 취사선택하여 배합하면 된다.
소설의 구성, 시의 서정, 시조의 율격, 희곡의 현장감, 평론의 비평 정신 등은 모두 수필과 교집합 관계이다.
그 배합 기술은 타고난 능력이 아니라 의지와 숙달의 문제다.
로봇은 아직 구르고 뛰지 못한다. 첨단 기술도 익숙한 사람에게는 평범한 일상이다.
산문은 ‘화소(話素)’의 연결이다
수필 작법의 기본 요건은 같은 산문 문학인 소설에서 원용할 수 있다.
소설의 3요소 <주제, 구성, 문체>는 산문 서술의 공통필수요건이다.
구성의 3요소 <인물, 사건, 배경>은 수필에서는 제재와 직결된다.
문학작품의 주제란 분위기, 상황, 서사적 암시 등 포괄적인 것이 더 좋다.
이런 점에서 주제라는 말보다는 오히려 ‘주제 의식’이 더 좋을 것 같다.
구성이란 작품 전개에서 주제 의식을 향한 <통일성, 일관성, 완결성>의 효과적 조직 기술이다.
구성의 요체 : 시작은 밀양아리랑, 마무리는 물망초(Forget-me-not)!
문체(Style)란 작가의 개성이 배어 있는 효과적 표현이다.
좋은 문체란 내용, 분위기에 부합하는 표현이다.
소설 문체는 서사에 국한하지만 수필은 <서사+서정>의 기능이 필요하다.
수필 문장의 조건은 윤문潤文이다
문학 작품은 <음미吟味한다>고 한다.
음식을 맛보는 기쁨!
요리되지 못한 음식은 식탁에 오를 자격이 없다.
문학 제재는 <가치 있는 체험>이다.
<가치>란 작가가 부여한(발견한) 가치다.
깨달음이 없는 체험은 문학적 가치가 없는 것이다.
지옥에 갔다 온 체험도 그 자체로는 문학이 아니라고 했다.
수필의 제재를 취향대로 요리하자.
1. 제재 윤색潤色 = 생요리 음식
제재를 날것으로 사용하되 <구성 plot>만 적용한 기법이다.
2. 제재의 재해석再解釋 = 보쌈 음식
체험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제재의 재해석을 통해 과거 경험의 현재적 가치화가 가능하다.
3. 제재 비유 = 발효 음식
가장 보편적인 방법이 제재의 비유적 전환이다.
제재를 다른 유사한 속성을 지닌 사물에 은유하여 전개한다.
제재 비유는 재해석의 확장으로 제재의 성격이 변한다.
제재 비유는 재해석도 수반된다.
4. 제재 치환置換 = 과일주
제재를 비유적 상징물로 바꾸는 기법이다.
발효, 숙성으로 실체는 사라지고 보조관념만 남은 발효주, 장 같은 음식이다.
제재의 재해석, 비유, 치환 같은 기법 활용에는 몇 가지 이점이 생긴다.
첫째, 시적 표현, 즉 이미지 창출의 표현이 용이하다.
둘째, 명확한 지적 판단을 유보하고 비유적으로 제시함으로써 가치 논란의 독선적 위험을 피할 수 있다.
제재 변주의 기법 <윤색, 재해석, 비유, 치환>에서 윤색은 공통필수, 나머지는 선택 기법이다.
대부분의 작품은 다양한 기교의 융합融合으로 창작된다.
기법 혼용은 상호 부분집합도 가능하고 교집합도 가능하다.
문학 이론의 범주는 <문학 원론, 창작론, 수용론>이다.
지금도 아리스토텔레스가 유효하듯 원론에는 정답이 있을 수 있다.
BUT!
창작론과 수용론에는 정답이 있을 수도 없거니와 있어서도 안 된다.
특히 창작론의 독선적 획정은 자칫 작가의 개성을 제약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