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은 너무 멀다 / 김은아 - 2026 글로벌경제신문 시니어신춘문예대전 당선작
남편은 목요일이면 가끔 먼 데를 본다. 문득 어딘가에 시선을 두고 돌아오지 않는다. 그이를 오래 지켜본 사람만 알아챌 수 있는, 아주 짧은 부재. 시어머니 기일 밤, 그이가 술잔을 앞에 두고 처음 들려준 이야기 속에는 아직도 플랫폼을 달리는 소년이 살고 있었다.
소년의 밤길 곁으로, 늘 기차가 지나갔다. 야간자율학습을 마치고 돌아오는 밤이면, 소년은 부산진역을 스쳐 걸었다. 비릿한 네온 조명이 깜박이는 골목을 지나, 엄마가 기다리는 집으로 향했다. 그 시절, 소년에게 요일은 아무 의미가 없었다. 월요일이든 토요일이든 똑같이 학교에 갔고, 어두운 골목을 걸어 돌아왔다. 엄마가 있는 한, 모든 날은 고르게 안전했다.
엄마가 쓰러진 것은 추석을 앞둔 동네 방앗간에서였다. 일손을 거들다 갑작스레 바닥에 주저앉았고, 며칠 뒤 엄마 안에 깊은 병이 자리 잡았다는 말을 들었다. 그날부터 소년의 풍경이 달라졌다.
어느 새벽, 엄마는 두 아들의 손을 끌고 부산역으로 갔다.
"서울대공원 가자, 엄마 손 잡고."
통일호가 흔들리며 북상했다. 엄마는 놀이기구를 타지 않았다. 아이들이 뛰노는 동안 연신 사진을 찍었다. 꽃 앞에서, 놀이기구 앞에서, 아들들이 웃을 때마다 카메라를 들었다. 소년은 몰랐다. 엄마가 남기려 한 것이 사진이 아니라 아들들의 시간이었다는 것을. 나들이 후 엄마는 입원했다. 소년은 교실에 앉아 있어도 머릿속에는 늘 병실의 하얀 천장이 떠올랐다.
대학입시가 가까워 오던 겨울, 소년은 아버지와 대전행 통일호에 올랐다. 아버지는 말없이 사이다 한 병과 삶은 계란 두 알을 건넸다. 그 투박한 손길 속에 아버지의 모든 마음이 들어 있었다.
대학생이 된 소년은 목요일까지 수업을 마치면 곧장 대전역으로 향했다. 밤기차에 올라, 고단한 몸을 창가에 기댔다.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엄마 곁을 지키고, 월요일 새벽 다시 대전으로 올라갔다. 일주일 중 엄마에게 줄 수 있는 시간은 사흘이 전부였다. 나머지 나흘, 소년의 몸은 대전에 있었지만 마음은 늘 부산에 가 있었다
같은 학번 친구들은 주말이면 축제에 가고, 캠퍼스에서 기타를 쳤다. 소년은 목요일 밤마다 혼자 플랫폼에 섰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말할 수 없었다.
매주 같은 시간, 같은 좌석. 창밖의 가로수가 연둣빛을 틔웠다가 짙어지고, 붉어졌다가 앙상해졌다. 계절은 돌아오는데 엄마의 시간은 돌아오지 않았다. 사흘을 곁에서 보내고 떠나는 월요일 새벽이면 가슴이 무너졌다. 이번 주말에는 엄마가 조금 나아 보였다는 안도와, 다음 목요일에 돌아왔을 때 엄마가 더 작아져 있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나흘 내내 소년을 따라다녔다.
봄날 병실. 창밖으로 벚꽃이 지고 있었다. 소년은 여느 때처럼 사흘을 곁에서 보내고 떠나는 아침, 엄마의 손을 감쌌다. 한때 방앗간에서 일손을 돕던 손이 놀랍도록 가벼웠다.
"엄마, 다음 주 목요일 밤에 금방 올게요."
방금까지 곁에 있던 아들이 떠나는 순간이었다. 소년이 줄 수 있는 시간은 사흘이 전부였다. 나머지 나흘을 견디는 것은 소년의 몫이 아니라 엄마의 몫이었다.
엄마는 대답 대신 아들의 얼굴을 오래 바라보았다. 입술이 가늘게 떨렸다.
"목요일은 너무 멀다, 아들아."
함께한 사흘은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고, 기다려야 할 나흘은 영원처럼 느려지는 것. 사랑하는 사이에서, 곁에 있는 시간은 늘 모자라고 떨어져 있는 시간은 늘 남아돈다는 것. 엄마는 그것을 한마디에 담았다.
엄마는 그렇게 말하고 힘없이 손을 떨구었다. 소년은 손을 놓치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엄마는 조용히, 먼 기차를 타고 떠나버렸다.
오랜 시간이 흐른 뒤, 소년은 다시 기차에 올랐다. 구순이 된 아버지를 뵈러 부산으로 가는 길. 서울역 플랫폼에서 소년은 눈을 감았다. 기억 저편에서 초록빛 통일호가 달려오는 듯했다.
창밖으로 개나리꽃이 흐드러졌다.
소년은 눈을 감은 채 한참을 그렇게 있었다.
나는 이제 안다. 남편이 왜 아이들을 데리러 갈 때 늘 일찍 도착하는지. 왜 내가 아프면 안절부절못하는 지. 그이에게는 끝내 가지 못한 목요일이 있다. 그래서 남은 사람들에게는 하루라도 빨리, 한 발이라도 먼저 닿으려 한다.
어쩌면 사랑이란 상대의 시간 속으로 가장 빨리 달려가는 일이고, 상실이란 아무리 달려가도 닿지 못하는 요일이 생겨버리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떤 목요일이면, 남편의 눈이 잠시 멈추는 그곳.
나는 그 곁에 조용히 앉아 있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