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語시장 / 권다원 - 2026 경남도민신문 신춘문예 당선작

 

 

얼음을 쪼개는 둔탁한 소리가 어魚시장을 깨운다. 수조의 물결은 울음처럼 퍼져 골목에 번지고 외침은 안개를 갈라 길목마다 스민다. 물기 도는 바닥 틈에서 막 태어난 언어의 알맹이가 꿈틀거린다. 바닷내가 코끝을 스치면 차양살이 두터운 바람에 미세하게 떨린다. 고요히 번지는 새벽이 그 위에 내려앉아 오늘의 말을 시작한다.

손짓 하나에도 파도가 갈라진다. 짧게 던진 목청은 미끼처럼 허공에 걸린다. 구경꾼들은 음성에 낚이듯 따라 붙는다. 호응은 얕게 스치기도 하고 깊게 파고들기도 한다. 경매사의 노련한 목소리는 세월이 켜켜이 쌓인 패각처럼 두터워 말끝이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물밑의 고기가 방향을 바꾸듯 울림은 때를 보아 흩어졌다가 다시 몰려든다. 튀어나온 호명이 곧 숫자로 변한다. 손끝에서 오르내린 수치는 기류를 타고 퍼져 나간다. 호가가 끊기자 자릿수가 곧 오르내린다. 손가락 각도와 턱짓이 문장을 대신하고 눈빛이 잠시 마침표를 찍는다. 숫자는 공중에 튀어올랐다가 바로 땅에 내려앉는다. 형광등의 칼날빛 아래로 판 위에 새 숫자가 더해진다. 낙찰 신호와 함께 숨 한 줄기가 스친다. 그 순간 모두가 그 값에 묶인다.

활어 수조 앞에 섰다. 입보다 앞서 손이 움직인다. 값을 묻자 상인은 손바닥에 숫자를 그린다. 깎으려 드니 굳은살 밴 손끝을 들어 올려 자릿수를 더한다. 칼등으로 광택을 쓸어 보이며 아가미와 꼬리지느러미로 생기를 증명한다. 오래 온 손님일수록 단어는 줄어든다. 눈빛과 고개 각도가 약속처럼 포개진다. 묵직한 봉지가 손에서 손으로 건네지면 짧은 끄덕임이 마지막 줄을 대신한다.

장터의 대화는 리듬으로 흐른다. 북소리처럼 몰아치거나 낮은 현처럼 길게 울린다. ‘오늘 것’이라는 한마디에 배어 있는 계절의 물빛, ‘맹하다’는 표현에 숨어 있는 미묘한 불만이 음계처럼 섞바뀐다. 값이 맞아떨어지면 저울이 잠시 멎지만 무산된 흥정은 물살처럼 다른 자리로 흘러간다. 재단 칼과 발소리가 장단을 이어받는다. 사람과 물건이 맞닿는 순간 어시장에는 한 편의 합주가 울린다.

사투리도 혀를 타고 흐른다. 횟집 앞에서 붉은 앞치마 차림이 ‘징하게 좋다, 달다’를 번갈아 부른다. 끝소리가 살을 스쳐 떨림을 남긴다. 부엌에서 어머니가 회를 뜨던 손이 떠오른다. 뜻을 다 몰랐던 탯말이 오늘은 입안에서 먼저 풀어진다. 낱말에 손맛이 배어 억양을 만든다. 같은 뜻을 표준어로 말해도 맛이 다르다. 방언은 맥을 다시 튼다. 여기서만 살아 있는 말은 시장을 벗어나면 금세 힘을 잃는다. “싱싱하네” 보다 “팔팔하다 아이가”라는 말이 더 힘이 있다. 같은 생선이라도 그 말이 따라붙으면 값이 달라진다. 어린 시절 귓가에 맴돌던 말소리들이 다시 불려 나와 지금은 사라져가는 말씨에 살을 붙인다.

노인의 언어는 오래 묵은 항아리 같다. 손바닥 감각과 가격 글씨가 맞닿는 찰나 노점상 할머니가 고개를 든다. 바늘저울이 가라앉고 손의 기억이 금액을 확정한다. 셈은 입 밖으로 새지 않지만 주름진 손끝이 이미 결과를 말하고 있다. 한마디가 오랜 파도 끝에 남은 돌처럼 부서지지 않는다. 골판지 위에는 ‘활광어 선민어 왕고등어 중멸’ 같은 글자가 굵은 매직으로 눌러 적혔다. 비린내와 습기가 깃든 글판은 물기를 머금고 가장자리가 들떠 있다. 물기에 번진 획은 힘을 잃고 퍼석하게 갈라져 귀퉁이마다 소금기가 얼룩처럼 맺혔다. 글자는 자리를 지키지만 더는 펄떡이지 못하고 말라붙은 비늘처럼 남아 있다. 얼음기운을 머금은 듯 적힌 흔적은 숨결이 차갑게 굳었다. 살아 있는 말과 달리 움직이지 않는다.

비린 궤짝을 부려 싣고 오토바이가 곧장 샛길을 파고든다. 어깨에 남은 기운이 바퀴를 눌러 속도를 재촉한다. 웅덩이가 터지며 물보라가 허벅지까지 튀었다가 흩어진다. 상자는 덜컥거리며 경매장의 빠른 박자에서 골목의 느린 호흡으로 옮겨 탄다. 환한 얼굴과 손짓이 기다리는 어귀에 닿기 전 차가운 바람이 따라와 남은 메아리를 오래 붙든다.

정오가 지나면 풍경은 생활의 빛깔로 달라진다. 새벽의 긴장은 걷히고 주부들이 아이 손을 잡고 나타난다. 수조를 들여다보던 아이가 짧은 울음을 터뜨리면 옆에 선 이들의 해맑음이 번져 나간다. 가게에서 어머니가 손님과 안부를 주고받던 오후의 장면과 겹쳐진다. 분주하던 거리가 온기로 물들 때 입말도 누그러진다.

장판의 움직임이 늦어지면서 상인들은 종이컵을 두 손에 감싼 채 김을 불어 날려 보낸다. 곁에 쌓아둔 생선을 가리키며 봉지를 흔든다. 곁들인 한 마디에 손님이 멈춰 서면 값 대신 정과 손길이 흥정의 막줄을 메운다. 갓 튀긴 꽈배기를 나눠 씹는 소리 사이로 북적임이 쉼 없이 이어진다. 커피 향과 비린내, 웃음과 덤의 말투가 뒤섞여 오후의 장터가 한층 무겁게 익어간다.

마감이 오면 언어는 껍질만 남는다. 얼음물은 홈을 타고 흘러 배수구로 스러지고 젖은 표찰은 굽어가다 손에서 떨어진다. 빗자루가 물을 모아 긴 선으로 하루를 밀어낸다. 남은 음성들은 얼음처럼 녹아 사라지지만 빈 스티로폼은 좁은 길을 맴돌다 벽에 기대 숨을 죽인다. 마지막 트럭이 빠져나가면 공기가 한결 가벼워진다. 정적이 가장자리에 머물고 저녁빛이 흙바탕에 덮인다. 오늘의 단어는 시장 바닥에 자국으로만 박혀 있다.

나는 집으로 돌아오며 더듬는다. 생선보다 언어다. 팔려간 말과 남겨둔 이름, 얼려 둘 문장이 서로 얽혀 그물코를 만든다. 느린 것은 깊은 층으로 잠기고 빠른 것은 수면에 닿아 반짝인다. 방문 앞에 서면 시장의 웅성거림이 거둬지고 손바닥 위로 글 한 줄 내려앉는다. 그 여운은 마르지 않은 채 귓속에 남아 내일의 운율을 부른다. 한때는 값표 하나가 집안 살림의 무게로 내려앉던 적도 있었지만, 지금은 그 말들이 문장으로 살아나 나를 붙든다. 살아 있는 말과 얼어붙은 말이 함께 어울려 내 안에서 퍼덕인다.

아이 입에서 무심히 흘러나온 줄임말이 오늘 시장에서 들었던 방언과 맞부딪친다. 낯선 말끝은 장난처럼 비껴가며 가느다란 잔상을 남기고 기척이 방 안 한쪽에 오래 맺힌다. 짧은 소리가 묵직한 음가와 얽히며 뜻밖의 무늬를 드러낸다. 서로 다른 말들이 맞닿으며 생긴 가락은 글줄 속으로 옮겨 붙는다. 남김은 내일의 글귀가 된다. 저녁 식탁 위에선 대화가 꽃게탕처럼 끓어오르고 웃음 속에서 던져진 말들이 하루의 피로를 풀어낸다. 그때의 어투는 기록된 구절과 달리 이내 흘러가지만 남은 소리는 마음속에서 오래 머물며 되살아난다. 언어는 남겨진 자리에서 여전히 숨을 고르고 아직 쓰이지 않은 글결을 향해 다가간다. 등불이 꺼져도 시장어語는 멈추지 않는다.

[수상자 인터뷰]

 

마산 출신…혼자 시간 배움으로 글 시작

좋은 수필은 설명하기보다 남겨두는 글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경남 마산에서 나고 자라 현재 김해에 거주하며 수필을 쓰고 있습니다. 사람들 사이에서 오간 말과, 다르게 보이고 들린 것들의 흔적을 기록해 왔습니다.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는 것들이 어떻게 글이 되는지에 관심을 두고, 생활에 가까운 언어로 서두르지 않고 작업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신춘문예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소감이 어떠신지

▲당선 소식을 접했을 때 바로 실감이 나지 않았습니다. 글을 다시 들여다보며 신춘문예가 지닌 무게를 생각합니다. 이번 당선을 계기로 문장을 대하는 태도를 더 엄격히 하게 되었습니다. 표현을 성급히 다루지 않겠다는 다짐도 함께 생겼습니다. 앞으로 단어 하나, 문장 한 줄에도 오래 머물며 책임감을 가지고 글을 써 나가고자 합니다.

-경남도민신문 신춘문예에 응모하게 된 계기가 있는지요

▲경남도민신문이 지역의 삶과 언어를 꾸준히 기록해 온 지면이라는 점이 인상 깊었습니다. 경남 지역 밀착형 신문으로서 수필 부문이 새로 마련된 첫 회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컸습니다. 제 고향이 경남이라는 점도 이 지면에 더욱 마음이 기울게 한 이유였습니다. 생활의 현장에서 적어 온 글을 지역 독자들과 나눌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해 응모했습니다.

-당선작인 본인의 수필작품에 대해 간단히 소개 바랍니다

▲시장은 물건을 사고파는 공간이면서 동시에 언어가 가장 밀집되는 장소입니다. 어릴 적 아버지와 함께 어시장을 다니며 익혔던 단골집들을 지금은 제가 이어 다니고 있습니다. 예전의 기억을 더듬듯 시장 골목길을 걷다 보면 무심히 오간 말들이 자연스럽게 글의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결국, ‘어魚시장’은 제게 말들이 살아 움직이는 ‘어語시장’으로 바뀌었습니다.

-수필을 처음 쓴 게 언제였나요? 무슨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요

▲남편의 3교대 근무와 아이가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혼자 있는 시간이 생겼습니다. 그 시간을 비워 두기보다 무엇인가로 채워 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어 근처 도서관 수업에 참여해 수필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쓰는 과정에서 일상의 장면과 말들이 문장이 되는 경험이 흥미로웠고, 작품이 늘어나면서 글을 더 성실하게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으로 꾸준히 습작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수필을 쓸 때 주로 영감은 어디에서 찾고 소재는 어디서 얻는 편인가요

▲사람이 오가는 공간에서 오래 눈에 남는 장면을 따라갑니다. 문장을 쓸 때, 옷차림이나 화장처럼 무엇을 더하고 덜어야 할지 스스로 묻는 편입니다. 글을 쓰는 기준이 필요해서 부산 동서대 수필아카데미에서 김정화 수필가의 수업을 들으며 풍경과 감정을 과하지 않게 다루는 방법을 익히고 있습니다.

-본인이 생각하는 좋은 수필작품은 어떤 것일까요

▲좋은 글은 설명으로 밀어붙이지 않고 독자의 삶이 스며들 여지를 남기는 글이며, 작가의 감정이 앞서기보다 사물과 장면이 먼저 제자리를 지키는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설명보다 보여주기를 통해 독자가 그림 그리듯 연상할 수 있는 수필은, 읽는 이가 그 곁에 잠시 머물며 조용한 동행이 되어줍니다. 글은 말보다 오래 마음에 남습니다. 그래서 가슴에 남는 한 문장을 내놓을 수 있는 수필이라면 더없이 좋은 글이라 여깁니다.

-수필가에게 수필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수필은 있었던 일을 그대로 적는 글이 아니라 그중 하나를 골라 곁에 두고 바라보는 글쓰기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이나 감정이 아니라 사물이나 장면을 먼저 세워 두면 말이 과해지지 않습니다. 그 앞에 서 있는 동안 마음은 자연히 드러나고, 경험은 해석보다 먼저 윤곽을 갖게 됩니다. 수필은 설명하기보다 남겨 두는 글이며, 말하지 않은 여백까지 함께 읽히기를 기다리는 글입니다. 그렇게 쓰인 글이 독자에게도 자신의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고 믿습니다.

-앞으로 어떤 수필작품을 쓰고 싶나요

▲일상에서 마주한 순간과 지역에 밀착한 풍경과 반복되는 시간의 표정에 관심이 있습니다. 특별한 사건보다는 남는 감각을 글로 옮기며, 생활의 틈에서 생겨난 언어가 어떻게 문장이 되는지 오래 지켜보고 싶습니다. 읽는 이가 어렵지 않게 다가오되 각자의 경험을 겹쳐볼 수 있는 글을 차분히 이어가고자 합니다. 서두르지 않고 한 편씩 쌓아가고 싶습니다.

-당선의 선물을 얻기까지 고마움을 전하고 싶은 사람이 있는지요

▲글을 쓰는 과정에서 함께 공부한 분들과 나눈 시간도 큰 힘이 되었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수필의 첫 자리를 열어준 ‘김해율하도서관 수필교실’ 문우님들과, 현재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는 ‘동서대 수필아카데미’ 선생님들께 기꺼이 고마운 마음을 돌려드립니다.

[심사평]

어시장 분위기를 ‘말’을 통해 새롭게 해석

경남도민신문 수필부문 응모자는 226명이고 작품 수는 493편이었다. 수필을 향한 응모자들의 관심이 높다는 걸 알 수 있는 부분이다. 기존의 획일화된 구성이나 작위적인 기법에 갇히지 않은, 개성 있는 작품들이 많아 읽는 즐거움이 있었다. 또한, 젊은 세대의 도전이 심상치 않다는 점에서 바람직했다. 전체적인 내용은 가족의 서사를 비롯해 사회문제나 타자를 향한 시선, 직업, 현실의 어려움 등 다양했다.

응모자 한 사람 한 사람이 얼마나 치열하게 작품을 구상하고 글쓰기에 몰입하며 정진했는지를 알 수 있었다. 작품 수준이 높다는 게 그 점을 입증했다. 작고 사소한 것일지라도 허투루 보지 않고 가치와 의미로 남기고자 하는 노력이 엿보였다. 그만큼 당선작을 택하기까지는 고심이 따랐다.

「어語시장」은 발상이 참신한 작품으로 생선이 거래되는 시장 분위기를 ‘말’로 치환해서 말맛을 살린 점이 독특했다. 어휘를 부리는 솜씨도 탁월했다. 어시장에서 발화하는 모든 소리에 의미를 부여해 말이 가진 본질을 주제로 구현했다. ‘어語’는 단순히 ‘말’이 아니다. 또 다른 의미를 함축한 중의적인 표현이다. 어시장에서 팔리는 건 생선이지만, 생선이 거래되는 건 말을 통해서다. 활어처럼 팔딱이는 삶의 현장에서 말은 태어나고 죽는다. 어시장의 분위기를 ‘말’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새롭게 해석하고 구조화했다. 소재를 예술적으로 재배열하여 확장함으로써 의미를 구현하는 데 성공한 작품이다. 끝까지 말을 놓지 않고 자신을 성찰하는 자산으로 남긴 점도 돋보였다. 심사위원의 의견이 일치해 당선작으로 선정했다.

「재생」, 「배롱, 그 단심에 젖다」, 「맷돌은 왜 눈물방울 모양인가」 최종심에 오른 작품들이다. 「재생」은 고철이 재활용되는 과정을 통해 작가의 삶을 형상화했다. 은퇴 후의 위기감과 고립을 표현한 수작이다. 단단하고 안정된 문장이 인상적이었다. 심사위원이 끝까지 당선작과 함께 손에서 놓지 못했던 작품이다. 「배롱, 그 단심에 젖다」 또한 아까웠다. 작가는 배롱꽃의 돌기를 보며 자신이 겪었던 육체의 아픔을 상기한다. 고난을 이기고 단단하게 거듭나며 배롱꽃처럼 붉은 마음으로 살고자 결의를 다지는 아름다운 작품이다. 「맷돌은 왜 눈물방울 모양인가」는 섬돌이 되어버린 맷돌의 쓸모없음에서 새로운 의미를 본다. 삶을 대하는 작가의 시선이 따뜻하고 진솔하다.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공감을 줄 수 있는 좋은 작품이다.

수필에는 사물이나 현상을 바라보는 자기만의 시선이 필요하다. 참신한 발상과 문학적인 심미성, 문장의 안정감, 사유의 깊이 등도 중요하다고 하겠다. 당선자에게는 축하를 보내며 최종심에 오른 분들께는 따뜻한 위로를 건넨다.

본심-김성진, 장미숙(글)·예심-유명숙, 김성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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