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사유를 가진 분들께

백시종/소설가 ⦁ 한국소설가협회이사장

 

 

안녕하십니까?

처음 미국 초청 소식을 받았을 때만해도 늦은 봄철이어서 9월 중순은 나와 별 상관없는 아득한 미래였는데, 어느새 7월을 보내고 8월을 맞게 되었습니다. 세월이 당긴 화살보다 더 빠르다는 말이 그토록 실감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황망한 것이 제가 뿌리 내리고 서 있는 자리입니다. 아무리 보고 또 봐도 제 자리는 옹색하기 짝이 없습니다. 자리뿐 아닙니다. 모습도 그러합니다. 큰 모서리는 모퉁이가 없다고 하는데, 제 경우는 온통 뾰쪽 뾰쪽 각진 것 투성입니다.

 

원래 큰 소리는 희미하게 그리고 잔잔하게 들리기 마련인데, 저는 매사가 시끄럽고 번잡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어떤 독특한 음향이 아니라,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잡소리에 가깝습니다.

그처럼 밖으로 내 보일게 전혀 없는 어리버리한 주제에 그것도 한국도 아닌 미국에서 어찌 감히 그 하찮은 명함을 들이밀 수 있단 말입니까.

 

더구나 세계 어디에 내 놔도 자랑스럽고 훌륭한 작가들이 즐비한 시점에서 하필 가장 못나고 보잘 것 없는 사람을 선택하다니, 솔직히 처음에는 그 사실 자체가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옳은 비유인지 알 수 없지만, 제가끔 가슴에 품고 있는 감성의 식견을 세속적인 재산으로 평가한다면 저는 아직 세금 한푼 내 본적 없는 무일푼 신세나 진배없습니다.

 

세상에 꿈을 가졌다고 해서 다 성취하는 것이 아닌 것처럼 미국 땅에 와서 누구나 터 잡고 탄탄한 삶을 이룰 수는 없습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미국에 뿌리를 박고 일단 우뚝 설 수 있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꿈의 절반은 이뤘다고 말입니다. 그런 어려움 속에서 아직도 한글을 모국어로 삼고, 창작하는 일에 열중하고 있다면, 더더구나 자기 정체성을 확실하게 구축한 아름다운 세계관을 가진 사람들 일에 틀림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미국 초청이 두렵고, 여러분이 청중으로 앉아있는 강단이 너무 높아 보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요, 저같이 은행잔고 한 푼 없는 신세가 과연 무슨 재주로, 무슨 배짱으로, 텅 빈 지갑을 열어 물건 값을 지불 할 수 있으며, 따뜻하게 채운 식사대를 계산할 수 있단 말입니까.

 

어쨌거나 세월은 당긴 화살보다 먼저 가서 기다릴 터이고, 저는 가슴 두근거리며 여러분 앞에 어쭙잖게, 그리고 어리버리 서지 않을 수 없습니다.

부디 사랑과 이해와 아량으로 따뜻하게 덮어 주실 것을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