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를 하는 방식 / 김예진-제44회 만해백일장 만해대상

 

 

해석하기 어려운 글자와 그림들이 터널의 설계도면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나는 한밤중에 서울에서부터 택시를 타고 강원도에 있을 남편을 찾으러 가는 길이었다. 고속도로에 진입한 이후로 화재 사고가 났던 터널에 가까워질수록 스산한 기운을 떨칠 수 없었다. 불에 탄 나뭇가지가 도로 위에 무작위로 뻗어 있었고, 부서진 방지턱을 넘을 때마다 뒷바퀴의 충격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터널 안쪽에 소방 설비 기구를 설치해야 한다는 우려를 무시한 결과였다. 원가 절감을 위해 화재에 취약한 아크릴로 방음재를 제작했다는 보도가 빗발치자 회사는 설계자인 남편에게 책임을 떠넘기기 바빴다. 터널 근처에서 발생한 산불이 번져 차량에서 숨진 대학생들이 등산 가방을 멘 채로 발견되었다는 자극적인 기사가 쏟아져 나왔다. 남편은 그 기사가 나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표를 냈다. 고위급 임원들의 근무 평가 압박에도 계속해서 아크릴을 반대했다는 해명은 하지 않았다. 그저 백패킹 동호회에 가입하더니 캠핑 장비를 사들였다. 남편은 집에서도 이불 대신 침낭을 뒤집어쓰고 자는 기이한 행동마저 보였다. 나는 부당한 실업이라며 기자들을 찾아다녔으나 남편의 이야기를 기사로 써주겠다는 사람은 없었다. 한 사람만 매도할 수 있다면 상관없다는 듯 거짓만이 휘몰아쳤다.

집을 떠나 한 달 동안 소식이 없는 남편을 찾기 위해 산악 동호회에 연락해 본 적도 있었지만 직접 찾으러 가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남편과 닮은 사람을 강원도에서 본 적 있다는 말은 다소 희망적이었다. 남편이 떠나기 전날, 나는 터널의 냄새가 나는 것 같다던 그의 입에 가글을 부어주었다. 커다란 가방을 하루도 빠짐없이 마음의 짐처럼 메고 살던 그의 입술은 쉴 새 없이 움직였고, 안간힘을 쓸수록 피부의 표면은 빠르게 말랐다. 터널 속으로 들어가 원인을 찾고 싶다는 남편의 혓바닥은 애벌레처럼 미세하게 떨렸다. 나는 현실에 떳떳하지 못한 남편이 답답했다.

“이제 와서 당신이 터널을 살피는 게 무슨 의미가 있어? 사람들이 바라듯 굴복하는 꼴이라고.”

모질게 내뱉는 나의 대답에도 남편은 빛 하나 들어오지 않는 방에서 짐을 챙기고 있었다.

유가족의 합의 독촉이 부담스럽다며 오늘만큼은 남편을 찾아오라고 쏘아붙이는 시어머니의 음성을 되짚었다. 책임지고 해결하기보다는 문제를 회피하는 쪽이었던 남편의 성향이 지겨웠다. 고시 공부를 포기하고 설계 자격증을 따겠다는 남편에게 숨 쉴 틈을 만들어준 사람은 나였다. 밤낮을 바꿔가며 물류 창고 일을 해서 남편의 자격증 공부를 지원해 준 사람도 나였다. 서로에게 숨구멍을 만들어주겠다는 암묵적인 약속을 배반한 그를 용서하기는 어려웠다. 화재가 있던 터널로 진입하고서는 더더욱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택시 안에 차오르는 탄 냄새는 썩은 고무를 흡입하듯 역겨웠다. 터널을 함께 살펴보러 가자는 남편의 권유를 거절한 것도 어둠 속으로 말려들기 싫어서였다. 차라리 남편만 터널 속으로 들어갔으면 싶었다. 방 한가운데 침낭을 펴고 들어가 누운 남편의 얼굴이 흉측했던 적도 있었다. 그 비좁은 터널 속에서만큼은 잠을 잘 자던 당신...... 어쩌면 그를 내쫓은 사람은 나일지도 몰랐다.

나는 차를 유턴하여 터널을 빠져나가달라고 말한 후에 힘겹게 창밖을 내다보았다. 어두운 터널 안에서 헤드라이트가 그을린 콘크리트 벽면을 비추자 검은 침낭이 비스듬히 기대 있는 게 보였다. 나는 놀라 기사에게 물으며 침낭 속에 사람이 있는 것 같다고 소리쳤다.

“여기 터널 설계하는데 공들인 인부나 설계자들이에요. 죽은 사람들 같죠? 새까만 침낭 속에 들어가 벽에 기댄 채 자는 거예요.”

기사의 말에 다시 고개를 돌려 뜨거운 빛깔의 전등을 응시했다. 타오르는 전등마다 낯선 사람의 얼굴이 희미하게 비쳤다. 피해자에 대한 애도인지, 안식을 찾은 사람의 얼굴인지 편안한 표정이었다.

“해명하는 거죠. 자기들도 피해자라고.”

기사의 목소리는 얼굴이 보이지 않는 댓글처럼 기계적이고, 묵직했다. 터널을 빠져나갔지만 잡음은 증폭되었고, 목울대가 달아올랐다. 맨몸으로 그곳에 들어간다고 뭐가 달라지냐는 기사의 역정에도 택시에서 내려 숨을 들이켰다. 터널을 향해 달려가는 와중에도 남편이 남기고 간 설계도면을 움켜쥐었다. 남편의 설계도면은 주부 영어로는 알기 어려운 외국어가 빼곡했지만 모서리가 접혀 보이지 않았던 메모 정도는 읽을 수 있었다. ‘어둠을 직면하고도 목소리를 낼 것.’ 그를 용서할 수 있는 유일한 해답 같았다. 역한 냄새가 가까워질수록 터널의 불빛은 선명해졌다. 새까만 입속에 있던 남편의 혓바닥이 꿈틀거리는 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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