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 나라에 간 사랑이 / 박유니스

 

어릴 때, 집안에는 고양이가 늘 두세 마리씩 있었다. 

그중에서도 살찌니는 특히 나를 따랐다. 대문에서 본채가 멀리 떨어져 있고 초인종도 없던 시절, 보충수업을 듣고 모두 잠든 뒤에 집에 오면 살찌니는 대문 고리를 달그락거리며 안채의 식구들을 깨우려고 야옹거렸다. 하지만 애들을 질색하는 언니가 밤늦게 대문을 두드리는 날은 살찌니는 대문 곁에 미동도 없이 앉아만 있었다. 그런 날 살찌니가 잽싸게 피하지 않으면 잔뜩 화가 난 언니 발길에 가차 없이 채였다.

어느 해 우리 집이 이사하는 날, 부모님은 우리들이 등교하고 난 뒤에 이삿짐을 옮겼다. 학교가 끝나고 이사한 집으로 와 보니 아이들이 보이지 않았다. 옛집으로 달려가 아이들을 새 집으로 데려왔다. 아직 다 자라지도 못한 것들을 길거리로 내몰 수는 없었다. 탈 것에는 짐승을 태우지 않는다는 미신이 있던 시절, 고양이 공수 작전은 마치 007 작전과도 같았다. 책가방 속에 아이들을 숨겨서 전차를 탔다. 전차 가운데로 비집고 들어가서 아이들이 울음소리를 내지 않도록 다독였다. 집에 와서 책가방에서 고양이 두 마리를 풀어 놓자 어머니는 혀를 차며 기막혀 하셨다. 그중 제일 영리했던 희망이는 우리가 이사 간 사실을 알고 진작에 새 주인을 찾아 떠났는지 보이지 않았다. 좀 더 찾아볼 걸 끝내 못 데리고 온 것이 두고두고 가슴 아팠다. 

LA에 와서 기르던 밀키는 털이 눈처럼 희고 매끄러운 미인으로 인기가 많았다. 일 년에 한두 번, 꼭 네 마리씩 새끼를 낳았다. 네 마리 형제는 태어난 순간부터 성격이 판이했다. 한 놈은 들어 올리면 눈도 뜨지 못한 주제에 활처럼 몸을 돌려 내 손을 할퀴려고 들었다. 두 놈은 무덤덤하게 몸을 맡기는 편이고 넷 중의 하나는 젖도 떼기 전부터 사람 손을 즐기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렇게 몇 대를 지나며 가장 사랑스러워서 우리 집 적자의 자리에 오른 것이 ‘사랑이’다. 대개 얼굴 하관이 빠를수록 고양이들은 앙칼진데 사랑이는 같이 태어난 형제들과 달리 얼굴이 통통했다. 우윳빛 털이 풍성하고 푸른 눈이 고운 수컷이었다.  

사랑이는 다른 아이들처럼 밖으로 나돌지 않았다. 늘 내 곁을 맴돌았다. 애들을 한 번에 몰아서 목욕시키는 날은 아들, 딸 다 동원해도 화장실이 아水라장이 되고 세 사람 중의 한 사람은 어디 한 곳은 할퀸 상처가 나게 마련이었다. 사랑이만 그토록 싫은 일을 조신하게 협조했다. 조용하게 입욕하고 얌전하게 몸을 말리고는 했다.

사랑이와 그 형제들이 여섯 달쯤 되었던 어느 해 크리스마스 저녁이었다. 지인의 집에 가족 모두 초대받아 가게 되었다. 다른 아이들은 보이지 않았고 사랑이만 내 무릎에서 자고 있었다. 긴 외출이 될 것 같아서 사랑이를 밖에 내 보내고 문을 잠그고 떠났다. 늦게 귀가해서 보니 다른 아이들은 다 뒤뜰에 돌아와 있는데 사랑이만 안 보였다. 밤도 늦었고 밖엔 겨울비가 추적거리고 있었다. 걱정하다가 밤늦게 잠자리에 들었다. 

날이 밝았는데도 사랑이는 돌아오지 않았다. 새벽에 급히 사랑이를 찾아 나섰다. 사랑아, 사랑아 부르며 집 주위 골목을 도는데 산책하던 어느 백인 할아버지가 나를 불렀다. 저쪽 골목에서 무언가를 보았다고 했다.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거기 길 한편에 사랑이가 있었다. 눈처럼 흰 털이 온통 흙투성이가 되어서 뻣뻣하게 누워 있었다. 잠결에 비척거리다 차에 치인 것이다. 우산을 던지고 사랑이 옆에 주저앉아 엉엉 울었다. 잠도 덜 깬 애를… 밤길이 익숙하지도 않은 것을… 비 오는 저녁에 밖에 내보내다니…   어디 가서 사랑이를 다시 만날까, 영혼이 없는 사랑이를 어느 세상에서도 다시는 볼 수 없다는 사실이 너무 슬펐다. 골목길에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반대 쪽 길에서 사랑이를 찾아다니던 딸아이가 달려 왔다. 빗줄기는 점점 거세지고 있었다.

석 달이 지난 어느 날의 일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비가 개인 저녁 무렵, 110번 프리웨이를 북쪽으로 달리고 있는데 먼 하늘에 찬란한 새털구름이 눈에 들어왔다. 그 순간이었다. 불현듯 깨달음이 왔다. 아, 사랑이가 저 구름 나라에 있구나! 사랑이가 메시지를 보내고 있었다. ‘너무 슬퍼하지 마세요. 저 여기 잘 있어요.’ 사랑이가 마지막 안간힘으로 내게 위로를 보내었다. 신기하게도 가슴을 조여오던 슬픔이 그 순간 씻은 듯이 사라졌다.

 

그 후로 어떤 아이도 다시는 집에 들일 수 없었다. 지금도 전에 살던 동네에 가면 사랑이가 어디선가 나타날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