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자닌에 서서

                                                                                                        박 유니스


 

마음이 끝도 없이 떠돌 때면, 나는 전생에 두 몸을 갖고 있었던 건 아닐지 생각하곤 한다. 한 몸은 한국에 태어났고 다른 몸은 미국 땅에서 환생하여 서로를 끊임없이 갈망하는 느낌이 내 안에 있다. 그럴 때면 나는 먼 우주의 한 틈새에서 서성거리는 기분이 든다. 계절이 바뀔 때면 그 감각은 더욱 또렷해진다. 내 몸이 둘로 나누어지는 걸 느낀다. 두 사이 어딘가에 내가 서 있는 중간 지점이 있다. 나는 그곳을 메자닌(Mezzanine)이라고 부른다. 

 

나의 메자닌에서는 늘 바람이 분다. 벽제에 잠든 어머니의 무덤으로 나를 순식간에  데려가고 어느 틈엔가 딸이 사는 버지니아로 나를 옮겨 놓는다. 일순간에 그것은 걷잡을 수 없는 광풍이 되어 마음속을 휘몰아치고 때로는 잔잔한 미풍이 되어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우리 선대의 한 분이 조선조 숙종 연간에 먼 북쪽 변방으로 유배되었다고 한다. 그로부터 이백여 년이 지나서 태어난 내가 과연 순수한 조선인의 혈통인지 문득 의심스러울 때도 있다. 변방의 바람을 맞았던 북방의 기운이 세월을 건너 나를 이곳까지 옮겨온 것일까. 한국에서 스물다섯 해를 살았고, 미국에 와서 산지도 어느덧 오십 년이 넘었다. 외국인들이 발음하기 까다로운 이름을 미국식 이름으로 바꾸고 결혼 후에는 남편 따라 성까지 바뀌었지만 내 체질(體質)은 여전히 뼛속까지 한국인이다. 

 

피난지 부산을 떠나 서울로 돌아왔을 때도 고생하던 부산의 바다가 눈앞에 넘실거렸다. 길게 휘돌다 작은 물줄기가 되어 바다로 흘러드는 낙동강 샛강에서 멱을 감던 일, 하단 바닷가 앞 모래밭에서 조개를 캐어 집안 살림에 보태던 기억들이 서울에서도, LA에서도 늘 겹친다. 언제였던가, 조개를 더 많이 주워 보겠다고 아침 일찍 먼 섬으로 물질 나가는 해녀들의 배에 끼어 탄 적이 있다.

 

썰물에 모습을 드러낸 작은 모래톱에 나와 남동생을 내려놓고 떠난 배는, 밀물이 되어 바닷물이 무릎까지 차오르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배가 우리를 내려준 자리에서 끝까지 기다려야 했는데 바닷물이 밀려오자 나는 한 살 아래 동생을 업고 육지에 조금 가까운 모래톱으로 옮겨갔다. 아침에 정해진 모래톱에 우리를 내려주고 멀리 나갔던 배는 바다에 어둠이 깔리기 직전에야 간신히 우리를 찾아냈다. 우리를 발견하고 기쁨에 겨워 왁자지껄 배 안으로 끌어 올려 주던 해녀들의 투박한 손길을 지금도 기억한다. 

 

배를 기다리며 바라보던 바다 너머, 저만치 다대포 앞마을에서는 저녁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 정겨운 풍경은 아직도 기억 속에 살아서 나를 그 시절로 데려간다.

 

“내 마음은 하일랜드에 있다네, 여기 있지 않다네.”

 

스코틀랜드 시인 번스(Robert Burns, 1759 -1796)는 고향 하일랜드를 잊지 못했다. 나 역시 마음속의 하일랜드를 하염없이 바라본다. 아니, 어쩌면 지금도 찾고 있는지 모른다. 다대포를 빼면 나의 두 번째 하일랜드는 서울이다. 서울은 내게 생명을 주었고, 설익은 내면을 지식이라는 알곡으로 차곡차곡 채워준 곳이다. 첫사랑이 피고 진 순수의 도시이며 미국으로 오면서 떠난 곳이기에 내 안에 각인된 조국의 모습으로 남아있는 곳이다. 

 

마음의 본향 내 생명의 원천을 찾으려 할수록 그리움은 더욱 깊어진다. 결핍과 상실감은 가슴에 또렷한 생채기를 남긴다. 그 기억들이 남겨진 자국과 유년에 대한 향수는 지금 내 글쓰기의 에센스가 되어 있다.

 

낯선 땅에서도 나는 모국어로 말하고 글을 쓴다. 그것은 숨을 쉬는 일처럼 매일, 매 순간 고국과 고향을 응시하게 한다. 그 과거지향적인 원심력의 끈을 놓치지 않았기에 지금의 내가 존재한다고 믿는다. 가고 싶은 과거와 지금 발을 딛고 있는 미국의 현실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일은 버겁지만,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고 한다(橘化爲枳). 회수보다 더 멀고 먼 태평양 건너 미국 땅에서 나는 지금 무엇이 되어 있을까?  

 

어디에서도 나는 귤이고 싶다. 그 가능성이 내게는 무엇보다 소중하다. 뿌리를 고향에 둔 귤나무처럼 영혼의 자양분을 받아 철 따라 푸른 글을 키워내고 싶다. 나는 아직 메자닌에 서 있다. 두 세계 사이의 바람을 맞으며, 언젠가 더 넓은 로비로 나아갈 날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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