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지나면 / 박유니스
서울 동창들이 베네룩스 여행 계획을 알려 왔다. 벨기에와 네덜란드 그리고 프랑스를 둘러보는 여행이다. LA에서 날짜를 맞춰서 출발, 인천공항에서 친구 열 명과 합류해서 파리행 KAL기에 올랐다.
벨기에와 네덜란드를 먼저 여행하고 엿새째 되는 날 파리에 도착했다. 다음 날, 파리 인근을 관광하고 저녁때 호텔에 돌아왔는데 갑자기 복도 쪽이 소란스러워졌다. 이층 북쪽 창문을 깨고 반갑지 않은 손님이 들어 우리 팀과 함께 투어 중이던 몇 분의 짐과 여권까지 다 털어 갔다. 다행히 호텔 남쪽 방에 투숙했던 우리 동창들은 피해가 없었다. 다음 날 가이드는 우리에게 양해를 구한 후, 피해자들의 임시 여권을 발급받기 위해 그동안 사용하던 투어 버스에 그들을 태우고 한국 영사관으로 갔다. 그날, 우리 동창들은 차도 가이드도 없이 파리 시내 일주에 나섰다.
파리 거주자들은 모두 바캉스를 떠나고 관광객들만 몰려다닌다는 7월의 파리는 무더웠고 더욱이 습도는 상상 이상이었다. 여기저기 기웃거리다 오후 늦게 뛸르리 공원에 갔다. 피곤해서 그럴까, 류마티즘 관절염이 도져서 호텔에 돌아가 눕고만 싶었는데 거기서 다시 카페 드 마고에 가서 커피를 마시기로 의논이 되었다. 카뮈와 사르트르가 자주 가서 글을 쓰곤 했던 카페 드 마고는 몇 년 전에 노트르담 사원 앞에서 택시를 타고 갔던 기억은 나는데 뛸르리에서는 방향조차 가늠할 수 없었다. 그때 동창 K가 나서서 여기서 가까우니 걸어가지고 했다.
사건은 그때 시작되었다. 넓은 공원에서 어느 쪽이 카페가 있는 생제르맹 데프레 거리로 가는 지름길인지 K는 시원시원하게 길을 안내하지 못했다. 성질 급한 내가 조깅하는 남자를 하나 붙잡아 세워 길을 물었다. 파리에서는 세 사람 중 둘은 관광객이라서 가까운 길도 모르기가 예사였는데 셔츠 차림에 한가하게 조깅하고 있으니 틀림없는 파리지앵이라 믿었다. 그런데 일이 잘못되느라고 그 사람이 엉뚱한 길을 가르쳐줬고 그 통에 시간을 많이 허비했다.
K는 귀국해서 여행기를 책으로 내며 거기에 이 일을 상세히 썼다. 자기가 길을 안다고 하는 데도 내가 조깅맨에게 길을 물었고 돌 쳐오는 길에 자기를 못 믿은 내가 또 어느 가게에 들어가 길을 물었다고 했다. LA에서 K의 이 여행기를 읽지 못한 나는 이 책에 대해 까마득히 몰랐다. 그로부터 수 년이 지나 바로 몇 달 전, K는 우리 동창들의‘14인 카톡방’에서 내게, “그 기행문은 그때 그 사건에 관한 폭로성 글이었는데 너는 못 읽었겠지?”하며 비아냥댔다.
14인 카톡방은 대학에서 교양과목을 함께 이수했던 문과반 여자 동문들의 대화의 방이다. 50대 이후부터는 함께 세계 여러 나라를 여행했는데 본인이 공부한 나라에 갈 때는 전공한 사람이 앞장서는 것이 특별할 것도 없는 일이었다. 파리에 유학한 손녀를 뒷바라지 하며 삼 년간 파리의 골목골목을 누비며 길을 익혔다는 K, 그가 그 당시 카페 가는 길을 확실하게 리드했으면 우리가 그 무더위에 조깅맨이 가르쳐 준 길로 갔을 리가 없다.
동창 K는 내가 프랑스어를 안다고 자기를 무시했다고 단단히 오해했다. 이름이 꽤 알려 진 중견작가인 K가 여행 중의 즐거운 일화도 부족해서 문학작품에 친구들 사이에 일어 난 일을 내 실명까지 밝히며 침소봉대했다. 그리고 그 일을 십여 년 동안 마음에 담아 두었다가 이제 와서‘재폭로’한 것이다.
1866년에 일어났던 병인양요(丙寅洋擾)가 100년이 훨씬 지나 프랑스 땅에서 재연됐다. 국문학과 대 불문학과의 한, 불 대첩으로, 그리고 포성은 멈췄지만 포연은 여전히 자욱한 제로섬 전쟁으로.
오해는 영어로는 미스언더스탠드(misunderstand) 혹은 겟 썸원 롱(get someone wrong)이라고 한다. 전 자는 말 그대로 상대방의 말 내지 의도를 잘못 이해한 경우고 후 자는 오해보다 오판(誤判 )에 가깝다. 전 자는 그 감정이 일방적인 데 반해 후 자는 쌍방이므로 거기엔 불쾌했거나 오해를 한 상대방이 반드시 있게 마련이어서 상황을 전자보다 훨씬 복잡하게 만든다. 거기에 오해하는 쪽의 오해하고픈 의지가 조금이라도 섞이면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꼬여버린다. 그쪽에서 작심하고 시작한 오해를 이쪽에서 단번에 해결할 묘수가 없는 것도 사실이다. 관계의 복원과 단절은 시간에 맡길 수밖에 없다.
어머나, 아무리 생각해도 개인적인 일인데 실명으로 문자화하는 것은 글쓴이의 예의가 아니지요.
기본적인 매너없이 중견작가가 되다니 그것도 화가 나네요.
'아는 길도 물어가라'는 속담이 떠오릅니다.
선생님, 힘내세요!
반갑습니다, 박진희 선생님.
어김없이 찾아 주시고 함께 분노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이제야 그때 그 일, 완전히 힐링된 느낌입니다.
감사합니다.
박유니스 선생님, 좋은 곳을 다녀오셨네요. 저도 프랑스에 여동생이 살고 있어서 그곳을 방문할 계획을 세우고 있는데요. 가는 김에 저도 주변 국가인 베네룩스 여행도 하고 싶고요. 저도 가게되면 사건이 일어났던 그곳도 가보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