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는 변신한다

 

                                                                            신순희

 

 

 

산은 없이 소생하는 숲을 안고 있다. 산을 경외하는 사람들은 산에 올라 정상에 깃발을 꽂고 인간승리라고 말한다. 한편에서는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산을 폭파해 터널을 뚫으며 변화를 꿈꾼다. 산은 처음부터 거기에 있었던 것처럼 보이지만, 아주 옛날 산이 바다가 되고 바다가 산이 되었던 때가 있었다.

 

존재하는 것은 변화하며 사라지고 사라진 뒤에는 흔적이 남는다. 흔적은 언젠가 소생한다.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은 없다. 생물은 생물대로 사물은 사물대로 존재한다. 생물은 끊임없이 죽고 살아나면서 영원을 염원하고, 사물은 제한적인 공간으로 살아간다. 내가 미국에서 사들인 식탁이며 의자가 우리 이민 역사로 존재하는 것처럼.

 

사람만큼 확실한 존재는 없다. 생각하는 언어가 있으니 기록하고 문서화하기 때문이겠다. 옛사람들은 남겨진 업적으로 존재한다. 조선시대 화가의 그림은 박물관에, 고전 소설가는 책방에, 전설의 음악가는 악보로 살아있다. 우리 거실 벽에 걸려있는 신사임당의 초충도탁본을 때마다 나는 감탄한다. 시대를 넘어서 그림으로 신사임당은 나와 마주한다. 과거는 현재와 소통하면서 다시 깨어난다

 

오랜 시간 문화는 변화를 거듭하며 시대를 거쳐왔다. 과거 살았던 위인들이 화폐를 통해 오늘을 산다. 인물이 가치를 정한다. 역사는 돌고 돌면서 영원히 우리 곁에 같은 방식으로 머문다. 과거에 일어난 일이 지금도 일어나고 있듯이, 삶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사람의 생각은 비슷하다

 

사람 사이에 영원한 것은 없다. 산과 바다는 의구하지만, 사람은 자리에 그대로 있을 없다. 세월과 정면 대결하며 변신을 도모한다. 젊어지려고 과학의 힘을 빌린다. 연륜을 거슬러 팽팽하게 주름을 얼굴이 부자연스럽다. 지는 노을을 잡을 수는 없다. 다행히 사람에게는 살아갈수록 너그러워지는 마음이 있다.

 

세월이 흐르면 변해야 한다. 과학도 변하지 않던가. 어릴 과학이 영원한 진리인 알았다. 생활과 밀접한 과학은 지금도 연구하고 발표하면서 시간 따라 변하는 중이다. 영원한 생명을 사모하는 사람은 영원한 신神을 찾는다. 어딘가 낙원이 있다고 믿고 싶어 한다. 신과 낙원은 마음속에 존재하지 않을까. 마음속에 희망이 있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긴다고 했다. 인간 입장에서 하는 말이다. 줄무늬 가죽에 위엄이 서려 있다. 박제된 곰의 몸짓과 표정을 적이 있는가. 무언가 말이 있는 듯하다. 전시판 핀에 꽂혀있는 나비는 화려한 날개를 펼친 굳어있다. 일생이 표본이 되어버린 존재이다

 

언젠가 동남아 여행에서 구입한 나비 표본 액자는 우리 집에서 수십 넘게 추억으로 존재하고 있다. 자유로운 나비를 잡아서 핀에 꽂아두고 감상하다니, 그때 나는 아무 생각 없었다. 작은 악어백도 하나 샀다. 그것을 들고 다니지도 버리지도 못했다. 악어의 가죽을 벗겨서 자랑스럽게 들고 다닐 일은 아니다. 박제된 동물도 핸드백이 악어도 생이 끝난 장식품이 줄은 몰랐을 것이다. 치욕스러운 변신이다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했다. 유명한 사람들 말이다. 역대 왕은 왕릉에서 안식하며 역사를 이야기하고 위인은 교과서에 실려 후대 사람들과 소통한다. 민초는 짓밟히며 열심히 살아도 아무도 몰라준다. 누구나 이름이 있다. 이름 자는 새기고 싶다. 묘비는 돌과 같은 사물로라도 남고 싶은 마음의 흔적일지 모른다

 

세상을 떠난 나를 잊어주길 바랄까. 아니다. 나를 잊지 말아요, 기억해 주길 바란다. 시간을 넘어서 사라진 뒤에도 존재하고 싶어 한다. 그러한 염원이 윤회사상으로 남은 아닐까. 살아나려면 변해야 한다. 흙으로 변해야 생명이 태어나듯이.  

 

세상을 넘게 괴롭힌 코로나바이러스가 끝까지 사람을 붙들고 늘어진다. 백신을 맞고 거리두기를 하고 마스크를 해도 막무가내이다. 대단한 존재감이다. 인간에게 정복되지 않은 균이 있던가. 결국 세균은 사라지지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변신을 시도할 것이다

 

만물은 저마다 존재의 이유가 있다. 나는 존재하는가. 그동안 어떤 변화를 견디며 살아왔으며 앞으로 어떻게 사라질 것인가. 남길만한 흔적이 있는가. 그리고 어떻게 소생할 것인가를 한번 생각해 일이다.

 

 

[2022년 7월]

 

-2022년 대표에세이문학회 <존재와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