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을 닫으며
신순희
고등학교 1학년때 담임 선생님은 영어를 가르치는 시인이었다. 흐린 날, 선생님은 수업 중에 무심하게 창밖을 보며 시를 읊었다. 선생님의 목소리가 시에 나오는 순박한 이름을 부를 때 유난히 길게 흔들렸다. 몇몇 아이들은 어색한 분위기에 고개 숙이고 웃었지만, 나는 선생님의 순수한 감성을 읽었다.
차분한 모습의 선생님은 반 아이들에게 종례 시간에 소설책을 한 권 읽고 독후감을 써오라는 숙제를 내주었다. 마침 나는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을 읽고 있었다. 전당포 노파를 도끼로 살해하고서 정당성을 찾는 라스콜니코프와 피폐한 그를 감화시킨 창녀 소냐에게 잔뜩 빠져있었다. 소설을 읽고 슬프지 않은데 눈물을 흘린 건 처음이었다. 그 책의 독후감을 써냈다.
선생님은 내가 쓴 독후감을 좋은 글로 선정해 주었다. 선생님은 교실에서 별 존재감 없는 내게 관심을 기울이고 가만히 다가와 말을 걸었다. 나한테만 그런 건 아니었다. 누구에게나 그랬다. 세심하고 유연하게 제자들을 격려하고 차가운 두뇌보다 따뜻한 마음을 보여주었다.
고등학교 2학년 중간고사가 끝난 날, 해방감에 들뜬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 대한극장으로 영화 ‘닥터 지바고’를 보러 갈 때 나는 친구와 다른 극장에 갔다. 당시 스카라였던가. 그곳에서 개봉한 초등학생 관람가 ‘여타잔 궁갈라’. 험한 정글에서 여자가 펄펄 나는 모습을 보고 싶었던 걸까.
교복 차림으로 책가방을 든 채 컴컴한 극장 뒷좌석에 앉아서 예고편을 보고 있었다. 웬 남자가 너희들 잠깐만 나와 봐, 하고 친구와 나를 불러냈다. 이른 시간이라 관객도 별로 없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극장 로비에 나온 나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정신이 아득해지면서 이게 꿈인가 생신가, 현실감조차 없었다. 모르는 선생님이 품행 단속을 나온 것이다. 돌이켜보면, 그때처럼 자존심 팽개친 적이 없다. 완전히 풀어진 자세로 바닥에 주저앉아 소리 내어 울었다.
그 일로 일주일 동안, 매일 학교에 와서 수업은 못 하고 교장실에서 반성문을 썼다. 그때 교장실 한쪽 벽면 꼭대기에 옆으로 긴 액자 하나가 걸려 있었다. '문정희'라는 이름과 함께 시 제목이 ‘가야금’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물끄러미 액자를 바라보는 나에게 교감 선생님은 졸업한 선배가 쓴 시라고 알려주었다. 어떻게 여고생이 저런 글을 쓰는지 경이로움으로 시를 읽고 또 읽었다. 지금도 그 시의 첫 구절을 기억한다.
학교에서 근신이 끝나고 들어간 첫 수업이 선생님의 영어 시간이었다. 수업 도중에 들어온 나를 아이들은 힐끔거리며 보았는데, 선생님은 영어책을 읽다 말고 내 곁으로 와서 아주 작은 목소리로 “아, 너 왔구나.” 하였다. 그 소리는 괜찮아, 하는 것 같아 조금은 나를 안심시켰다.
왜 진작 생각하지 못했을까. 시인이니까 찾을지도 모른다. 구글 창에 ‘시인’이라는 단어와 함께 선생님 이름을 입력했다. 있다. 반가운 마음에 가슴이 다 두근거렸다. 그러나 순수의 시대는 지나갔다. 내가 유일하게 마음에 두었던 고등학교 시절의 선생님. 그렇다고 이성적인 마음은 전혀 없었다. 그냥 다른 선생님들과는 달랐다. 공부만을 강요하지 않으며 누구에게나 편견 없이 대했다. 선생님이 언제 우리 학교에 부임했다가 언제 떠났는지도 모른다.
거의 모르던 선생님에 대해 알게 되었다. 선생님은 나를 기억조차 못하겠지만, 그래도 소식 한번 전하고 싶었는데 세월은 기다려주지 않았다. 선생님은 이미 이 세상에 없다. 스물두 살의 젊은 나이에 동아일보와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하고, 나중에 대학교수로 재직하며 번역서도 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잔잔한 물결 같던 선생님이 쓴 시를 이제야 읽게 되다니. 선생님의 시를 읽으려니 가슴이 뭉클해졌다. 까맣게 잊힌 게 아니다. 결코 나는 선생님을 잊지 않았다. 누구나 한때는 문학소녀가 되기도 하지만, 그때 내가 문학을 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꿈은 많았지만 왜 그리 주눅 들어 살았는지 모르겠다. 선생님은 공부에 지친 우리의 메마른 마음을 문학으로 순화시켰다.
창밖을 보며 시를 읊던 선생님. 그 창을 사이에 두고 세월이 흐르고 사람이 흐르고 시도 문학도 흘렀다.
- 2020년 대표에세이 작가들을 울린 인생 책 <生, 푸른 불빛>-
국민학교때 조선작 선생님이 바로 옆 반 담임선생님이셨어요.
저희집 근처에 사셨죠.
스승에날 이나 행사 때 선물이 들어오면
교무실로 저를 부르셔서
하교 길에 집에다 가져다 놓아 달라고 부탁하시고는 했답니다.
후에 그분이 영자의 전생시대를 쓰고 유명해 지셨죠.
신선생님 작품을 읽으며
저도 그 시절로 돌아가 그분을 생각해봅니다.
그립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