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또는 안개

 

 

 

                                                              신순희

 

 

 

오슬오슬 추운 시애틀의 겨울이다. 영하의 날씨로 내려가지 않지만, 마음이 시린 날들이다. 바깥보다 실내가 춥다. 집안에서 덧신을 신고도 발이 시리다. 가끔 털모자 쓰고 설거지를 하기도 한다. 몸을 어디 의지할 데가 없다. 고국의 따뜻한 장판이 그립다.

 

오거나 안개 끼는 날이 많다. 비가 오면 기온이 다소 올라가고 안개가 걷히면 햇살은 좋지만 춥다. 이상한 영하가 아닌데도 뒷마당에 나가면  지붕끝에 열린 고드름이 보인다. 기온만 보고 얇은 입고 외출하면 감기 걸리기 쉽다. 체감온도는 영하니까. 아침 산책하는 노인들은 모자에 장갑에 가리게까지 중무장이다. 매섭진 않지만 스며드는 추위다.

 

년에 한두 눈이 온다. 보통은 눈이 내려도 금세 녹으니 치우나 마나이지만, 때로 며칠 동안 녹지 않고 쌓여서 애를 먹이기도 한다. 아이들은 신난다. 어쩌다 앞까지 내려온 사슴 가족이 다리를 멈추고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눈을 밀어내고 뾰족하게 내미는 수선화 봉오리가 신기하다. 연약하지만 강인하게 핀다. 사람들도 순한 듯하지만 개성 있다.

 

미국에서 가장 우울한 도시가 시애틀이라는 것도 때문 아닐까. 겨울엔 찌푸린 날씨에다 회색이다. 스타벅스 커피점 드라이브 스루에는 항상 차가 밀린다. 따뜻한 차를 마셔야 미음이 누그러지는 것처럼. 사람들이 호탕하게 웃지 않는 것도 기후 탓일지 모른다. 그래도 어디서나 만날 있는 상록수가 마음을 푸르게 한다.

 

[2020년 12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