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북동

 

                                                                                                        신순희

 

소녀의 오빠가 시애틀에 산다고 한다. 스무살 넘어 소녀를 가르치느라고 집을 드나들면서 어쩌다 마주친 소녀의 오빠가 여기 살고 있다니. 사촌을 통해 알게된 소식은 뜻밖이었다. 한번 만나보겠느냐는 말은 더욱 그랬다. 그럴 까닭이 없는데 아마도 궁금증때문인가 보다. 서로 모습조차 기억 못할텐데 그래도 세월이 흐른 지금 얼마나 변했을까, 아직도 부자일까,하는 호기심이 잠시 일었다. 그보다는 내가 가르쳤던 귀여운 소녀를 보고 싶다. 지금은 어떤 모습의 중년여인이 되었을까.

 

까맣게 잊었던 지난날 성북동 집이 다시금 떠오른다. 동갑내기 사촌의 소개로 성북동 부촌에 아르바이트를 다닌 적이 있다. 사촌의 친구 여동생을 가르치는 일이었다. 집을 가려면 유명한 요정 대원각 있는 비탈길을 올랐다. 오르막길 옆에는 부촌에 어울리지 않게 허름한 판자집이 몇채 있었다. 언덕 위쪽 대저택들은 위풍당당한 지붕을 이고 있고 비탈 아래 후미진 곳에 있는 판자집들은 그늘져 있었다.

 

초여름 오후, 대저택이 드문드문 있는 고개를 오르면 마냥 땀이 났다. 간혹 짙은 선팅을 검은 세단이 나를 앞질렀다. 마을버스가 없던 시절, 길만 왕래하는 작은 승합차가 있지만 , 뜸하게 다녀서 시간을 맞추지 못하면 걸어가야 했다. 혼자서 길을 오르다 보면 주변 경관에 위축되었다. 집은 어느나라 대사의 집이고 집은 누가 살고 길에서 걷는 사람을 적이 없다.

 

내가 가는 집은 대문부터 위압적이었다. 교문처럼 커다란 창살 넘어 안이 훤히 들여다 보이는데, 내가 갈때면 항상 운전기사가 문을 열어주었다. 현관문을 들어서면 집안일을 하는 아주머니가 나를 반겼다. 사람앞에서는 만만한데 대문앞에서는 위축되었는지, 나는 그저 조용히 들락거렸다.

 

소녀가 학년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어리광 부리는 귀여운 철부지였다. 소녀의 아버지는 정치 브로커라고 들었는데  무슨 일을 하는 건지는 지금도 모르겠다. 소녀의 오빠는 어쩐지 마주치면 부담스러웠다. 이층 소녀의 방에서 공부를 마치고 내려오다 두번 마주치고는 했다. 나중에 사촌이 내게 친구를 소개해줄까 했지만, 사귀기엔 너무 부잣집 아들이었다.

 

얼마동안 가르쳤는지 모르겠다. 일을 그만 두기 전날, 나는 한복차림의 인형을 소녀에게 선물했다. 내가 선물을 때문인지 아닌지, 소녀의 어머니는 나에게 커피잔 세트를 상자나 주었다. 답례를 바라지 않았는데 부피가 너무 선물을 받고 난감했다. 무거운 선물을 나를 운전기사가 언덕 아래까지 차로 데려다 주었다. 그때 처음으로 근엄한 캐딜락을 보았다. 70년대,  자가용이 드물던 시절에 운전기사 두고 캐딜락을 집은 정말 부자였다. 그때 나는 집을 드나들며 길을 걸으며 허전했다.

 

성북동 부잣집의 이야기를 이제야 시애틀에서 듣게 되다니. 집이 서울 번화가에 있는 유명한 대형 빌딩을 인수하고 보험에 들기도 전에 불이 났다는 것이다. 인생이란 이상하다. 성북동 언덕에, 밀실정치로 유명했던 요정 대원각 지금은 법정스님이 머물다 곳으로 알려진 길상사 변했다.

 

성북동 집이 어떻게 되었는지, 소녀가 어떻게 되었는지, 나는 모른다. 다만 힘겹게 오르던 언덕 너머 커다란 , 창살안을 들여다보며 초인종을 누르던 기억만 남아있다.

 

[2011 11 초고 / 2021 2 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