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끝마을에서 만난 인디언
신순희
니아베이에 도착했다. 인디언 보호구역이다. 여기서 도로 끝까지 차로 달리면 케이프 플레터리가 나온다. 워싱턴주 올림픽 반도 북서쪽 끝에 있는 땅끝마을. 더는 앞으로 나갈 수 없는 땅끝에 서서 바다를 바라보면 무슨 생각이 들까.
흙먼지 풀풀 날리는 비포장도로를 지나 케이프 플레터리에 다다르니 주차장이 자갈밭이다. 관광지라 하기엔 무척 허술하다. 여름 한나절, 주차장 옆에 서 있는 간이 화장실 ‘허니 버킷’이 뜨거운 열기를 뿜어낸다. 일부러 개발하지 않은 건 아닐 텐데, 그렇다고 사람들 편리 하라고 개발할 것 같지 않다. 자연 본래의 모습이 제일 자연스럽긴 하다.
바다 건너편이 바로 캐나다이다. 여기가 미국 북서쪽 끝이라는 게 실감 난다. 그 옛날 인디언들이 온전히 주인일 때는 이곳이 어땠을까? 바다에는 고래와 물개가 갈매기와 노닐고 숲에는 사슴과 나무 열매가 그득한 천혜의 땅에서, 인디언들은 그들의 방식대로 자유롭게 살아가며 평화를 누렸을 것이다.
먼 옛날, 수천 년 전부터 니아베이에서 살아온 인디언 마카족은 조상 대대로 카누를 타고 작살로 고래사냥을 하며 살았다. 지금도 이어져오는 마카족의 전통적인 고래사냥 방식이 잔인하다고 동물애호가들은 극렬히 반대한다. 미 대륙 여기저기 퍼져 살던 인디언들의 영토를 침략한 자들이 행한 일을 기억하는가. 문득, 내가 예전에 봤던 영화 ‘솔저 블루’가 생각난다. 실제 있었던 인디언 학살 사건을 다룬 영화다.
그토록 오래전부터 니아베이에서 살아온 인디언들을 벼랑 끝으로 몰아낸 미국 정부는 다시 그곳에 인디언 보호구역을 지정해 두었다. 보호구역에 거주하는 인디언들은 삶의 의욕을 상실했을지 모른다. 말 타고 드넓은 광야를 달리던 용맹스러운 인디언들이 총 앞에 무력하게 무릎 꿇었을 것을 생각하면 연민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아메리카 대륙의 원주민은 어딘가 아시안을 닮았다. 때때로 그들과 내가 행여 같은 조상을 가진 건 아닐까, 의구심이 들 때가 있다.
어떤 백인은 아시안을 보고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고 외치지만 백인도 원주민은 아니다. 속으로 나는 말한다. ‘아메리칸 인디언 빼고 모두 이민자다. 그러니 너희도 나가라.’ 하지만 백인이 무력으로 이 땅을 정복했으니 이긴 자가 모두 갖는다는 논리 앞에 할 말이 없다.
케이프 플레터리에서 돌아오는 길에 ‘훈제 연어’라는 작은 골판지 팻말을 보고 차를 돌렸다. 간판도 없는 허름한 가게에 들어서니 카운터 앞에 가격표가 붙은 훈제 연어가 있고 빈 바구니가 옆에 놓여있었다. 아무도 없는 가게에서 잠시 머뭇거리는데 안쪽에서 한 남자가 나왔다.
이 남자. 니아베이에서 만난 이 인디언 남자를 잊을 수 없다. 손님을 무시하는 듯한 태도가 나를 당황하게 했다. ‘나는 장사꾼이 아니다. 당신이 훈제 연어가 필요해서 왔으니 가져가라. 훈제한 연어의 댓가는 여기 바구니에 넣어라. 나는 이 땅의 주인이고 당신은 단지 방문자이다.’라는 무언無言의 말을 하는 것 같았다. 굳은 표정의 인디언 남자는 나를 한번 쳐다보고는 아무런 말 없이 안쪽으로 쑥 들어가 버렸다.
혼자서 돈을 바구니에 넣고 가게를 나오면서 뭔가 이상했다. 저 사람이 화가 났나 생각해 보지만 잘 모르겠다. 그 마음을 헤아려 보다가, 그렇구나 이건 마카인디언의 마지막 자존심이구나, 내 맘대로 해석하고 말았다.
인디언 가게에서 산 훈제 연어는 어쩐지 지저분하고 비위생적으로 보였다. 그렇다고 값이 싸지도 않았다. 제대로 훈제된 게 맞나, 잘못 먹고 배탈이라도 나면 어쩌나, 공연히 샀나, 내 맘은 자꾸 트집을 잡았다. 한편으로는 인디언 전통 방식으로 훈제한 연어니까 맛있겠지, 얼마나 오래된 전통인데 엉터리는 아닐 거야, 생각을 바꾸기도 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입이 궁금하여 옆좌석에 둔 훈제 연어 한 조각을 입에 넣었다. 맛이 일품이다. 일반 마켓에서 파는 것과 다르다. 조금 더 살 걸 그랬다. 이 먼 곳을 언제 또다시 와 보겠나. 겉모습으로 판단하는 게 아닌데 정리정돈 잘 된 마켓만 보다가 인디언 가게를 보고 맛을 지레짐작하다니, 내가 얼마나 편협한 생각을 했는지 무안했다.
자연을 경외하는 마카족 사람들. 그들의 터전인 니아베이라는 지명은 마카인디언 추장 이름에서 유래되었다. 시애틀이란 지명 역시 인디언 추장의 이름이다. 시애틀 추장은 부족어로 말했다. “땅이 우리의 소유가 아니라 우리가 땅의 일부이다. 어떻게 공기를 돈으로 사고팔 수 있는가?” 라고. 마카인디언들이 영어와 함께 아직도 그들의 고유 언어를 사용한다니 다행이다. 언어를 잃으면 모든 걸 잃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비록 영토를 잃었지만 그들의 정신까지 빼앗긴 건 아니다.
마카인디언들은 더러는 백인 문화에 동화되고 더러는 혈통이 섞이면서도 그들의 전통과 문화를 계승하고 있다. 고래를 사냥하고 물고기를 조각하고 연어를 훈제하며 자연에 사는 아메리칸 인디언, 원주민.
그날 만난 인디언 남자는 이제는 관광지로 전락한 삶의 터전에서 결코 웃지 않았다.
-2021년 대표에세이문학회 <모든 이의 아침>-
자연 속에서 자연과 함께 살아가며 그것을 보전하려 노력하는 인디언들이 글 속에서 보입니다. 나도 그들의 체취를 느끼려 끝없이 달려 땅끝마을 그곳에 가 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