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겊 인형과 전통 잣
신순희
어머니는 노년이 되면서 아이같이 귀여운 인형을 좋아하셨다. 미국 이민 올 때 나는 짐 속에 헝겊 인형 하나를 챙겼다. 어머니가 남대문 시장에서 사서 딸들에게 하나씩 나눠주신 인형이다. 내 건 동글납작한 한국인 얼굴에 금발 모습이다. 태엽을 틀면 미국 팝송이 나오는 국적 불명의 인형이다. 세월이 흘러 더러워져도 빨지 못하고 먼지만 털어내니 옷은 꾀죄죄하고 미소짓던 입은 아예 없어졌다. 어쩐지 미국도 한국도 아닌 내 처지 같아 가끔 쳐다보면 여전히 입이 없다. 우리 자매들은 어머니가 삼십 년도 더 전에 주신 이 인형들의 안부를 국제전화하다 묻고는 웃는다.
어머니는 심란할 때 바느질을 하셨다. 큼직한 헝겊을 이은 조각보도 만들었지만, 나는 잣을 짓는 어머니 모습이 더 생생하다. 어머닌 반짇고리에 한복 옷감 자투리를 모아두었다. 그 색색의 천을 작게 잘라 손가락 한마디만 하게 세모로 접어서 홈질로 둥글게 이었다. 그 하나하나의 모양이 잣나무의 잣같이 생겼다고 해서 ‘잣’이라고 부르는 한국 전통 규방 공예이다. 어디서도 나는 이런 모양의 잣 공예를 본 적이 없다. 비슷한 것은 있으나 어머니의 것은 독특하다. 색이 바랜듯하여 한번 물에 빠는 바람에 몇 개의 잣 모양은 터지고 실밥이 삐져나왔다. 우리 자매들은 어머니에게 각자 받은 잣을 비교해가며 어머니를 떠올린다. 잡념을 떨치고 종일 앉아서 손톱만 하게 접은 천을 일일이 손으로 바느질해 잇고 또 잇던 어머니. 이제는 영영 떠나셨으나 우리 자매들은 어머니가 나눠주신 똑같은 선물을 고이 간직하며 어머니를 그린다.
[2021년 5월]
[5월 23일 재미수필가협회 월례회 발표글과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