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능으로 소풍간다

 

                                                                                            신순희

 

     

지금도 기억한다처음  ()  그리 크던지초등학교  학교에서 능으로 소풍을 가곤 했다소풍날 아침 나는 일찍 잠이 깼고 엄마는 도시락을 준비하느라 부엌에서 바빴다삶은 달걀과 함께 신문지에 곤소금도  주었다나들이가 별로 없던 그때 소풍은 가슴 뛰는 일이었는데 하필 소풍을 능으로 가는지 생각해보지 않았다.
     

서울 근교에는 능이 많아 으레 소풍은 그곳으로 갔다태릉서삼릉서오릉동구릉모두 조선 왕릉이다고등학교 수학여행은 경주의 신라 왕릉으로 갔고결혼해서는 아이들 데리고 가끔 광릉에도 갔다산세 좋은 명당에 누워있는 왕의 권력은 막강해서 후대에도  사람들을 모았다.
     

동구릉에는 중학교 때도 갔다 학년 학생들을 풀어놓기 좋은  트인 잔디가 있는 곳은  왕년의 왕이 누워 있는 능이다역사 공부   있는  교육의 장이라는 명분을 뒤로하고 많은 인원을 수용할  있는 야외가 그곳말고  어디 있을까나는 그저 하루 교실을 떠나 교외로 떠나는 것이 좋았다왕릉을 보고 삶과 죽음에 대한 고찰을  것도 아니다소풍에서 수백   이미 세상을 떠난 왕을 깊이 생각할  없다넓은 들에 나가 바람을 맞으며 친구들과 떠들면 됐다.
     

동구릉으로 소풍 가는 단체 버스를 대절해서  반에  대씩 버스  대가 학교에서 출발했다.   많은 열세  소녀들은 버스가 움직이자마자 배낭에서 주전부리를 꺼내 먹기 시작했다매일 치마만 입던 선생님은 등산 모자에 바지 차림으로 운전사 건너편 자리에 미소를 머금고 앉아계셨다우리는 적당히 풀어진 자세로 학교를 벗어난 해방감에 신났다가을날코스모스 간들거리고 황금 물결 논을 지나 차창 밖으로  내밀어 감나무 가지를 잡을  있는 오솔길을 지나 금잔디가 펼쳐진 능으로 갔다.
     

산처럼 높이 솟은 봉분 앞에  있는 도포를 입은 문인석과 갑옷 입은 무인석은 능을 지키고 있는데우리는  아래 모여 장기자랑을 했다삼삼오오 짝지어 도시락을 먹었다자유시간에  친구들은   언덕에서 아래로 자꾸만 뒹굴었다마치 삼년고개 되는 것처럼 굴렀다그것이 굴레를 벗는 행위라도 되는 듯이.
     

 앞에  있어도 적막하거나 두렵지 않았다보통 사람이 아닌백성을 다스리는 왕이 누워서도 위엄을 보여 주고 있는데저승에서도 드넓은 대지를 소유하고 높은 데서 내려다보고 있는  절대권력자인데그처럼 안전하고 관리 잘되고 소풍 가기 좋은 장소가 어디  있을까더구나 영혼을 위로한다는 양이 돌이 되어   곁에 얌전하게  있으니  왕이 분을   없다양이란 동물은 예사 동물이 아닌 듯하다 앞에서는 모든 것이 용서될까능이 있는 위에서 아래로 마구 구른들 어떠하리.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조선을 건국한 이성계의 아들 방원이 고려의 충신 정몽주를 회유하기 위해 읊었다는 시조 하여가 생각난다예나 지금이나 인간의 처세술은 변함이 없다경기도 구리시한양 동쪽 명당에 아홉 기의 왕릉이 터를 잡고 있는 동구릉피비린내 나는 권력 싸움에 지친 왕과 왕비들의 넋이 한을 품고 누워있을까 끝났다고 평안을 누릴까?
     

그때는 태조 이성계가 그곳에 누워있다는 것을 몰랐다봉분의 사초가 이성계의 고향 함흥에서 가져온 억새라는 것도 몰랐다아니선생님은 얘기해 주었지만 내가 기억  했겠지그런  관심 없었다아주  옛날 고릿적 얘기인  알았다지금 생각해 보니 겨우 몇백  전에 일어난 일인 것을역사는 반복되고 왜곡될 수도 있다는  그땐 몰랐다.
     

호루라기 소리 아득히 들린다선생님이 손짓하며 언덕에서 내려오라 하신다자유는 허용하지만 방종은 안된다소풍도 수업의 연장이니 조신해야 한다앉은 자리 주변을 깨끗이 치워라멀리 흩어지지 말고 모여라그렇다고  앞에서 엄숙하게 예를 갖추라는 말씀은 아니었다.
     

소풍은 끝났다가볍게 덜렁거리는 배낭을 등에 메고 반별로  서서 홍살문을 나오는 걸음은 터덜거렸다오랜만에 바깥바람을 쐬니 피곤하기도 했다대절 버스에 돌아와 앉아서야 아홉 기의 능에 어떤 왕과 왕비가 누워있는지 궁금해졌다권력을 잡기 위해 벌어지는 권모술수는 드라마를 통해 숱하게 보아왔지만 어디까지가 진실인지 가늠하기 어렵다.
     

 몸이 죽고 죽어 일백  고쳐 죽어정몽주가 일편단심을 읊은 시조 단심가 역사 속에 묻히고 조선왕릉 동구릉은 오늘도 사적지 문화유산이 되어 사람들의 발걸음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죽어서도 힘이 있는 왕들은 우리를 부른다조선의 왕들이 여기 누워있다고오백년 역사가 여기 있다고 왕조가 어떻게 세워졌고 어떻게 망했는지를 잊지말라고.
     

어려서는 역사가 만들어진다는 것을 몰랐다역사는 왕릉처럼  자리에 있는  알았다그때들판에  마르고 양지바른 언덕을 꿈꾸던 우리는 능으로 소풍 갔다그리고 아직도 사람들은 그곳으로 소풍을 간다.

 

 

[2015년 7월.  2020년 '재미수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