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는 봄
유숙자
그해 봄은 늦게 찾아와 아직 꽃을 부르지 않고 있었으나 나의 가슴 속에서는 흐드러지게 피고 있었다. 대학입시의 긴장과 초조에서 벗어난 지 이제 서너 달 신입생. 오죽이나 숨 막히고 부담스러웠으면 ‘오! 신천지가 래(來) 하도다. 위력의 시대가 가고 도의의 시대가 오도다.’ 라는 독립선언문의 한 구절을 외치며 자유를 만끽하려 했을까. 결코, 서두르거나 성급하지 않게 여유를 가지고, 내가 해야 할 일, 가야 할 길을 차근차근 준비하고 싶었다.
첫 학기는 명령과 함께 시작되었다. 가을에 있을 신인 무용 콩쿠르를 준비하라는. 그것은 참으로 내키지 않는 일이다. 물론 꼭 도전해야 할 관문이지만 지금은 아니다. 과거와 같이 명령에 따라 움직이게 되는 것이 싫었다. 독창력을 존중해 주며 선택게 하는 자율권을 주장하고 싶었다. 좀 더 자유롭게 높이 날고 싶었다.
명령은 곧 실천이었다. 자신과의 치열한 싸움이 시작되었다. 고독한 싸움은 그칠 줄 모르는 갈등으로 이어졌다. 애초 계획에 없던 일이어서 의욕이 없고 계속되는 맹훈련은 나를 지치게 하여 정교한 기술을 필요로 하는 부분에서 자주 비틀거렸다.
발레는 ‘하루를 쉬면 자신이 알고, 이틀을 쉬면 비평가가 알고, 사흘을 쉬면 관객이 안다.’는 예술이다. 긴장이 풀리면 연습에 임할 수 없다. 빈사의 백조를 추는 내 모습엔 유연성이 없었다.
‘너의 춤에는 영혼이 빠졌어. 정신이 살아 있지 않은 춤은 죽은 춤이야.’
채찍 같은 선생님의 말씀도 머리에서 윙윙거릴 뿐이다. 그런 날들의 반복은 나를 우울하게 했고 축 처진 모습을 보다 못한 친구가 연습이 끝나면 가끔 음악감상실로 데리고 갔다.
김 선생이라는 분이 진행자로 있는 ‘라 세느’는 고전음악 감상실로 잠시 쉬어가기 좋은 장소였다. 첫날 나는 ‘백조의 호수’ 2막을 신청해 들었다. 마법에 걸려 낮에는 백조로, 밤이면 인간의 형상으로 변하는 오데트 공주와 지그프리드 왕자의 슬픈 사랑 이야기. 이 음악은 그 후 내가 그곳을 들를 때마다 듣게 되었다.
김 선생은 가냘픈 체구에 얼굴마저 창백해서 커다란 검정 테 안경이 부담스럽게 보였다. 말을 할 때는 맑은 음성이나 음악을 소개할 때는 젖은 낙엽 밟는 소리같이 차분하고 여운이 있었다. 백조의 호수가 연주되면 시선을 내 쪽으로 돌린 채 꼼짝도 안 하고 방송실에 앉아 있었다. 우연히 시선이 마주치기라도 하면 알 듯 모를 듯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의 미소에 우수와 고요가 배어 있었다. 그런 분위기가 좋았다. 향기같이 취하게 하는 그의 음성이 듣기 좋았다. 나타나 보이지 않을 만큼 내 가슴이 설레기 시작했다.
‘내가 발레를 하는 걸 어떻게 알았을까?’ 한마디 말도 건네지 않으면서 첫날 신청한 곡을 기억했다가 매번 배려해 주는 마음이 고마웠다. 화장을 엷게 시작한 것도 김 선생과 무관하지 않았다. 차분한 계통의 내 옷들이 어느새 화사한 색조로 바뀌고 있었다. 편하게 앉아 잘도 떠들고 깔깔대던 나는 친구가 느낄 만큼 말없이 음악만 경청하는 요조숙녀로 변해 갔다. 그때부터 자신의 가장 깊은 내면으로 내려가 침체를 끌어 올렸다. 힘들기만 했던 연습에 의욕이 솟았다. 무기력하던 동작에 힘이 실렸다. 저녁이면 나를 기다리는 음악이 있는 탓이다.
어느 날인가 좀 이른 시각에 혼자서 라 세느 에 갔다.
계단을 오르는 중간 지점에서 마주 오는 김 선생을 보았다. 오롯이 이야기를 나눌 절호의 기회가 온 듯싶었다. 뭔가를 기대하며 일부러 천천히 올라갔다. 다리가 조금 후들거렸다. 그때 마주치며 보게 된 얼굴. 그는 예의 그 미소를 띠며 고개만 조금 숙일 뿐 빠른 걸음으로 내 곁을 스쳐 갔다.
‘아니 이럴 수가.’
가슴 속에서 갈대밭 흔드는 바람 소리가 들렸다. 그럼 이제껏 그가 보였던 관심은 무엇이었던가. 뚫어질 듯 쳐다보던 시선, 신청하지 않아도 매번 들려주던 백조의 호수. 실내에서는 로맨틱 무드 드뷔시의 ‘달빛’이 흐르고 있었으나 내 신경은 불협화음의 곡을 연주하고 있었다.
그 후, 어느 날부터인가 김 선생은 라 세느에 나오지 않았다. 다시는 김 선생에 대한 말을 친구도 나도 입에 올리지 않았다. 환히 들여다보이는 방송실에서 낯선 분이 뭔가를 정리하고 있었다.
봄이 뒷모습을 보이기 시작하던 어느 날, 친구와 나는 영화를 보러 갔다. 마고트 폰테인의 ‘백조의 호수’, ‘불새’, ‘수정 오딘’. 모이라 샤라가 출연한 ‘분홍신’ 이후에 들어온 발레 영화다.
영화가 끝나고 나올 무렵 로비에서 우연히 김 선생을 만났다. 무척 반가웠으나 눈인사만 하고 바삐 자리를 떴다. 인파에 섞어 얼마쯤 가고 있는데 옆에서 인기척이 났다. 김 선생이었다. 무표정하던 이전과 달리 그는 활짝 웃고 있었다. 차를 나누며 내 착각이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었나에 부끄러웠다.
그는 일본에서 발레를 공부하고 귀국했다. 가을에 있을 ‘백조의 호수’ 공연을 위해. 마침 그곳에서 진행자로 일하던 친구가 사정이 생겨 몇 주 자리를 비우는 동안 공백을 메꿔주고 있었다. 자신의 공연을 위해 백조의 호수를 들으며 허공에서 춤을 추었다. 내가 그곳에 들렸던 첫 날 ‘백조의 호수’ 2막을 신청했고 그는 이미 그 곡을 들으려 걸어 놓았던 상태였다. 연습이 끝나 저녁 시간에 갔던 나와 손님이 뜸한 틈을 이용해 그 곡을 들으려 했던 그의 시간이 적당히 맞았다. 그것을 나를 위해 들려주는 음악으로 아름다운 상상 속에 빠졌었다. 나의 은밀했던 행동을 그가 눈치챘는지는 알 수 없으나 나는 끝까지 내숭을 떨며 천연덕스럽게 앉아 있었다. 뺨에서는 불이 나건만 우아한 미소를 잃지 않은 체.
그해 봄, 나는 잠깐의 망상에서 깨어나 다시 연습에 전력했다. 처음부터 대학 생활을 낭만의 숲으로 쉽게 생각했기에 박힌 좋은 쐐기였다. 인내로 달성하는 성취, 건강한 정신과 올바른 판단에서만 삶이 살찌워 가는 것임을 깨닫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음을 다행으로 여겼다. 환경을 어떻게 주든지 성실하게 살아가려는 의지와 노력만이 빛나는 결실을 볼 수 있으리라.
그해 나의 봄은 일장춘몽으로 하얗게 사위어 가고 있었다. (19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