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 니드라이(Kol Nidrei)

                                                                                                                                                          유숙자

로마에서 해안을 따라 나폴리를 거쳐 폼페이, 쏘렌토로 가는 동안의 풍광은 보는 사람이 입을 다물게 한다. 세계 3대 미항의 하나라고 불리던 나폴리는 지중해의 시원한 바람과 남국의 강렬한 태양이 어우러지는, 정겹고 아름다운 관광지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한다. 자연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며 창조주의 오묘한 솜씨에 감탄할 뿐이다.

 

여기저기서 끊임없이 이어지는 오 솔레미오, 돌아오라 쏘렌토의 선율이 바다 물결을 타고 넘실거린다. 쏘렌토에 도착했을 때는 한낮의 이글거리던 태양이 서서히 바다에 몸을 눕히고 있었다. 나폴리만의 색조와 친숙한 소음, 오렌지 숲으로 싸인 쏘렌토는 역사와 예술을 자랑하는 평화와 고요의 천국이다.

 

호텔에서 여장을 풀고 저물어가는 회색의 거리로 나왔다. 가장 음식 맛이 일품이고 서비스가 좋다는 식당 지중해로 안내되었다. 식당 안은 바깥세상의 정열적인 분위기와 달리 클래식 음률이 실내를 가득 채웠다. 음악이 있는 레스토랑이다. 낮에는 주로 나폴리 민요 등 정열적인 음악을, 저녁에는 클래식 소품을 들려준다고 한다.

내가 식당 지중해로 오게 된 것이 행운이었다. 한 잔의 와인으로 피로를 풀며 저녁 식사를 거의 마칠 무렵, 꿈결같이 들려 오는 음악. 서두는 낯설었으나 곡의 분위기가 점차 익숙하다. 점점 고조되는 음악. !, 꿈에서도 찾아 헤매던 바로 그 곡이다.

 

몇 년 전, 지금은 이름도 잊어버린 파리의 어느 노천 카페에서 처음 듣고 흥분을 감출 수 없었던 음악. 홀 안에서 흘러나오는 그 장중한 음악은 타는 듯한 저녁놀을 더욱 붉게 물들였다. 사람들이 왁자지껄 떠들어 제대로 감상하기는 어려웠으나 웅장하면서 가슴을 파고드는 선율에 알지 못할 비애가 섞여 있었다. 세월이 가도 이따금 파리의 노천 카페가 생각나고 그럴 때마다 기억이 선명치 않은 음악 탓에 우울했다. 첼로 음악이라는 것과 반복되는 몇 음절뿐인데 그것 만으로 그 음악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오랫동안 많은 첼로곡을 찾아 헤맸으나 매번 허사였다. 이 음악을 우연히 쏘렌토의 식당 지중해에서 듣게 된 것이다. 작곡자와 곡명을 알게 된 콜 니드라이는 이번 여행에서 주운 가장 큰 보물이다.

 

콜 니드라이신의 날을 의미한다. 속죄의 날에 부르는 특별한 성가를 관현악 반주의 첼로 독주곡으로 변주한 일종의 환상곡이다.

신이여 추락하여 힘들 때마다, 고통으로 내가 쓰러질 때까지 절망하게 하소서. 그리하여 현명함이 없는 인간의 어리석음, 집착에서 오는 고통에서 해방되어 자유로워지도록 지혜를 주소서.”

영혼 깊숙이 내재해 있는 근원적 종교감정을 일깨워 쓸쓸함이 번져온다. 유대인의 정서가 내면에 드리워져 있는 서정적이고 낭만적인 곡이다. 전반부는 느린 단조의 종교적 색채가 짙은 슬픈 가락으로 시작된다. 첼로의 낮고 구성진 단조의 선율이 유대인의 숙명적 방황에서 체념으로 속죄의 마음으로 전환한다. 후반부는 찬미적 장조로 접어든다. 오케스트라가 하프의 그윽한 아르페치오 반주로, 박자에 따라 일정한 패턴으로 밝고 강하게 연주한다. 수많은 관현악 속에서 첼로의 격정적인 선율을 끌어내며 차츰 승화되는 적요감과 함께 끝난다. 신에게 귀의하라는 암시와 함께.

 

부르흐는 유대인이다. 시너고그에서 속죄의 날 저녁에 부르던 아주 오래되고 널리 알려진 음악 중 하나인 콜 니드라이를 관현악과 하프와 함께하는 첼로를 위한 아다지오의 새로운 형태로 다시 창조해 내었다. 첼로는 피아노나 바이올린보다 저음이기에 음색이나 표현면에서 오케스트라 속에 묻히기 쉽다. 브루흐는 이 곡에서 흐느끼는 듯한 낮은 선율이 두드러지도록 오케스트라와 조화를 절묘하게 나타내고 있다.

 

콜 니드라이를 가장 이해하고 사랑하여 뛰어난 연주를 한 사람은 영원한 첼로의 딸 재클린 뒤 프레” 라고 말하고 싶다. 17세에 엘가의 첼로 협주곡으로 정상에 올라 10여 년 동안 연주 생활을 했고 14년간 병마와 싸우다가 42년의 짧은 생애를 마쳤다. 실제에 이르러 끝난 것은 그의 육체적인 삶뿐, 그가 완성한 EMI의 모든 음반에서 여전히 살아있다.

첼로가 주는 묵직한 쓸쓸함을 제대로 일구어낸 연주자. 영혼을 울리는 깊고 그윽한 음색에 뜨거운 정열을 담고 온 힘을 다해 연주하는 그를 사람들은 정열의 첼리스트라고 말한다. 또한, 우아한 영국의 장미라고 불리는 애칭은 장미의 화려함이 아니라 장미의 정열과 기품에 비교한 것이리라.

 

그는 다중경화증이라는 희귀한 병으로 인생의 절정기 때 더는 첼로를 할 수 없었던 비운의 첼리스트이다. 병원에서 임종의 순간까지 반복해서 들었던 음악이 콜 니드라이였다. 아무것도 스스로는 할 수 없고 찾아주는 사람 없는 외로운 병상에서 자신이 연주한 이 곡을 들으며 무엇을 생각했을까. 외로운 사람에게 위안을 주고 절망한 혼에 빛을 던져주는 연주를 했건만, 그는 어둠과 고통과 불행 속에서 그렇게 쓸쓸하게 갔다. 그의 연주를 들을 때마다 그가 겪어야 했던 인간적 고뇌가 불행의 밀도가 새삼 가슴에 와 닿아 눈물이 나곤 한다.

 

우리는 좋은 연주를 관람하면 열광하며 감동할 때가 많으나 작곡가나 연주가의 각고의 노력까지는 생각하지 않는다. 음악이 우리에게 불러일으켰던 감동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았으나 연주를 들으며 환희와 비애, 감동만을 내 것으로 하여 즐겼다. 밥은 굶어도 음악 없이는-.”라고 말하며.

음악은 평소에 꿈꿀 수 없었던 것을 꿈꾸게 하고 상상할 수 없었던 것을 이해케 한다. 음악은 영적인 힘을 지닌 가장 아름다운 마음의 대화이다. 외로울 때, 우울할 때, 위안과 용기를 얻게 하고 우리의 영혼을 비옥하게 만들어 주는 순수한 아름다움이다.

 

콜 니드라이. 슬픔으로 시작하는 선율이다. 사람이면 누구나 짊어지고 가야 할 비애를, 노래하듯 간절하고 구슬프게 연주한 첼로의 선율이다완벽한 테크닉. 우아하면서도 격렬하고, 낭만의 심상이 넘쳐 흐르는가 하면 놀랄 만큼 고요하게 활을 그어대던 자크린 뒤 프레. 그가 연주한 “콜 니드라이”를 오늘(1019) 추도의 마음을 담아 헌정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