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번트리의 전설

유숙자

아침에 마시는 커피에 하루가 담겨 있다. 신선한 향기를 날리며 목젖을 뜨겁게 적시는 한 모금 커피는 필터에서 걸러진 정수처럼 머리를 맑힌다. 커피를 들고 버릇처럼 창가로 간다. 정지가 잘 된 장미 줄기에서 빨간 새순이 쭉쭉 뻗어 오른다시야 가득 펼쳐진 하늘이 보기 좋다. 완만한 곡선의 비행운이 한가롭다. 이 시간이 좋다. 고요가 살포시 내려앉은 내밀한 공간의 주인이 되어 조용히 흐르는 음악을 들으며 사색할 수 있는 분위기를 사랑한다. 꽃잎이 벙그는 소리, 지나가는 바람의 속삭임이 들리는 이 아침의 은총에 감사한다. 이들이 내 삶에 향기와 윤기를 더해준다.

 

커피를 처음 맛본 것은 여중 때였다. 어머니가 이따금 즐기셨는데 어쩌다 한두 모금 실례할 때면 쓴맛에 진저리가 처 질정도였으나 향기는 오래 남아 있었다. 맛을 느끼기 이전에 풍겨오는 표현할 길 없이 묘한 향기에는 쓴맛을 익숙하게 만드는 어떤 끌림이 있었다. 나는 커피의 맛보다 향에 취하기를 더 즐겼다. 요즈음처럼 종류가 다양하지도 않았고 인스턴트커피였는데 그 향기가 종일토록 몸속에 남아 있는 것 같아 기분이 상쾌했다.

많은 세월을 지나며 다양한 종류의 커피를 맛보았지만 내가 가장 선호하는 커피는 고다이바이다. 맛과 향기가 특이하여 커피를 내릴 때면 집안 전체가 커피 향기에 잠긴다. 마치 사랑의 묘약처럼 깊이 빠져들게 하는 뭔가가 있다.

 

고다이바 커피를 처음 대했을 때 이제까지 봐왔던 어느 브랜드의 커피보다 향기롭고 감미로워 향기가 몸에 배어드는 듯한 환각조차 일으켰다. 용기도 고급스러웠다. 황금색 두꺼운 알루미늄 포일로 만든 용기 앞면에 벌거벗은 여인의 그림이 새겨 있는 것도 특이했다. 고개를 갸울인 채 금발을 길게 늘이고 말 위에 앉아 있는 로고. 유심히 살펴야 눈에 들어오는 상단의 작은 그림이 '레이디 고다이바'이다. 첫 잔을 내릴 때 남편이 고다이바의 전설을 얘기해 주었다. 커피의 향보다 더 향기로운 한 영혼이 찻잔에 머문다.

 

코번트리(Coventry)트리니티 대성당 앞에는 근엄한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는 나체의 여인이 말을 타고 있는 동상이 있다. 그 동상이 11세기 영국 코번트리의 영주였던 백작 레오프릭 3세의 부인 고다이바(Godiva) 이다. 레오프릭 백작은 당대의 가혹한 탐관오리로 가뭄이 심하여 흉년이 계속되는데 백성에게 과도하게 세금을 징수해 원성이 자자했다. 고다이바는 그런 남편의 처사를 부당하게 여겨 세금을 감면해 줄 것을 호소했으나 백작은 응하지 않았다. 아내의 끈질긴 요청이 계속되자 백작은 엉뚱한 제안을 했다.

'만일 당신이 옷을 벗고 이 성을 한바퀴 돈다면 나에게 부탁한 청을 들어 주겠소.'라고.

레이디 고다이바에게는 감당하기 어려운 제안이었으나 백성을 위해 결행하기로 했다. 알몸으로 백마를 타고 금발의 긴 머리로 부끄러운 곳을 가린 다음 성을 돌았다. 거사를 치르던 날, 주민은 부인의 나신을 보지 말자고 결의하여 창문을 모두 닫고 커튼을 내리어 엄숙하게 부인의 순례를 도왔다. 이때 Tom이라는 사람이 창틈으로 몰래 훔쳐보다가 눈이 멀었다. 영국에서는 남의 사생활을 몰래 훔쳐보는 사람을 Peeping Tom(엿보는 톰)이라 했는데 이 말의 어원이 이때부터 생긴 것이다.

 

70세가 넘은 레오프릭 영주는 백성을 사랑하는 아내의 진심 어린 마음에 감동하여 세금을 내려주었다. 그때 고다이바 부인은 16세였다. 어린 나이임에도 코번트리 백성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에서 무언의 항거인 나신의 순례를 감행했다. 그녀의 행동은 많은 사람의 가슴에 감동이라는 물결을 흐르게 했고 꺼지지 않는 사랑의 불씨 하나를 심어 놓았다.

이 소문을 바다를 건너 벨기에의 초콜릿 장인 조셉 드랍이 알게 되었다. 그의 부인은 이 미담을 적극적으로 살려 숭고한 고다이바의 뜻을 받들기로 했다. 그 유명한 초콜릿을 탄생시킨 유래의 교훈적 상징이다.

고다이바 부인의 아름다운 마음과 희생정신을 기리는 고다이바 행진은 1678년부터 코번트리 박람회의 정기 행사가 되어 수년마다 치러지고 있다. 18세기 이후 코번트리 시는 레이디 고다이바의 전설을 상품화했고 말을 탄 여인의 형상을 마을의 로고로 삼았다. “공중의 행복을 위하여(Pro Fonopopul Ico)”라는 문구가 조각되어 있음도 물론이다.

 

영국의 지배 계급은 역사적으로 <귀족은 더 많은 책임을 진다>는 사회적 소명의식이 철두철미하다. 빈자나 병자를 위한 자선 사업을 적극 펼치고 전시에는 앞장서서 최전선에 나가 목숨 바치는 희생을 감수해 왔는데 그런 귀족 정신이 고다이바의 핏속에 살아 있었다. 16세의 어린 부인으로서는 순교나 다름없는 나신의 순례. 그것이 미담에 그치지 않고 지금까지 살아 있음은 근원적인 목마름을 풀어 주려 했던 한 여인의 드높은 정신을 귀하게 여긴 탓이다백성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의 본보기를 보여 준 코번트리의 영원한 전설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그림으로 볼 수 있는 고다이바 부인은 영국의 고전주의 화가 존 콜리어(John Collier)에 의해 그려진 레이디 고다이바<Lady Godiva 1898. Courtesy of the Herbert Art Gallery & Museum Coventry)의 초상이 대표적이다.

 

살아가며 많은 미담을 접한다. 감동한다. 남에게 별로 도움을 주지 못했던 나는 무엇을 하며 세월을 보냈을까. 하는 회의가 앞선다. 잠시 머물다 가는 세상에서 나도 누군가에게 힘이 되고, 위로가 되고, 기쁨이 되었으면 하고 바라본다. 사랑이 샘처럼 넘쳐 이웃에게까지 나눌 수 있는 여유로운 마음의 소유자가 되기를 소망한다. 내 삶의 하루하루가 성실과 믿음으로 이어지기를 기원한다.

고다이바 향기로 가득한 거실에 5월의 햇살이 은총으로 부어지고 있다. (2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