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병사
유숙자
휴전 협정을 맺은 지 10여 년이 지난 어느 날, 서울의 기자단과 외신 기자들이 휴전선 비무장지대 인근을 돌아보게 되었다. 격전지였던 그곳은 이름 모를 꽃과 새들, 나들이 나왔다가 인기척에 놀라 쏜살같이 달아나는 다람쥐, 구름이 잠시 머물다 가는 평화롭기 그지없는 곳으로 변해 있었다. 묵묵히 흐르는 한탄강만이 역사의 상처와 민족상잔의 비극을 알고 있을 뿐이다.
그때 근처를 둘러보던 한 기자는 총알이 관통한 철모가 엎어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 기자는 무심히 철모를 집어 들었다. 순간, 철모 속에 누렇게 바랜 종이쪽지가 들어 있는 것이 발견되었다. 기자단은 너무나 뜻밖의 일이라 놀람을 금치 못했다. 편지였다. 전쟁터에 나가 있는 아들에게 보낸 어머니의 애타는 사연이었다. 다행히 종이가 접혀 있어 흐릿하나마 글씨체가 손상되지 않아 쉽게 읽을 수 있었다. 그 편지가 어떻게 10여 년 풍상도 아랑곳없이 세월을 삼키고 있었는지 모르겠으나 습기 때문에 면이 울퉁불퉁한 것 이외에는 마치 보관이라도 한 것처럼 곱게 간직되어 있었다. 어머니의 애절한 편지는 읽는 사람에게 눈시울이 붉어지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그때 신문에 실렸던 전문을 더듬어 본다.
마마의 달링 로버트야
소식 들은 지 오래되어 초조한 마음으로 네게 편지를 쓴다.
달이 밝고 전장이 너무 고요해 불안하다는 내용의 편지를 받은 지 7주가 지났구나.
어젯밤에는 네가 집안으로 들어서는 꿈을 꾸고 소스라쳐 놀랐어.
마음이 너무 허전하여 문을 열고 마당으로 나왔지. 높게 떠 있는 달이 무척 밝더구나.
한동안 마당을 서성거리다 들어 왔어.
이즈음 나의 생활은 너를 위한 기도 속에 잠들고 다시 기도하기 위해 깨어난다.
많은 사람이 너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는 것을 늘 생각하거라.
마마의 달링 로버트야
너는 조국도 아닌 낯선 나라 코리아에서 평화를 위해 싸우는 전사다.
하나님께서 너를 통해 의를 행하려 하시는 일에 온 힘을 다해야 한다.
두려워하지 마라. 네게 담대한 힘 주실 하나님을 굳게 의지하거라.
사랑하는 나의 아들 로버트야. 네가 엄마 품으로 돌아올 그 날을 손꼽아 기다린다.
하나님의 은총이 늘 너와 함께 하시리라 믿는다.
너를 사랑하는 엄마.
오래되어 상세한 기억은 아니더라도 이런 내용의 편지였다. 그나마 이만큼이라도 기억할 수 있었던 것은 그 편지를 오랫동안 간직하며 가슴 아파했기 때문이다. 유엔군으로 타국에 와서 꽃다운 나이에 스러져간 어린 넋이기에 그 기사를 읽은 사람들은 숙연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어머니의 애절한 모성과 절제된 감정이,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지하며 의연한 모습으로 아들에게 용기를 주는 마음이, 진한 감동과 아픔으로 와 닿았던 탓이다. 그 후 기자들이 확인해 본 결과 그는 21살 꽃다운 나이에 전사한 미국 병사였다.
전쟁이 끝난 지 50여 년이 지났다.
많은 피를 흘리고 떠난 유엔 병사들은 그들의 남편이, 아들이, 형이 죽어간 나라에서 점점 잊히고 있다. 계절이 지나면 스러지는 잡초처럼 시간은 우리 기억에서 그들을 잊게 한 것이다. 우리의 절대 우방인 미국이 지금은 양키 고 홈 소리를 듣는다. 혹자는 미국이 참전한 것이 그들의 국익과도 무관하지 않다고 어느 한 면만을 꼬집는 사람들도 있다. 미국을 비롯한 유엔군들의 희생을 바탕으로 오늘의 한국이 존재할 수 있게 된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6.25전쟁 당시에 참전했다는 종군 언론인 ‘잭 로렌스’는 종전 50년 후 한국 사람들에게 이런 대접을 받기 위해서 우리의 젊은이들이 그곳에서 죽어야 했는지 참으로 개탄이 앞선다 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오늘에 이르렀다.
한 번뿐인 인생. 하나밖에 없는 목숨. 이역만리 타국에 와서 ‘세계 평화를 위하여’라는 구호 아래 죽어간 병사들. 태양이 사라진 후에야 비로소 빛을 내는 별과 같이 포화 속에 스러져간 수많은 병사가 있었기에 평화의 꽃이 피었고 단절된 조국이지만 이만큼의 안정이, 성장이 이루어졌다.
그 감사를 잊지 못하기에 어느 능선에서 어느 골짜기에서 외롭게 죽어갔을지 모르는 어린 병사를 가슴 속에 묻어 두고 있다. 나는. (2004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