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맑고 하늘이 높아 빨래를 해 널었다
바쁠 일이 없어 찔레꽃 냄새를 맡으며 걸었다
텃밭 상추를 뜯어 노모가 싸준 된장에 싸 먹었다
구절초밭 풀을 매다가 오동나무 아래 들어 쉬었다
종연이양반이 염소에게 먹일 풀을 베어가고 있었다
사람은 뒷모습이 아름다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박성우(1971∼ )



일을 열심히 했다. 얼마나 열심히 했냐면 허리 관절이 뻐근해져도 자세를 고쳐 잡지 않았고 어깨가 떨어져 나갈 것 같아도 타자를 쳤다. 화장실에 가고 싶지만 참았고 식사는 10분을 넘기지 않았다. 이 기세로 일해야 다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특별한 일은 아니다. 이게 바로 현대인의 흔한 일상이다.

 

퇴근길에는 버스를 기다리면서 핸드폰을 뒤적거렸다. 좋아하는 시를 보관하는 폴더가 따로 있다. 수백 개의 시 사이를 뒤적거리다가 이 시에서 멈칫했다. 버스가 도착했을 때는 울고 싶은 심정이 됐다. 다 이 시 때문이다. 사실 나는 이 시의 풍경에서 살고 싶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가고 싶은 곳을 가기 위해 가고 싶은 곳을 가지 못한다. 살고 싶은 삶을 살고 싶어서 살고 싶은 삶을 살지 못한다. 이것이 바로 현대인의 흔한 아이러니다.

마지막 행에 ‘사람은 뒷모습이 아름다워야 한다’는 말이 나온다. 여기서 아름다운 뒷모습은 아마 ‘종연이양반’의 것이리라. 그렇지만 우리도 시의 한 조각 정도는 취할 수 있지 않을까. 이 도시에서 찔레꽃은 못 가져도 조금은 아름다운 뒷모습을 가진 인간이 되고 싶다.

나민애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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