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효로 처마끝 양철 물고기를 건드는 눈송이 몇 점,
돌아보니 등편 규봉암으로 자욱하게 몰려가는 눈보라

눈보라는 한 사람을 단 한 사람으로만 있게 하고
눈발을 인 히말라야 소나무숲을 상봉으로 데려가버린다

눈보라여, 오류 없이 깨달음 없듯, 지나온 길을
뒤돌아보는 사람은 후회하고 있는 사람이다

 

무등산 전경을 뿌옇게 좀먹는 저녁 눈보라여,

나는 벌받으러 이 산에 들어왔다

(중략)

마침내 모든 길을 끊는 눈보라, 저녁 눈보라,
다시 처음부터 걸어오라, 말한다

―황지우(1952∼)



함박눈은 아름답지만 눈보라는 매섭다. 눈보라는 바람과 함께 몰아치고, 사람을 내몰며 괴롭힌다. 그것을 시인은 이렇게 표현한다. 눈보라는 한 사람을 단 한 사람으로만 있게 한다고. 눈보라 속에 갇혀버리면 사방이 보이지 않아 세상에서 단절된 듯 홀로 있게 된다는 말이다. 그런데 우리가 눈보라를 직접 경험해봐야 이 심정을 알게 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때로, 홀로 있지 않아도 홀로 있는 듯, 갇혀 있지 않아도 갇혀 있는 듯 느낄 때가 있다. 눈보라가 매섭게 몰아친다는 말을 우리는 눈보라 없이도 이해할 수 있다.

그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후려치는 눈보라가 괴로울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가슴이 답답할 때 이 시를 차근차근 읽어본다. 그는 뒤돌아보지 말라고 말한다. 후회의 마음으로 뒤를 돌아봐도 길은 보이지 않는다. 그 대신 앞으로 걸어가라고 말한다. 지금의 고난이 시작점인 듯, 처음부터 다시 걸으라고 말한다.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갈 때마다 눈보라가 뺨을 때리고 발길을 붙잡을 것이다. 세상살이가 언제는 쉬웠나. 그렇지만 고난을 이기면 깨달음이 열릴지 모른다. 눈보라가 모든 길을 끊어도 걸으라는 시인의 말이 힘이 되는 겨울이다.

 

나민애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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