룩셈부르크 여행 / 이정호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발코니 꼬흐니슈 가 (Le Chemin de la Corniche)를 보고 다름 광장 (Place d'Armes)으로 갔다. 뻥 뚫린 광장 주위에 식당들이 있었다. 햄버거, 해산물, 파스타 등 다양한 음식들이 있었다. 광장 가운데는 기마병 동상이 세워져 있었다. 광장 구석으로 가 좁은 골목으로 지나가니 또 다른 광장이 나타났다. 그곳에서는 많은 상인들이 광장주위에서 물건을 팔고 있었다. 마치 미국의 야외 스왑밋 같았다. 과일을 포함한 많은 종류의 물건들, 오래된 물건들, 특이한 물건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무슨 음식을 먹을까 돌아다녔다. 모든 식당들의 넓은 패티오에는 사람들로 꽉 차 있었다. 해산물로 진열된 식당입구의 메뉴를 보니 먹음직스럽게 보였다. 음식값이 싸지 않았다. 어떤 비싼 메뉴는 150유로가 넘었다.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1층은 꽉 차서 2층으로 올라갔다. 옆에 있는 손님의 메뉴가 나온 것을 보니 특이하게 보였다. 다양한 해산물이 길게 올려져 있는 쟁반위에 야채와 함께 푸짐하게 나왔다. 바로 그것이 150유로가 넘는 메뉴 같았다. 이곳은 세계에서 가장 잘 사는 나라이니 음식값도 비싸고 사람들도 주저 없이 시키는 것 같았다. 나도 그 메뉴를 시키고 싶어 그것을 시키면 어떨까 했는데 너무 양이 많다고 아내는 다른 것을 시키자고 했다. 약간은 아쉬웠다.
점심을 먹고 보크 포대 (Bock Casemates) 를 갔다. 이곳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이 되어 있다고 한다. 우버를 타고 그곳을 가니 바로 아침에 갔던 꼬흐니슈 가 옆에 있었다. 50m 정도 떨어져 있는 멀지 않은 거리였다. 처음에 알았더라면 구경을 하고 갔을 것이다. 이곳은 입장료를 받았다. 오래전에 전쟁에 대비해서 산의 요새에 동굴을 길게 뚫었다. 그 안에 대포도 놓여 있었다. 대포는 동굴 밖으로 향하여 적들을 향하여 쏠 수 있었다. 동굴 안의 길은 마치 미로를 걷는 것처럼 이리저리 형성되어 있었다. 나폴레옹 혁명군이 룩셈부르크를 점령했을 때도 이곳은 쉽게 공략을 하지 못했다고 한다.
이곳을 나와 비안덴 성을 가고 싶었다. 빅토르 위고가 망명시절 비안덴에서 ‘레 미제라블’을 완성했다. 사진으로 보니 도시가 아름답게 보였고 동화 속의 마을처럼 보였다. 그곳으로 가 빅토르 위고의 체취를 느끼며 그가 머물렀던 곳을 보고 싶었다. 하지만 아내가 멀다고 가는 것을 원치 않았다. 아쉬움이 남았지만 가지 않기로 했다. 대신에 헌법광장으로 향했다. 사진으로 보니 꽃으로 장식된 광장이 아름답게 보였다.
우버를 타고 헌법광장으로 가는데 아침에 탔던 똑 같은 차의 우버 기사였다. 로스앤젤레스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인데 이곳에서는 이런 일이 일어난다. 의외이고 뜻밖이지만 아마도 나라가 적고 생각보다 우버를 타는 사람이 많지 않아서 그런 것 같았다. 그 우버 기사가 나에게 룩셈부르크는 뭐 볼게 있어서 왔냐고 묻는다. 약간 당황했지만 베네룩스 3국을 여행하려 하고 그중에 룩셈부르크도 끼어 있어서 왔다고 했다. 그리고 세계에서 소득이 가장 높은 나라여서 관심이 있고 어떻게 사는 가 궁금하다고 했다.
그런데 그가 말하길 잘 사는 사람은 아주 잘 살지 모르지만 자기는 그렇지가 않다고 했다. 자기는 생활해 나가기 위해서 열심히 일해야 하며 한 달에 렌트비가 $2000 정도라고 한다. 포루투칼에서 이주해 왔다고 한다. 세계에서 가장 잘 사는 나라여도 그것이 개개인에게 모두 적용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새삼 느꼈다. 빈부의 차이가 심하다면 더욱 더 그렇다. 국민소득도 높아야 하지만 사회복지정책이 얼마나 잘 되어있는가에 따라 개인의 삶이 더 윤택하게 될 것이다.
헌법광장은 도로에서 밑으로 내려가야 되는데 위에서도 어느 정도 볼 수 있었다. 그곳을 본 다음에 그랜드 두칼 궁전을 보러 갔다. 그런데 열지를 않았다. 항상 열지는 않고 여는 기간이 있는 것 같았다. 구경할 목록을 보니 다 구경한 것 같았다. 나라가 적어서 그런지 하루가 되지 않아 거의 다 볼 수 있었다. 시간이 남아 룩셈부르크 시내를 더 곳곳이 가고 싶었다. 버스가 무료여서 아무 버스나 잡아 탔다. 버스는 시내를 지나 주택가도 지나고 산업단지 같은 곳도 지났다. 종점에 다다라 버스에서 내렸다. 돌아 나오는 똑 같은 버스를 다시 탔다.
조금 있다 운전기사가 젊은 아시안 여자한테 가서 무엇인가를 말하였다. 그런 다음에 그 여자가 일어나서 노부부에게 가서 말하였다. 그 노부부도 우리처럼 버스를 타고 종점까지 갔다가 다시 버스를 탔다. 내 생각에는 그 운전기사가 그들이 걱정이 되었는 가 보다. 혹시 길을 잃어서 헤매어 버스를 탄 것이 아닌가 하고 추측을 했나 보다. 그래서 괜찮은 가 통역을 부탁했던 것 같다. 아무일 없이 차는 다시 출발했다. 그 노부부도 우리처럼 공짜 버스 여행을 즐기는 것처럼 보였다.
룩셈부르크는 우리에게 여유를 주었다. 아담하고 작은 나라라서 꼭 볼 것만 보면 하루안에 여행을 끝낼 수 있다. 서둘지 않고 다녀도 언덕과 도로로 연결된 아름다운 도시를 다닐 수 있으며 공짜 버스 여행도 즐길 수 있다. 그리고 저녁은 광장 옆에 중국식당에서 마파 두부를 시켜 맛있는 음식까지 먹을 수 있었다. 또 다시 와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