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산엔 가을비
뒷산엔 가을비
낯이 설은 마을에
가을 빗소리
이렇다 할 일 없고
기인 긴 밤
모과차 마시면
가을 빗소리
―박용래(1925∼1980)
기침을 근심하는 것. 이것은 11월의 가장 중요한 일이다. 이즈음의 수업 시간에는 기침하는 학생이 많다. 간질간질 한번 시작된 기침은 의지로 그쳐지지 않는다. 입을 막고 기침하는 학생을 보며 생각한다. 과제로 밤을 새워 너를 돌보지 못했나 보다. 사탕 한 알을 건네주고는 수업을 계속한다.
올해가 얼마 남지 않았다. 마무리했어야 할 일은 생각보다 많이 남았고, 돌이켜 보면 성과가 미흡하다. 그래서 조급해지는 것이 11월의 심정이다. 이렇게 시간은 적고 일은 많은데 우리는 겨우 기침을 해대는 사람일 뿐이다. 시간과 업무가 나를 보챌 때 이 시를 떠올린다. 내가 갖지 못했으나 가장 바라는 상태를 ‘이상적’이라고 말한다면 이 시는 가을의 가장 이상적인 작품이다.
설명이 필요 없다. 앞에도 산이요 뒤에도 산이다. 아는 이, 귀찮은 이 없고 산과 가을비와 나만 고즈넉하다. 여기에 따끈한 모과차라니, 신선이 부럽지 않다. 이 시는 참 쉬운데 시처럼 살기는 참 어렵다.
나민애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