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따스했던 손 / 박무형
손은 삶의 온도를 담고 있다. 사랑할 때도, 이별의 순간에도, 상처와 치유의 자리에서조차 손은 심신의 감정을 조용히 전해준다. 내가 살아오며 몇 차례 마주친 손들, 그중 어떤 손은 따뜻함으로, 어떤 손은 차가운 기운으로 기억 속에 남아 있다.
1950년대 고교 시절 어느 날, 당시 영화광이었던 나는 부산 동래에서 서면까지 전동차를 타고 새로 개봉한 영화를 보러 가는 길이었다. 열린 차창 밖은 온통 미나리이어서 연초록 들판과 질퍽한 논흙의 내음이 코끝을 스쳤다.
어느새 내 옆에 말쑥한 T여고 학생이 전동차 손잡이를 잡고 서있었다. 그 하얀 손이 내 시선을 잡아끌었다. 어쩌면 상앗빛처럼 그리도 맑고 고울 수가 있을까. 제 나름의 길이로 갸름하게 매달린 손가락이 어찌나 아름다운지 눈길을 뗄 수 없었다. 그 여학생이 중간역 거제리에서 내릴 때 나도 따라 내릴 뻔했다.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손이 가진 마력을 느꼈던 순간으로 기억한다.
시간이 흘러 1960년대 초, 나는 공무원 초년병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무렵이었다. 고등학교 친구의 누이동생과 부산 용두산 공원에서 첫 데이트를 하게 됐다. 소녀 시절부터 드문드문 보아왔던 그녀는 어느새 단아한 요조숙녀로 성장해 있었다. 공원 벤치에 나란히 앉아 있을 때 무릎 위에 다소곳이 포개놓은 손이 새하얗고 아담했다. 나는 무심결에 말했다.
"손이 참 예쁘네요. 한번 만져봐도 될까요?"
그녀는 수줍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어데예 안 그렇심더."
그러면서도 손을 거두지는 않았다. 살며시 그녀의 손을 잡았다. 부드럽고 따스하게 전해오는 촉감이 나를 편안하게 감싸는 듯했다. 순간 결심했다. 이 여인과 평생 함께해야겠다고.
결혼 후에 나는 아내에게 종종 농을 걸곤 했다.
"당신 얼굴보다 손이 더 예뻐서 결혼했어."
아내는 웃음으로 받아주었지만, 아이들은 그 말을 못마땅해했다.
푸치니의 오페라 <라 보엠>에서 <그대 찬 손>을 즐겨 듣는다. 크리스마스이브, 파리 라탱지구 구석 집 다락방에서 가난한 젊은 시인 루돌프가 홀로 남아 원고를 마감해야 하는 때에 아래층 처녀 미미가 불을 빌리러 올라온다. 가난하고 외롭다는 점에서 둘은 처지가 같다. 루돌프가 붙여준 촛불이 하필 바람에 꺼져버렸다. 어둠 속에서 떨어뜨린 열쇠를 찾다가 서로의 손이 닿아 맞잡게 된다. 그는 그녀의 가냘픈 손을 부여잡고 '이 작은 손이 이다지도 차가운지요. 내가 따뜻하게 녹여주리다.'라며 <그대 찬 손>이라는 아리아를 열창한다. 그 아리아는 루돌프 자신이 누군지, 무얼 하는지, 어떻게 사는지, 어떤 꿈을 품고 있는지를 소개한다. 이어서 미미는 그녀의 이름과 하는 일, 좋아하는 일, 일상 소망하던 일 등을 담아 <내 이름은 미미>라는 아리아로 답창한다.
극중 마지막에 이르면 창백한 얼굴이나 아름다웠던 미미는 지병인 폐결핵의 악화로 루돌프와 처음 만났던 다락방에서 방 친구들의 극진한 애도 속에 차가운 손을 떨구며 숨진다.
손은 때로는 고통을 담아내기도 한다. 한강의 소설 《그대의 차가운 손》에서 조각가 장운영은 주로 여자의 손을 석고로 뜨는 작업을 한다. 그는 어느 날 전시회에서 만난 알바생 L의 순수하고 따뜻한 손에 매료된다. 희고 섬세한 손에 비해 비대칭으로 비만인 그녀는 손 모델을 하며 점차 조각가에게 마음을 열게 된다. 나중엔 그녀의 요청으로 서로의 몸 전체에 각각 석고를 뜨는 작업까지 하게 된다. 그때 그녀는 어린 시절 의붓아버지에게서 상습적으로 성폭행당했던 말 못 할 상처에 대해 털어놓고 잠시 현실로부터 심신이 해방된 듯한 감정을 느낀다. 한편 조각가는 그녀의 전신 석고 틀 속에서 자신의 호리호리한 몸을 맞춰보며 안락함을 느끼고서, '나중엔 저걸 내 관으로 쓸 거야.'라고 말해 그녀로부터 '아저씨 역시 외계인답다.'는 품평을 듣는다.
하지만 얼마 후 그녀는 짝사랑하던 복학생을 만나며 전신의 석고상을 산산이 부숴버리고 야반도주하듯 작업실을 떠난다. 그 복학생의 마음을 얻기 위해 혹독한 다이어트와 폭식을 반복하며 스스로 병들게 했고, 가학적으로 손을 쓴 구토 행위로 손가락 사이에 이빨자국이 선명하게 남았다. 마지막으로 조각가를 찾아왔을 때, 그녀는 차가운 손을 내밀었다. 그 손은 상처와 절망을 담고 있었다.
얼마 전 내 곁을 떠난 아내의 손이 떠오른다. 파킨슨병과 저혈압으로 점점 기운을 잃어갔던 아내의 손, 집 안에서도 혼자 움직이는 게 어려워 십수 년 동안 나는 아내의 양손을 붙잡고 화장실과 주방을 걸음해주었다. 스스로 움직이지 못하니 넘어질 두려움 때문인지 아내는 내 손을 더 꽉 붙들었다. 실랑이하는 게 힘에 부쳐 어느 때는 일부러 손목으로 바꿔 잡고 끌기도 했다. 장례식장에서 염을 할 때 마지막으로 잡은 아내의 손은 차디찼다. 나긋함도 느껴지는 듯했다. 그 나긋함은 우리가 맞잡았던 두 손끼리의 체온에 대한 미련 때문이었으리라.
손은 제2의 얼굴이라 한다. 단순한 신체의 일부가 아니다. 손은 독자적인 하나의 생명체처럼 삶의 온기를 전하고, 사랑과 상처를 담아내며 기억을 이어주는 매개체다.
지금도 나는 아내의 손을 그리워한다. 생전 병간호하던 고통스런 날들이 지금의 적막한 슬픔보다 더 나았다고 느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