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낭香囊 / 이상수

 

 

향주머니를 목에 걸고 도서관을 향해 걷는다. 발을 옮길 때마다 향기들이 출렁대며 코끝에 스며든다. 라벤더와 레몬, 소나무, 페퍼민트가 섞인 향이 마음을 상쾌하게 한다.

향낭은 사향노루나 사향고양이 배꼽 뒤쪽에 있는 달걀 모양의 주머니를 말한다. 수컷에만 있는 노루와 달리 고양이는 암수 모두 가지고 있다. 고려의 귀부인들은 자랑삼아 금향낭(錦香囊)을 많이 차고 다녔다. 조선시대에는 노리개로 만들어 저고리의 겉고름, 안고름 또는 치마허리에 찼다. 요즘은 가방 장식이나 차량용 방향제로 활용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응용한다.

모양은 시대에 따라 다르다. 신라 때는 제사용 합뚜껑에 구멍을 뚫은 토기를 사용했다. 통일신라에선 금동으로 만들어 놓이는 장소에 따라 크기를 달랐다. 香자 모양으로 뚫새김하고 청화로 칠한 백자도 있다. ‘가로 왈’(曰) 위에 ‘벼 화’(禾)를 얹은 모양은 그릇에 담긴 곡식을 형상화한 것이다. 그들에겐 갓 수확한 햇곡식에서 풍기는 구수한 냄새야말로 더없이 좋은 위로가 되었을 것이다.

내가 가진 향낭은 주머니 모양으로 짙은 청색의 플라스틱 재질이다. 지인에게 선물로 받은 것인데, 식물에서 추출한 네 가지 오일을 섞어 넣었다. 그중 라벤더는 항균과 세포재생을 돕는다. 레몬은 혈관을 청소해 주고 소나무 오일은 호흡기 건강을 도우며 스트레스를 줄여 심리적인 안정감을 준다. 페퍼민트 는 긴장을 낮추고 항염 작용을 한다. 여기엔 당분이 다량 함유되어 있어 차로도 마신다. 10ml 오일 한 병으로 7,000잔을 만들 수 있다고 한다.

동네에 있는 작은 도서관에 자주 들른다. 2년 동안 상주 작가로 근무했기에 익숙한 곳이다. 대출이라는 본연의 목적도 있지만, 무엇보다 그곳에서 보낸 시간이 그리워져서이다. 커피 서버에 떨어지는 갈색 방울을 통과하는 햇빛, 나른한 창가에서 졸음을 비비는 고양이들도 한 몫 한다.

요즘 이곳의 서가는 복잡하다. 여기저기서 도서 기증이 많아진 덕분이다. 자연 봉사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얼마 전에는 이동하기 편하게 선반 아래에 바퀴를 달기로 했다. 도움의 손길을 내밀자마자 여러 명이 달려와 주었다. 전동드릴을 든 회사원, 책을 옮기는 살림꾼, 나사를 박으며 떨어진 나무 밥을 쓸어 담는 학생 등. 향기로운 이들 덕분에 더 많은 주민이 쾌적한 독서 여행을 떠날 수 있게 되었다.

수천 권의 책들이 꽂혀 있는 도서관이야말로 향기주머니가 아닐까 싶다. 빛나는 문장과, 비유, 서사를 품고 있으니 그저 쳐다보기만 해도 편안해진다. 그래서 추사 김정희는 문자향文字香이라고 했을까. 사람과 사람 사이로 홀씨처럼 날아다니는 글들이 있어 세상은 조금씩 아름다워지는 것이리라.

이태석 신부는 세상의 향기였다. 2001년, 아프리카 남수단의 오지 마을에 신부 서품을 받고 파견되었다. 의료는커녕 마실 물조차 부족한 지역이었다. 의대를 졸업해 미래가 보장된 평탄한 길을 포기하고 전쟁과 가난으로 황폐한 곳에 자리 잡았다. 직접 구매한 의료 장비로 진료소를 열어 매일 수백 명의 환자를 돌보았다. 특히 관악기를 가르치고 ‘톤즈 브라스밴드’를 창단해 아이들의 자존감과 꿈을 키워주었다. 큰 병을 얻어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는 교사, 의사, 신부라는 세 가지 역할을 수행했다.

살면서 향낭 같은 사람을 많이 만나게 된다. 고장 난 자전거를 수리해 주거나 무뎌진 칼을 무상으로 갈아주는 봉사자를 보는 건 즐거운 일이다. 토요일마다 국수를 삶아 독거노인과 따뜻한 한 끼를 나누는 단체, 버려지는 자원을 살려 환경을 지키는 주민, 아침마다 골목을 깨끗하게 쓸어주는 이웃도 마찬가지다.

길가엔 군데군데 작은 화단들이 늘어서 있다. 어디선가 은은한 냄새가 나서 살펴보니 작은 별 모양을 매단 꽃댕강이 담벼락 위에 피어있었다. 문득 행인들을 위해 저렇게 향기를 나누어주는 주인의 얼굴이 궁금해졌다.

도서관에 도착하니 벌써 사람들이 여럿 와 있다. 모두가 즐거운 표정을 달고 일한다. 나도 서둘러 팔을 걷어붙이고 그 속에 섞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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