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눈 / 조미순
“진~짜 슬플 땐 어떻게 해요?”
목소리에서 물기가 묻어난다. 열 살짜리의 표정을 유심히 살핀다. 평소에 속내를 곧잘 펼쳐 보이니 가만히 다음 말을 기다린다. 조그만 입이 망설망설 이야기를 꺼낸다.
아이가 친삼촌처럼 따른 H라는 청년 얘기였다. 폐종양 수술 후 직장에 복귀했던 그가 정기검진일을 맞았다. 처음 장만한 자가용을 타고 들뜬 표정으로 집을 나섰다. 검사 결과 백혈구 수치에 빨간불이 켜져 있었다. 급하게 수혈받아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입원 치료가 시작되었다. 가파른 하향 곡선을 그린 몸 상태. 엿새가 지난 뒤 서른두 살의 그가 숨졌다는 소식이 날아들었다.
“수술받고 다 나았다고 했잖아. 그런데 왜? 왜~”
거짓말이라고 말해주길 바라는 아이의 눈길을 애써 외면했다.
이웃인 청년은 누나 집에서 지냈다. 외손자가 혼자 집에 있을 땐 불러서 끼니를 챙기고, 몸으로 놀아주던 활달한 청년이었다. 슬프다고 웅얼대며 안절부절못하는 아이를 보는 게 가시방석이었다. 고집부릴 때처럼 한바탕 울어버리지. 눈물이라도 퍼내면 후련해질 텐데…. 크나큰 상실감은 울음마저 가둬버린 듯했다. 나는 그 마음을 어루만져 줄 방법을 고민했다.
겨울방학이 끝나가는 2월의 마지막 주말, 고속도로를 달린다. 해인사까지는 3시간 거리다. 엄마와 며칠 떨어져 지낼 일도, 생소한 환경과 마주할 시간도 부담스러운지 꼬마가 입을 꾹 다물고 있다. 창밖만 서성이는 눈길을 끌어들이려 “현우야~”라고 부른다. 할미와 2박 3일 예쁜 추억 만들어 보자고 작은 어깨를 토닥인다. 배시시 웃는데 눈물이 반짝인다.
휴식형 템플스테이를 가는 길이다. 내가 법당에 들면 곁에 와 삼배三拜를 따라 하던 녀석이니 사찰이 생경하지는 않을 것이다. 아이 마음에 낯선 별리로 팬 자국을 어떻게 보듬어야 할지 조심스럽다. 하지만 훗날 그를 떠올릴 때 이 여행의 추억이 더해진 이미지로 남았으면 한다. 유년의 삽화에 그리움이란 물방울별 하나 부처님 전에 두고 왔다고.
가야산을 병풍처럼 두르고 앉은 한옥 숙소가 한 폭의 그림 같다. 사무실에 들러 방 열쇠를 받는다. 사찰에 머물 동안 입어야 한다는 절복도 챙긴다. 분홍 조끼와 진녹색 항아리바지가 커플복이어서 우리를 웃게 한다. 환복換服하니 예속감이 더해진다.
저녁 공양 시간까지 한 시간 남짓 여유가 있다. 대적광전 앞에 이르니 소망등이 조롱조롱 매달려 바람 그네를 탄다. 오렌지만 한 지등紙燈에 나뭇잎처럼 매달린 메모를 읽는다. 건강, 돈, 사랑, 결혼, 학업에 관한 바람이 빼곡하다. 아이가 하늘색 등으로 고른다. 펜을 잡고 고여 있던 말을 또박또박 써 내려간다.
“천국에서는 건강해요. 부처님, 착한 삼촌을 보살펴 주세요.”
손자의 가슴에서 철썩 대던 슬픔과 그리움이 소망등을 걸면서 한결 잦아드는 듯하다. 좋아하는 이를 떠나보내는 작은 의식. 내 눈시울에도 단풍이 든다. 사찰에 든 첫날 아이 스스로 답을 구하니 고맙다.
다음날 염주 만들기 체험을 하겠다는 녀석과 신경전을 벌인다. 염주 한 알 줄에 끼울 때마다 절을 해야 하는데 초등학교 3학년짜리에겐 벅찬 과정이다. 그런데 할 수 있다며 버틴다. 보다 못한 사무실 직원이 나선다. 커다란 스크린이 걸려 있고 그 앞에 두툼한 갈색 방석이 놓인 방으로 안내한다. 나무그릇에 염주알과 줄이 준비되어 있다.
“양반다리 하고 앉으십시오. 백팔대참회문 각 장이 끝날 때마다 그대로 합장 절을 하고 염주를 꿰면 됩니다.”
108배는 중생의 번뇌가 108가지라는 데서 유래한다. 절은 하심下心이라 하여 마음을 비우는 수행법 중 하나다. 그래서인가. 줄에 염주알이 늘어갈수록 손자의 낯빛도 평온을 찾는다. 갑상선암 수술 후 쉬 지쳐 눕곤 하는 제 엄마를 위한 선물을 만든다는 아이. 그 속내도 모르고 말렸으니 답답한 할머니라 여겼을 법하다.
염주를 챙겨 들고 밖으로 나오니 눈이 내린다. 산봉우리가 흰 털모자를 쓴다. 나목에 눈꽃이 피어난다. 울산 꼬마의 표정도 만개해 있다. 숙소 앞 운동장으로 이동한다. 숫눈 쌓인 넓은 공간, 아이가 저를 따라오는 발자국과 논다. 직선을, 곡선을 그리다가 마침내 눈밭에 드러누워 온몸으로 뒹군다. 거뭇거뭇 흔적이 남는다. 그 위로 함박눈 소복하게 덮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