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를 쓰다듬다 / 이경은

 

 

여행 첫날, 도쿄 세미나에서부터 ‘언어’가 줄곧 따라다닌다. 해외번역문학에 대한 토론은 생각보다 진지하고 깊었다. 그게 뭐라고 이토록 많은 이들이 가슴으로 매달리는가. 다른 땅, 다른 언어들은 각기 제 동네의 사람들을 닮고, 개개인의 삶의 역사를 품는다.

표상으로서의 언어와 그 밑에 숨은 의미와의 ‘틈’을 발견해 내야한다는 암묵적인 약속에 우리는 잠시 시달린다. 틈의 간격은 자칫 방심하는 사이에 무한정 커질지도 모른다, 는 불안이 곁에 서 있다. 놓치지 말고 그 내밀한 차이를 날카로운 집게로 집어내어, 제대로 표현해야 한다는 무거운 압박을 기꺼이 받아든다.

예술가에게 언어란 도구이다. 특히 작가의 깊은 내면의 감정과 생각을 표현하는 ‘사유’를 끌고 오니 그럴 만도 하다. 언어가 하나의 세계를 고스란히 보여준다면, 사유는 계속해서 새로운 세계를 창조해 낸다. 수많은 책들 속에 들어있는 매혹적인 글과 감성이 읽는 이에게 전달되어, 사유를 통한 창조의 세계를 열어준다. 무엇보다도 글도 사람도 아니 생각까지도 진실해야만 진정한 사유로서의 세계가 빛을 발할 수 있다.

내면 깊은 곳의 고통이 클수록 사유가 깊어지는 것 같다. 고통은 자기의 잘못으로 커지기도 하지만, ‘욥’처럼 자기의 잘못이 아니라도 고난을 당할 수 있다. 바로 거기에서부터 나는 왜 그런가, 나에게 일어난 이 모든 일들은 무엇인가 하는 사유의 세계로 들어간다. 그 마지막 골목 끝에 언어가 ‘드디어 내 차례군’ 하면서 제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특히 글을 쓰는 작가일 경우, 이 둘은 불가분의 관계이다. 사유가 언어를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

언어란 살아있는 생생한 생명체이다. 사람들의 육체 안으로 들어가 한 차례 온 몸과 혈관을 통해 움직인 뒤 잠시 가슴 한 복판으로 가서 멈추었다가, 종내는 사유의 반석인 뇌로 간다. 온 몸을 돌았던 기(氣)는 그곳에서 창조의 용트림을 한바탕 세게 한 뒤에 새로운 언어들을 토해낸다. 손톱 끝 발끝의 기운들까지 모두 그 안에 들어있다. 통째로가 아니면 지나간 흔적이라도 끌어 모아 자기만의 새로운 모습으로 나타난다. 언어란 그런 숭고미를 가진 가치 있는 존재이다.

인터넷 상의 모든 인공지능 번역 기술, AI를 통한 창조 수단들은 결국 그저 한낱 수단이다. 언어 그 자체가 아니라 흉내에 불과하다. 그것들이 서로 시너지 효과를 내며 시시각각 무서운 속도로, 거의 정확하게 닮은 모습으로 인간의 언어를 향해 달려온다고 해도 나는 협박당하지 않으련다. 두려워하지도 않으리. 허나 그 추이는 똑바로 지켜봐야 한다. 우리들의 언어를 지키기 위해, 작가의 생명인 언어를 살려내기 위해. 거대한 빅 데이터의 정보들을 등에 업고 펼쳐대는 인공지능 기계언어들의 거친 활약을 두 눈을 뜨고 주시해야 하는 시간들이 곁에 바짝 붙어있다. 우리의 세계로 자꾸 발을 들이민다. 신경이 곤두선다. 미래에 도래할 ‘그 무엇’에….

오스카 와일드는 “모든 예술의 표상 밑으로 파고드는 자는 위험을 무릅쓰고 파고드는 것이며, 상징을 읽어 내는 자는 위험을 무릅쓰고 읽어내는 것이다.”라고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서문에서 말한다. 이 두 문장의 공통분모는 바로 저 모든 위험을 무릅쓰는 ‘용기’이다. 누구나 두려워 때론 두 눈을 감고 싶어지는 ‘들여다봄과 드러냄’에 대한 두려움. 하지만 그것을 넘어서는 진정한 용기를 낼 수 있는 존재가 바로, 작가이다.

언어로 글을 쓰는 종족들-. 늘 애매하고 모호하며, 언제나 경계에서 서성대며, 불안하고 희미하며, 열정과 패배를 토해내고 들이마시고, 뭐 하나 시원한 정답을 내놓지 못하면서도 계속 쓰는 이상한 무리들. 두 손 안에 언어가 들어있는 동안 그들은 행복하리라.

여행 중 숲길을 걸었다. 아침의 숲길이란 하루의 시작을 상쾌하게 출발시킨다. 걷다보니 길 가운데에 해의 우물 같은 동그란 공간이 있다. 성큼 걸어 들어간다. 숲의 나무들이 내어 준 해의 그림자 안으로…. 동그란 원 안에 발을 들이밀고, 잠시 햇볕을 쬔다. 강한 볕이 머리 끝 정수리에서부터 발끝까지 내리꽂힌다. 햇볕 욕, 온 몸이 간질거린다. 풍욕은 가슴 안이 흔들거리는데, 이것은 피부 겉을 건드리고 지나간다. 눈을 감는다. 이 빛줄기를 타고 올라가면 어찌 될까. 실종자 처리인가 아니면 도망자 신세가 되려나. 짧은 순간의 긴 몰입. 여행 중 나만의 휴식, 달콤한 꿀 한 방울이다. 내 안의 젖은 언어도 꺼내 보송보송 말려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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